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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해방 꿈꾼 ‘반공군인’서 남북회담 이끌며 ‘평화기획자’로”

등록 2022-10-20 18:57수정 2022-10-21 02:33

[짬] 한반도평화포럼 임동원 명예이사장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이 19일 오전 서울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이 19일 오전 서울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평화가 전부는 아니지만 평화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다시 추진해야 한다.”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이 구순을 맞아 펴낸 523쪽짜리 자서전 <다시, 평화>(폴리티쿠스)의 마지막 두 문장이다. 북한의 ‘핵무력정책법’ 채택(9월8일)과 전술핵 사용 위협을 빌미로 핵무장 목소리가 높아가는데, 군인으로 28년, 외교관으로 11년, ‘통일일꾼’으로 6년 등 모두 45년을 공직에 헌신한 그는 이 절망의 시대에 ‘핵’이 아닌 ‘평화’를 호소했다. 자서전 제목이 “다시, 평화”인 까닭이다.

19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출판 기념회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 이종찬 우당기념관장, 김연철·이재정·이종석·정동영·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백낙청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 등 보수진보를 아우르는 각계 인사 수백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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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평화> 표지.

임 이사장은 책에서 “북 핵문제는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이라며 “미국의 결단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짚었다. “한반도 문제에 깊이 개입한 초강대국 미국이 대북 관계 개선에 나서지 않는 한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북핵문제 해결도 어렵다”는 게 “엄혹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하여 “우리는 인내심과 일관성, 신축성을 갖고 꾸준히 북한을 설득해, 남과 북이 힘을 합쳐 미국을 선도해 중단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제 더는 미루지 말고, 남-북, 한-미, 북-미가 이미 합의한 바 있고 중국도 동의한 ‘4자 평화회담’을 개최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한반도의 4대 핵심과제(북미관계 정상화, 비핵화, 평화체제, 남북관계 개선·발전)를 포괄적·단계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평화 공존과 공동번영의 ‘남북연합’을 형성해 ‘사실상의 통일 상황’부터 이룩하고, 평화와 번영의 통일국가를 지향해 나가야 한다.” 그가 90년의 삶을 집약한 자서전으로 호소한 ‘우리의 갈 길’이다.

<다시, 평화>를 두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굴곡의 한국 현대사이면서 평화의 여정이 담긴 역사의 발자취”라고 ‘축사’(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독)에서 평했다.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군사전략가(70년대), 외교 전문가(80년대), 평화통일 기획자이자 협상가(90년대), 그리고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 실현자(2000년)로서 ‘인간 임동원’의 진화의 여정을 그려낸 책”이자 “임동원 평화철학의 완결판”이라 평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신산한 삶을 이겨내고 피스 키퍼(peace-keeper)에서 위대한 피스메이커(peace-maker)로 진화한 노정을 그린 서사적 자서전”이라 평했다. ‘피스메이커’는 2008년 임 이사장이 공적 영역의 삶을 정리한 회고록의 제목이다.

구순 맞아 자서전 ‘다시, 평화’ 출간
‘김일성 통치’ 5년 경험 뒤 월남해
60~70년대 군 최고 대공전략통에서
노태우 정부 때 실용주의자 거듭나
전두환 쿠데타 뒤 강제로 군복 벗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추진을”

임 이사장은 1933년 압록강변 위원에서 태어나 해방 뒤 5년간 ‘김일성 통치’를 경험했다. 한국전쟁 때 월남해 미군부대에서 “불쌍한 이북 따라지”이자 “부지런히 일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정직한 소년”으로 지냈다. 1953년 6월 “장교가 돼 부대원을 지휘해서 내 고향을 내가 해방시켜야겠다”는 마음으로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같은 군인이면서도 전두환과 달리, 박정희의 5·16쿠데타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전두환 등 영남 출신 장교들이 ‘칠성회’(‘하나회’ 전신)라는 비밀조직을 꾸려 정치 관여와 쿠데타의 길을 모색할 때, 그는 군내 학습모임 ‘청죽회’에서 ‘민주국가에서 군의 역할’을 연구했다. “<사상계>를 애독하는 군인”이 1960~70년대 ‘군인 임동원’의 정체성이다.

박정희 치하에서 그는 한국군의 대공전략과 자주국방 계획을 짰다. 1968년 ‘김신조 사건’과 ‘울진·삼척 무장공작원 침투 사건’을 예견하고 대책을 제시한 듯한 연구서 <혁명전쟁과 대공전략-게릴라전을 중심으로>(1967년) 출간으로 군내 최고의 대공전략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빚을 내어 자비 출판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덕에 생애 첫 ‘내집’을 마련했다.

한국군 최초의 자주국방 계획인 ‘율곡사업’의 핵심 입안·추진자로 일한 한국군 최고의 정책·전략통인 그는, 전두환의 5·17쿠데타 직후인 1980년 10월 육군 소장을 끝으로 강제로 군복을 벗었다. 전두환은 “동원아, 여러 사람이 너를 예편시켜야 한다니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며 ’촌지’를 건넸다.

전두환이 ‘악연’이라면 노태우는 ‘선연’에 가깝다. 노태우는 대통령이 된 뒤 그한테 ‘국적있는 외교관’을 양성하라며 외교안보연구원을 맡겼고, 그를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로 직접 지명했다. “군인, 외교관에서 통일일꾼으로 전환하는 결정적 계기”라고 그는 회고했다. 그는 남쪽 인사 가운데 유일하게 고위급회담 모든 과정에 대표로 참여하며 “강경 반공 보수주의자에서 합리적 실용주의자로 변신”했다. 아울러 ‘회담 대표’는 “친구도 적도 아닌 문제해결사”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관계는 전형적인 ‘선연’이다. 그는 1995년 1월23일 김대중 당시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을 처음 만났다. 월남 군인 출신인 그한테 김대중은 “평소 탐탁지 않게 여겼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김대중과 깊은 대화 뒤 “원칙과 철학에 충실하면서도 이상과 현실을 잘 조화시키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1995년 2월2일 그가 아태평화재단 사무총장으로 취임하자 평안북도 출신 지도급 인사의 친목모임인 ‘평인회’는 “앞으로 이 모임에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배신자·변절자”라며 절연을 선언한 지인도 여럿이다. 반면 김대중은 환영사에서 그를 “안보, 외교, 통일 세 분야의 이론과 경륜을 겸비한 독보적인 존재”라며 “백만 원군을 얻었다”고 기뻐했다. 그 또한 김대중 정부 5년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통일부장관(두 차례)-국가정보원장-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로 일한 시기를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한 최고의 절정기”라 회고했다.

‘인간 임동원’은 지난 90년간 식민·해방·전쟁·분단·냉전·탈냉전의 모순을 최전선에서 헤쳐오며,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모두 만나 대화한 유일한 한국인으로서 길어올린 생각을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포괄적 전략”으로 구체화했다. 이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시기 ‘한반도 평화 만들기’ 노력의 밑그림 구실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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