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경북 울진군 북면 사계1리에서 축사를 운영하는 남계순씨. 마을 대피령을 듣고 급하게 축사에 묶여 있던 줄을 끊고 대피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한달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십니더.”
경북 울진군 울진읍 정림2리에 사는 남계순(71)씨는 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아직 이재민대피소인 북면 덕구온천리조트에서 지낸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기적처럼 소가 돌아온 것”이다. 그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임시조립주택 입주를 신청했다. 하지만 남씨가 사는 정림2리는 조립주택을 설치할 만한 터가 마땅치 않다. 결국 리조트에서 일터까지 왕복 16㎞를 차로 오가다가, 최근 농번기를 앞두고 천막을 지었다. 그는 “소 아침 주고 다시 점심 먹으러 (온천까지) 가야 하고, 왔다 갔다 일이 제대로 안 된다. 하루에 기름값까지 하면 이중 삼중고다. 농번기만이라도 천막에서 지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남씨는 지난달 31일까지 임시조립주택 입주를 희망한 190가구 가운데 하나다. 북면 신화2리, 소곡1리, 고목3리 등 3개 마을 27가구(44명)는 입주를 마쳤지만, 다른 곳은 아직 조립주택을 설치하고 있거나 입주 준비 중이다. 남씨는 지난달 4일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난 불이 다음날 새벽 울진읍까지 내려오자 북면 사계1리에 있는 축사로 가서 급하게 문만 열어주고 대피했다. 남씨 집과 농기계 창고 모두 불에 탔다.
“다 망가졌으니 한달 내도록(내내) 멍~하게 사는 기라요.”
남씨의 한숨이 깊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던 소 20마리는 다행히 모두 돌아왔지만, 당장 농기계가 모두 타버려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등을 쓸 수 없게 됐다. 봄이 왔지만 겨우 시작하려던 논농사를 작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남씨의 소식을 들은 젊은 농부들이 나섰다. 울진군 영농4에이치연합회가 자발적으로 남씨를 포함한 산불 피해 농가에 가서 퇴비 살포, 논밭갈기, 비닐 덮기, 두둑 만들기 등 농사일을 돕기 시작한 것이다. 울진군과 경북농업기술원은 6월30일까지 농기계를 무상으로 빌려주기로 했고, 농기계업체 엘에스(LS)엠트론, 와이티엠(YTM)도 트랙터 8대를 1년 동안 무상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영농4에이치연합회는 울진군농업기술센터와 협의해 농기계를 지원받았다.
지난 6일 울진군 영농4에이치(4-H)연합회, 농업기술센터가 산불 피해 농가에 퇴비 살포 등 작업을 돕고 있다. 울진군 제공
잿더미 된 국내 최대 송이 산지, 복구만 30년
울진군 북면 소곡리에 사는 장순규(80)씨도 봄이 예전 같지 않다. 48년 동안 송이버섯 농사를 지었다는 장씨는 “송이산이 모두 재가 돼버렸다. 소나무 한그루도 없이 다 죽었다”며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자연산 송이는 소나무 뿌리에서 버섯 씨앗인 포자를 터뜨린다. 화재로 사라진 자연산 송이 생산지가 예전과 같이 자라려면 30~40년은 걸린다고 한다. 울진군은 산불로 피해를 본 송이산은 약 1500㏊ 규모로 추산했다. 이는 울진군 전체 송이 생산량의 약 70%다. 울진군은 국내 최대 송이 주산지다.
장씨는 송이 피해 주민 250여명과 함께 ‘울진산불 금강송이 생산자 피해보상 대책위원회’를 꾸려 직접 행동에 나섰다. 자연산 송이는 사회재난 지원 대상이 아니라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세종시에서 최병암 산림청장을 만나기도 했다. 장씨는 “우리가 산에서 송이를 막 주워 오는 게 아니다. 햇빛을 보면 송이 머리가 퍼지기 때문에 흙이나 낙엽으로 덮어주고, 잡풀도 제거하는 등 상품으로 만들려면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며 “지금처럼 정부에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군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겠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울진군은 지난달 18일 정부에 공문을 보내 송이 피해 농가도 지원 대상에 포함해 특별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하고, 지난 6일부터 자체적으로 송이 피해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박형수 의원(경북 영주·영양·봉화·울진)은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축사와 창고 안 트랙터, 농기계 등 물건 피해는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규정을 고쳐야 한다. 현재 규정으로는 소실된 주택을 복구하는 데만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0일 울진군 북면 불에 타 버린 한 송이산 모습. 울진군 제공
개별의 삶만 힘든 건 아니다. 군 전체 쓰레기 처리도 비상이다. 이번 산불로 북면 나곡리 폐기물처리시설인 ‘나곡소각장’이 모두 불에 탔다. 이곳 생활폐기물 소각시설, 매립시설, 재활용선별시설, 침출수처리장 등에서 군 전체 쓰레기의 약 60%가량을 처리해왔다. 울진군은 폐기물처리시설을 복구하는 데 1년 가까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울진읍 울진소각장 등 인근 시설에 생활폐기물 처리를 분산해 위탁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지난달 4일 오전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난 산불은 북쪽인 강원도 삼척까지 번져 213시간(8일 21시간) 만에 완전히 꺼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6일 “중앙합동조사결과 총 피해액은 2261억원으로 집계됐다. 울진, 삼척 일대의 산림 1만6302㏊(잠정)가 훼손됐고, 이는 1986년 산불 통계 집계를 시작한 뒤로 2000년 동해안 산불(2만3794㏊)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큰 피해 면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산불로 주택 322동, 농기계 1899대, 농‧어업시설 393개소 등 사유시설과 마을 상수도, 소각장 등 공공시설 82개소가 불에 탔다. 이날 확정된 복구비는 총 4170억원(국비 2903억원, 지방비 1267억원)이다. 정부는 지난달 6일 울진, 삼척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