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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끼리 오인 사격 두 차례…공수부대는 징계 받지 않았다

등록 2023-05-18 09:00수정 2023-05-18 14:55

1980년 5월24일 11공수여단과 육군보병학교 교도대가 서로 오인 사격을 했던 광주광역시 남구 송암동 도로.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보고서 갈무리
1980년 5월24일 11공수여단과 육군보병학교 교도대가 서로 오인 사격을 했던 광주광역시 남구 송암동 도로.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보고서 갈무리

5·18민주화운동이 격화하던 1980년 5월24일 광주 외곽지역에서는 계엄군간 오인 사격이 두 차례 일어나 모두 13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다쳤다. 10일간의 항쟁 기간에 계엄군 인명피해(사망 23명, 부상 117명)의 절반이 이날 발생했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보고서, 전교사 전투상보(공훈보고서), 특전사 전투상보 등을 종합하면, 첫 번째 사고는 5월24일 오전 9시50분께 광주 북구 서광주 나들목 인근 호남고속도로에서 발생했다.

31사단 96연대 3대대(장교 포함 33명)는 영광 원자력발전소를 방호하라는 지시를 받고 고속도로를 이용해 영광으로 이동했다. 나들목 위쪽 도로에 서 있던 시민군 1명을 발견한 96연대 병력은 사격하면서 전진했다. 전방에는 육군기갑학교가 장갑차 2대를 동원해 도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기갑학교 초병은 96연대에 정지하라고 명령했으나 96연대는 응하지 않고 오히려 기갑학교쪽에 사격을 하며 전진했다.

서로를 무장시위대로 오해한 96연대와 기갑학교는 교전한 끝에 96연대 3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주변에 있던 60대 노인과 5살 어린이도 다쳤다.

이 사건을 수사한 31사단 헌병대는 박동조 96연대장에게 책임을 물어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96연대가 위협사격을 해 기갑학교가 오해하고 15명의 사상자를 내게 했다는 것이다.

1980년 5월24일 오전 31사단 96연대와 육군기갑학교 간 오인사격을 분석한 군기록.31사단 전투상보 갈무리
1980년 5월24일 오전 31사단 96연대와 육군기갑학교 간 오인사격을 분석한 군기록.31사단 전투상보 갈무리

같은 날 오후 2시 발생한 11공수여단과 육군보병학교 교도대(조교 부대)의 오인사격도 비슷한 상황에서 발생했지만 징계 부대는 정반대였다.

광주~화순간 도로를 차단하고 있던 11공수여단은 20사단 61연대와 교대한 뒤 광주 재진입작전을 준비하기 위해 송암동 도로를 거쳐 광주비행장으로 철수할 예정이었다. 장교를 포함한 1056명이 군트럭 54대에 나눠타고 63대대, 본부대대, 61대대, 62대대 순으로 출발했다. 행렬의 맨 앞과 맨 뒤는 장갑차를 배치했다. 11공수여단은 이동하면서 움직이는 물체를 모두 쐈다. 저수지에서 놀던 방광범(12)군, 집 앞산에서 놀던 전재수(11)군이 이때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11공수여단은 광주시내 방면으로 이어진 효천삼거리에서 시민군 6명과 마주치자 총격을 가하면서 이동했다. 11공수여단 전방 도로에는 전날 20사단 61연대와 교대한 보병학교 교도대 108명이 차량 등으로 도로를 막은 뒤 인근 산에서 매복하고 있었다. 교도대는 앞서 시민군이 장갑차를 타고 지나간다는 첩보를 입수한 상태였다.

1980년 5월24일 오후 11공수여단과 육군보병학교 교도대의 교전 상황 요도.11공수여단 전투상보 갈무리
1980년 5월24일 오후 11공수여단과 육군보병학교 교도대의 교전 상황 요도.11공수여단 전투상보 갈무리

총을 쏘면서 접근하는 장갑차를 발견하자 교도대 병력은 90㎜ 무반동총 등으로 공격했다. 63대대도 대응 사격을 했지만 높은 곳에서 숨어서 쏘는 교도대가 우위였다. 30여분간의 교전 끝에 11공수여단 8명과 길 안내를 맡았던 7공수여단 1명, 장갑차를 운전했던 전교사 군수지원수송대 1명이 숨지고 36명이 중상을 입었다.

11공수여단은 무장시위대에 사격했던 내용은 뺀 채 전교사의 상황전파, 교도대의 오인, 교도대 지휘관의 상황 판단 미흡을 사고의 원인으로 보고했다. 이에 전교사 작전참모였던 백남이 대령은 상황 전파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아 장성 진급을 하지 못한 채 전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이동부대가 차단부대를 먼저 공격한 똑같은 상황인데 31사단과 전교사에게만 책임을 물었다는 것은 공수부대가 정식 지휘체계를 넘어서서 이들보다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는 근거”라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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