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주민 윤수아(85)씨가 산사태로 무너진 자신의 집 본채를 둘러보고 있다. 김규현 기자
“돌 구부는(구르는) 소리가 두글두글두글 쿵, 또 두글두글두글 쿵. 요새는 밤에 번개만 쳐도 무서와.”
한여름 밤의 악몽이었다. 지난 18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에서 만난 유순악(86)씨는 지난 7월 폭우 때 상황을 또렷이 기억했다. “집 안으로 물하고 흙이 막 들어차는 기라. 밖으로는 나가지도 못하지, 전기가 끊겨 불도 못 켜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유씨는 동네를 순찰하던 이장 눈에 띄어 기적처럼 마을회관으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유씨는 “죽는구나 생각했다. 얼마나 겁을 먹었던지 내리 사흘 밤을 자다 깨서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지난 7월13일부터 나흘 동안 경북 북부 지역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는 2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벌방리에서도 2명이 실종됐다. 같은 달 정부는 예천과 봉화·영주·문경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당시 경상북도가 잠정 집계한 재산 피해는 2946억원, 산지 피해 구역은 142㏊에 이르렀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에 지난 7월 산사태로 쓸려 내려온 돌덩이가 그대로 남아 있다. 김규현 기자
‘호우피해 복구 현장’이라 적힌 팻말을 지나쳐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5개월 전 폭우와 산사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산에서 굴러 내려온 돌덩이들이 시멘트 도로 양옆을 점령한 가운데, 하천과 가까운 곳이면 어김없이 처참하게 부서진 집들이 방치된 채 남아 있었다.
“여기저기서 도와줘가 그럭저럭 지내고는 있다. 그란디 2년 뒤에는 어찌 될지 모린다. 어데로 나가 살지 생각하면 그냥 막막하다.”
마을 입구 임시조립주택에서 만난 정명희(93)씨가 말했다. 지난 8월 정부가 마련해준 조립주택단지에는 수해로 집을 잃은 벌방리 주민 11가구(14명)가 머물고 있다. 임시주택은 27㎡(8.2평) 규모로 침실과 주방 겸 거실, 화장실이 딸려 있다. 날이 추워지자 최근 예천군에서 공무원들이 나와 전기장판과 온풍기 등 난방용품을 추가로 나눠주고 갔다.
이재민들의 걱정은 임시조립주택에 기거할 수 있는 기간이 2년뿐이란 사실이다. 그 안에 새집을 마련하기가 녹록지 않아서다. 옛 능금조합 창고를 개조해 만든 정씨 집은 산사태에 모두 쓸려갔지만 주거용 건물이 아니어서 특별재난지원금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정씨는 “난리통에 몸뚱이만 겨우 빠져나왔는데, 갈 데도 없고 돈도 없다”며 마른 거실 바닥을 손으로 쓸어냈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마을 입구에 임시조립주택 11동이 들어섰다. 김규현 기자
윤수아(85)씨 집은 본채가 모두 부서지고, 창고로 쓰던 아래채 방 한 칸만 남았다. 다행히 살림살이를 일부 건졌지만 임시주택으로 오는 봉사단체의 기부 물품이 부럽기만 하다. 그는 “컨테이너(임시주택)에는 김치도 갖다주고 계란도 갖다주는데, 나는 방 한 칸 말고 남은 게 없다”고 푸념했다.
윤씨가 잃어버린 건 집만이 아니었다. 생계 수단인 사과밭과 아들이 쓰던 농사용 트랙터가 산사태에 쓸려가 버렸다. 정부가 농기계 종류에 따라 위로금을 지급했으나 턱없이 부족하다. “나라에서 연금 타 묵는 처지에 이런 소리 하믄 안 되는데, 나라가 너무 매정하다. 집도 다 뿌사지고 방 한 칸에 이래 있는 것도 서러븐데, 쥐꼬리만한 위로금만 갖고 우예 살겠나.”
예천군 관계자는 한겨레에 “정부의 재난지원금은 1명당 최대 5천만원까지 받을 수 있고 위로금이 추가로 일부 지원되는데, 현실적으로 농민들의 피해 상황을 복구하기에는 부족한 게 사실이다. 피해 내용을 일괄적으로 산출하다 보니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 발생해 아쉽다”고 했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지난 7월 산사태로 물과 흙이 들이닥친 집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 김규현 기자
정부는 경북 북부 산사태를 겪은 뒤, 피해 예방을 위한 대책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3일 산사태 경보체계를 현행 2단계에서 3단계로 늘리고, 재난문자와 마을방송으로 해온 산사태 위험 전파를 각 가정에 설치한 방송 스피커를 통해 하는 방안도 추가로 내놨다. 또 산림청이 관리하는 산사태 취약지역에 포함되지 않는 산사태 발생 우려지역(C등급)도 취약지역에 준해서 관리하기로 했다.
경상북도는 산사태 피해 지역의 토지 소유자 동의 등을 거친 뒤, 내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산사태 피해 지역 복구사업을 시작해 6월 우기가 오기 전 완공할 계획이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