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광우. 항쟁으로 유명을 달리한 무명용사들, 총을 들고 싸운 항쟁의 주역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주소.”
황광우(65·인문연구원 동고송 상임이사) 작가에게 한 선배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황 작가는 “애초 ‘윤상원 평전’을 쓸 계획이었는데 선배의 조언 한마디에 ‘오월 무명열사의 평전’을 쓰기로 방향을 틀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1990)에 나오는 500여명의 피맺힌 구술을 접했다. 이어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2006), ‘5·18 의료활동’ 등 5·18 사료집 10여 종을 찾아 읽었다. “주인공들의 이름과 성격을 알기 위해서였다. 뒤지다 보니 주역들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2년 만에 ‘시민군’이라는 책을 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1980년 10일간의 항쟁 기억을 재현한 오월 이야기”다. 가장 눈길을 끄는 점은 책의 구성이다. ‘시민군’은 광주 시민 300여명의 육성을 담아 날짜별로 다큐멘터리처럼 펼쳐 보였다. 소설보다 더 참혹한 ‘실화’다. 2007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이 불편한 황 작가는 왼손으로만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려 책을 썼다. 그는 “‘시민군’은 광주항쟁의 드라마를 사실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시도”라고 말했다.
황 작가는 구술 증언을 읽으며 꼭 만나고 싶었던 분들이 있었다. 쇠망치를 직접 만들어 오월의 거리로 나섰던 용접공 김여수(1995년 사망), 김밥에 총알이 스치고 지나갔다는 식당 종업원 김현채(2009년 사망), 중학생의 수술을 거부한 의사에게 총을 들이댔던 구두닦이 박래풍(2018년 사망), 광주역 전투를 이끌었던 전옥주(2021년 사망), ‘서방의 주먹’ 김태찬 등이다. 황 작가는 “그분들의 삶과 음성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살아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만나려고 했는데 대부분 타계했더라. 많은 무명용사의 최후는 초라했다”고 했다.
황 작가는 시민군 기동타격대 7조 조장 김태찬(62)씨를 만나 솔직하고 거침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석공이었던 김태찬은 5월20일까지도 대학생들의 시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가 지인의 조카가 공수부대의 대검에 당했다는 말을 듣고 항쟁에 참여해 5월27일 마지막 날까지 총을 들고 도청을 지켰던 시민군이다. 300여명의 등장인물 중엔 총을 든 시민군뿐 아니라 “피와 김밥을 나누고, 부상자를 치료했던 의료인 등 제2의 시민군”들도 나온다. 황 작가는 차명숙·이민오 등 40여 명을 직접 인터뷰했다.
‘광주 시민군’ 300여명 육성 담아
10일간 항쟁 다큐멘터리처럼 펼쳐
5·18 기존 구술자료집 토대로
차명숙 등 40명 직접 인터뷰도
“만나려 한 무명용사 대부분 별세”
21일 금남로 245빌딩서 책 헌정식
지병으로 왼손으로만 키보드 작업
‘시민군’은 10일간의 항쟁 때 눈앞에서 펼쳐진 살육에 어떻게 사람들이 죽어갔고, 왜 총을 들고 싸울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이 책엔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무장하는 시민들, 죽기를 각오한 뒤 최후를 맞이한 사람들과 이들을 치료했던 간호사와 의사 등의 증언이 담겨 있다.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은 80년 5월26일 브래들리 마틴 미국 ‘볼티모어 선’ 기자 등과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패배할 것이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황 작가는 150여 영령들의 삶을 기록한 비문도 책에 담았다. “보고 싶은 내 아들아. …너의 웃는 모습이 늘 엄마 곁에 있단다. 편히 잠들어라. 엄마가.” 고 장재철(1957년생·이발사)씨의 어머니 김점례씨가 쓴 비문이다. 황 작가는 “300인의 구술을 재구성하면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진정한 민중을 만났다”고 말했다. ‘시민군’ 헌정식은 21일 오후 4시 광주시 금남로 245빌딩 9층 대강당에서 열린다.
1980년 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직전 전옥주씨가 등을 보인 채 시위대 단상에 서서 전남도지사와의 협상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80년 5월27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작전 직후 노먼 소프 기자가 촬영한 안종필(앞)과 문재학군의 주검. 문군은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이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베스트셀러 ‘철학콘서트’의 저자인 황 작가는 80년 5월과 관련한 인물들의 책을 꾸준히 펴내고 있다. 그는 2016년 5월 박효선의 연극 대본을 모아 ‘박효선 전집’을 낸 것을 시작으로 2017년 윤한봉 일대기를 영문으로 작업한 ‘임을 위한 행진곡’, 2021년 ‘윤석동 일기’와 ‘윤상원 일기’ 등을 냈다. 그는 “‘시민군’을 문학적으로 완성도를 높이고 싶고, 전두환의 완전범죄극을 폭로하는 글을 써서 보완하고 싶다”며 “오월의 진짜 모습을 전 국민이 제대로 인식하게 하고 오월 주역들의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