[짬] 경추마비 장애인 조재형 영화감독
“지인들이 너무 강하지 않냐며 반대했지만, ‘똥 싸는 소리’라는 제목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영화 <똥 싸는 소리>의 연출을 맡은 조재형(53) 감독은 13일 전화 인터뷰에서 “경추 마비 장애인으로 영화를 제작하면서 가장 힘든 일이 소변을 빼는 것이었다. 영화 제목엔 장애인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려는 마음이 응축돼 있다”고 말했다.
영화 <똥 싸는 소리>(107분)는 일과 사랑을 모두 잘하고 싶은 하반신 마비 여성 장애인 ‘미숙’(임도윤 분)의 삶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미숙의 실제 모델은 광주의 한 장애인 단체에서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미숙씨다. 미숙씨는 2014년 6월부터 4·16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재판이 열리던 날이면 어김없이 법원 앞에 나와 유가족들을 응원하던 광주 시민 중 한 명이다. 조 감독은 “휠체어를 타고 나오던 그분의 표정이 굉장히 밝았어요.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고 제안해 그분의 ‘해피 바이러스’를 3년간 찍었어요”라고 말했다.
광주영화영상인연대와 사단법인 실로암사람들이 공동제작한 <똥 싸는 소리>의 시사회는 장애인의 날인 오는 20일 광주극장(저녁 7시)에서 열린다.
하반신 마비 여성활동가 ‘미숙씨’ 모델
3년간 연출 영화 ‘똥 싸는 소리’ 완성
“제목에 장애인 희망·아픔 등 응축”
오는 20일 광주극장에서 첫 시사회 전남대 출신 ‘광주 독립영화계 맏형’
2018년 쓰러져 ‘원인 불상 사지마비’
조 감독은 2014년 광주비엔날레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닭과 허수아비로 풍자한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 걸개그림이 걸리지 못한 상황을 담은 <세월오월>(2016)을 찍고 있었다. 이 때문에 미숙씨의 다큐를 완성하지 못한 것을 항상 아쉬워했던 그는 “작품의 마지막은 결혼식으로 하자”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2018년 3월 어느 날 그는 새벽 광주 임동 작업실에서 넘어져 의식을 잃었다. 건물의 환경미화원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원인 불상에 의한 사지 마비’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경추 신경을 다친 그에게 “평생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그저 멍했지요. 2년간 서울과 수도권 병원 10여 곳을 옮겨다니며 재활에 매달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번아웃 증상’(무기력증)이 왔어요. 몇 개월간 멍한 상태로 지냈어요.”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진 그를 구한 것은 영화였다. 2021년 3월 광주로 돌아온 그는 광주영화영상인연대 김지연 이사장에게 “죽기 전에 영화 한 편 찍고 싶다”고 부탁했다. 조 감독과 함께 단체 설립을 주도했던 김 이사장은 “어쨌든 돕겠다”고 답했다. 희망의 끈을 잡은 그는 이후 무슨 영화를 찍을까를 고민하던 끝에 “미숙씨의 이야기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광주영화영상인연대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역네트워크 허브사업에 ‘동행’이라는 프로젝트를 제안해 선정되면서 시나리오 개발비 700만원을 지원받았다. 이어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장편영화 제작 지원비(1억원)와 한국영상위원회 지원사업(4천만원)을 통해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 작품이다. 미숙씨가 병원에 다니면서 느꼈던 아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나 헤어졌던 연애사, 가족들과 관계 등 많은 에피소드를 시나리오에 담았다. 영화에선 미숙씨가 새 남자 친구(류성훈 분)를 만나 사랑을 이루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제목 <똥 싸는 소리>도 미숙씨가 쓴 에세이의 제목에서 따왔다.
조 감독은 “중증 장애인들은 사랑의 행위를 하기 전에 장을 먼저 비우지 않으면, 관계 도중 배변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 장애인이 된 뒤 그 자신도 가장 어려운 것이 “4시간마다 소변을 빼줘야 하는 일”이었다. ‘똥 싸는 소리’라는 말엔 장애인의 희망과 아픔 등 다층적 상황이 집약돼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장애인의 시각으로 무수히 많은 차별과 편견 속에서 당당히 사는 장애인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는 조 감독은 “저 자신 장애인 3년 차 초보여서 아직도 장애 감수성이 부족하다. 많이 배우고 있다. 올해의 목표는 제 손으로 눈물을 닦기다”라고 덧붙였다.
“광주독립영화계의 맏형”으로 불리는 조 감독은 전남대 영화패 ‘아리랑’ 출신이다. 그는 5·18항쟁을 다룬 <그날>(27분·2008) 등 15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했다. 충무로에서 제작집단 ‘엠16’을 조직해 독립영화 제작활동에 매진했던 그는 2016년 “지역 후배들과 재미나게 영화를 찍고 싶다”며 광주로 왔다. 김지연 이사장은 “따뜻하고 배려심이 깊은 분이다. 조 감독이 이번 영화를 만든다고 하니까 많은 후배·지인들이 나서 도왔다”고 말했다. 휠체어를 타고 영화 제작에 나선 조 감독의 이야기는 최성욱 다큐멘터리 감독이 따로 영상에 담고 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지난 2018년 ‘원인 불명 사지마비’ 진단을 받은 조재형 감독은 3년간 재활치료를 시도하다 고향 광주로 돌아와 장애인 영화 ‘똥 싸는 소리’를 연출했다. 사진 광주영화영상인연대 제공 지난 2018년 ‘원인 불명 사지마비’ 진단을 받은 조재형 감독은 3년간 재활치료를 시도하다 고향 광주로 돌아와 장애인 영화 ‘똥 싸는 소리’를 연출했다. 사진 광주영화영상인연대 제공](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600/450/imgdb/original/2022/0413/20220413503963.jpg)
지난 2018년 ‘원인 불명 사지마비’ 진단을 받은 조재형 감독은 3년간 재활치료를 시도하다 고향 광주로 돌아와 장애인 영화 ‘똥 싸는 소리’를 연출했다. 사진 광주영화영상인연대 제공
3년간 연출 영화 ‘똥 싸는 소리’ 완성
“제목에 장애인 희망·아픔 등 응축”
오는 20일 광주극장에서 첫 시사회 전남대 출신 ‘광주 독립영화계 맏형’
2018년 쓰러져 ‘원인 불상 사지마비’
![지난해 영화 ‘똥 싸는 소리’ 촬영현장에서 조재형 감독이 휠체어에 앉은 채 연출을 지휘하고 있다. 사진 광주영화영상인연대 제공 지난해 영화 ‘똥 싸는 소리’ 촬영현장에서 조재형 감독이 휠체어에 앉은 채 연출을 지휘하고 있다. 사진 광주영화영상인연대 제공](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600/400/imgdb/original/2022/0413/20220413503962.jpg)
지난해 영화 ‘똥 싸는 소리’ 촬영현장에서 조재형 감독이 휠체어에 앉은 채 연출을 지휘하고 있다. 사진 광주영화영상인연대 제공
![4월20일 장애인의 날 첫 시사회를 하는 영화 ‘똥 싸는 소리’ 포스터. 사진 광주영화영상인연대 제공 4월20일 장애인의 날 첫 시사회를 하는 영화 ‘똥 싸는 소리’ 포스터. 사진 광주영화영상인연대 제공](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400/566/imgdb/original/2022/0413/20220413503965.jpg)
4월20일 장애인의 날 첫 시사회를 하는 영화 ‘똥 싸는 소리’ 포스터. 사진 광주영화영상인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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