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 ‘보절아트페스타-제2회 하우스미술관’ 전시회를 맡은 김해곤 감독. 김 감독 제공
“소멸해 가는 농촌을 문화예술로 재생하고자 합니다.”
미술을 통한 농촌재생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은 김해곤(58) 감독의 다짐이다. 그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120곳가량의 쇠락한 지역을 문화마을로 만들었던 경력이 있다. 그가 이달 3~12일 전북 남원시 보절면 황벌리에서 ‘2023 보절아트페스타-제2회 하우스미술관’ 전시회를 연다.
마을에 있는 대형 비닐하우스, 농협창고, 빈 점포 등에서 아름다움(美), 쌀(米), 맛(味) 등 ‘보절 3미’를 주제로 회화, 사진, 조각, 영상, 설치미술을 전시한다. 보절면은 한자로 보배 보(寶)자에 마디 절(節)자다. 약 600년 된 느티나무가 있고, 예쁜 저수지가 20여곳이 있는 등 마을 마디마다 보물이 있으니, 아름다움과 쌀이 있는 이곳을 예술을 통해 맛깔스럽게 어우러진 맛으로 승화시키자는 뜻에서 이렇게 주제를 정했다.
작품을 전시한 비닐하우스 안에 서 있는 김해곤 감독의 모습. 김 감독 제공
남원 출신으로 고교까지 지역에서 나와 현재 제주도에서 사는 그에게 왜 보절면에서 이 같은 이색 행사를 개최하느냐고 전화로 물었다.
“저의 고향이어서가 아니라 인구절벽의 대한민국 농촌 현실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지역소멸을 조금이라도 막아 보려는 몸짓입니다. 지리산 자락에서 수개월 숙식하며 그림 작업할 공간을 찾다가 지난해 1월 여기에 오게 됐어요. 그런데 한 촌로와 대화를 하던 중 충격을 받았어요. 노인께서 평생을 살면서 문화적인 혜택을 누려본 적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 말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3~12일 남원서 ‘하우스미술관’ 열어
비닐하우스·농협창고·빈 점포 등을
미술전시장과 마을박물관으로 꾸며
지난해 1회때 1500~2000명 관람
보절면 인구보다 많아 가능성 확인
“지역 농부와 교감하며 그림 그리고
농촌 소멸 조금이라도 막는 게 소명”
그래서 굳은 마음을 먹었다. 그는 “내 취향대로의 그림이 중요한 게 아니라, 농부들과 교감하면서 논과 들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고, 농촌의 소멸을 조금이라도 막아내는 게 내가 할 소명이다. 농부들도 문화를 누리면서 사는 게 인간으로서 권리”라고 설명했다.
주민들과 행정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0월 비닐하우스 3동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약 1500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했다. 노인들이 관람객 수를 헤아리다 보니까 좀 느슨했다고 한다. 정확히 계산한다면 2천명가량 방문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보절면의 등록 인구수는 지난해 10월 말 기준으로 1400명이다. 인구수보다 더 많은 사람이 전시장을 다녀간 셈이니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그는 말했다.
김해곤 감독이 짚단을 쌓아 놓은 창고 안에 서 있다. 김 감독 제공
장소를 ‘하우스미술관’으로 이름 지은 이유를 물었다. 어느 날 노인들께 앞으로 미술관도 구경시켜 드리고, 짜장면도 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노인들이 미술관은 생소하다며 사양했다고 한다. 그래서 노인들이 익숙한 공간인 비닐하우스에서 전시회를 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여름이 지나면 비닐하우스가 비어있으니 문화를 창작·재배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하우스미술관이라고 명명했다.
비닐하우스 3곳이 전시장이다. 갤러리1관은 ‘미(米)관’이다. 미술체험 교실 등이 있다. 초벌구이한 그릇에 각자가 그림을 입혀 두벌구이하는 도자기 교실이다. 또한 올 크리스마스에 편지가 배달되도록 하는 편지쓰기를 우체국의 도움을 받아 진행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편지를 쓸 기회가 없는 시대에 사랑의 편지를 써보자는 취지다. 여기에 맨발로 지푸라기와 왕겨를 밟는 농경문화 체험도 있다.
2023 보절아트페스타-제2회 하우스미술관 전시회 포스터.
갤러리2관은 ‘미(美)관’이다. 전국 예술가 54명의 작품 100여점을 전시한다. 회화, 조각, 설치미술 작품이 선보인다. 갤러리3관은 ‘미(味)관’이다. 초·중·고생 224명의 글과 그림 작품을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교육청의 도움을 받아 전북지역 학생을 대상으로 제1회 보절아트페스타 글·그림 공모전을 실시했다.
농협창고를 활용한 추억의 마을박물관도 꾸몄다. 살롱에 빗대서 ‘문화쌀농’으로 이름 지었다. 농부들의 삶에 대한 추억이 있는 박물관이다. 절구통, 배냇저고리, 삼베, 1960~70년대 교과서를 비롯한 오래된 책 등 주민들의 이야기가 있는 물품을 전시한다. 창고 앞마당에서는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 장터가 열린다. 또 체험으로 주먹밥을 만들어 인증샷을 찍도록 했다.
전시장 주변에 세워 놓은 허수아비 모습. 김해곤 감독 제공
과거에 버스정류장 점방과 다방으로 쓰였던 빈 점포 2곳에서는 동화 일러스트 작가의 원화 작품과 남원 서각협회 회원들의 초대전이 열린다. 논길 따라 예술성을 갖춘 허수아비도 15점을 설치했다. 김 감독은 주민들이 바쁜 농번기에도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문의하고, 공무원이 사비를 들이기도 하는 등 행정이 적극 지원한다고 전했다.
“모범적인 농촌 예술의 사례를 만들고 싶습니다. 어떤 곳에서도 문화와 예술을 통해서 재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고, 주변 지자체인 임실과 장수 지역으로도 확장해 보려고 합니다. 조금씩 변화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꿈꿔봅니다.”
지난해 10월 열린 제1회 행사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김해곤 감독 제공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