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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생명역동농법’ 토대로 ‘데메터 유기농 인증’도 도전”

등록 2023-05-09 19:48수정 2023-05-09 20:36

[짬] 평화나무농장 김준권 대표

김준권·원혜덕 부부가 인터뷰 뒤 축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김준권·원혜덕 부부가 인터뷰 뒤 축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올해로 58년차 농부인 김준권(75)씨가 약 100년 전 독일에서 태동한 유기농업인 ‘생명역동농법’과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28년이다.

한국의 첫 유기농단체인 정농회가 1976년에 설립될 때 가장 젊은 회원이었던 그는 1995년 정농회 연수에서 프랑스인 농부 필로 드니의 강의를 듣고 이 농법으로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했단다.

1924년 오스트리아 인지과학자이자 교육가인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의 강의에서 시작된 생명역동농법의 근저에는 ‘작은 작물 하나가 자라는 데도 우주 전체가 작용한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작물을 뿌리와 열매, 잎, 꽃 채소로 나눠 달이 위치한 별자리에 따라 파종 시기를 달리하고, 생명과 우주의 기운을 가득 모으려는 발상으로 소뿔과 수정, 소똥 등으로 ‘증폭제’를 만들어 땅에 뿌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생명역동농법에 필수인 증폭제 9가지를 만들고 활용하는 법을 정리한 책 <김준권의 생명역동농법 증폭제>(푸른씨앗)를 펴낸 김 대표를 지난 3일 경기 포천 평화나무농장에서 아내 원혜덕씨와 함께 만났다. 원씨는 한국 유기농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 원경선 선생의 넷째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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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권의 생명역동농법 증폭제> 표지.

김 대표는 오는 10월에 ‘국제 생명역동농업 연합 데메터(DEMETER)’가 주관하는 데메터 인증 심사를 국내 최초로 받을 예정이다. 이 단체에는 유럽과 미국, 남미 등 50개국 이상의 생명역동농법 농가들이 가입해있는데, 데메터 인증 제품은 다른 유기농 제품과 견줘 20~30% 비싸게 팔린단다. “인증을 받으려면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요. 농부가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사는지 또 동물 사육은 윤리적이고 농장의 생명체는 충분한 권리를 누리고 있는지까지 봅니다. 이 때문에 인증 제품은 안전성에 대한 신뢰가 크게 높아지죠.” 김 대표의 말에 아내가 덧붙였다. “지난 10~20년 특히 프랑스 와인 농가에서 데메터 인증을 받으려는 시도가 활발해요. 인증이 바로 와이너리 수입과 연결되어서죠.” 김 대표는 자신이 인증을 받으려고 나선 데는 “생명역동농업의 국내 정착과 확산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고 한다.

부부는 둘째 아들과 함께 2헥타아르(㏊) 넓이 농장에서 토마토와 벼, 밀, 보리를 재배해 주스와 빵, 선식 같은 가공식품을 만들어 회원제로 판다. “제품 절반은 수백명 회원이 내는 선금으로 미리 팔립니다. 빵이나 주스를 사는 분들이 우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해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우리 농법에 절대적인 신뢰와 애정을 보이는 그분들이 우리 제품의 공동생산자이죠.”(원혜덕)

95년부터 생명역동농법으로 농사
99년 전 독일에서 태동한 유기농업
‘작은 작물 생장에도 우주 작용’ 철학
‘데메터 제품’ 유기농보다 30% 비싸
농법에 쓰는 증폭제 안내 책 출간

18살 때 원경선 선생 풀무원 농장에

고향인 전남 고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18살에 훗날 장인이 되는 원경선 선생이 꾸리던 풀무원 농장에 들어온 김 대표는 2005년에 생명역동농법실천연구회를 만들어 지금껏 회장을 맡고 있다. 연회비 5만원을 내는 회원이 약 30명이란다. 대부분 40~50대인 회원들은 매년 가을과 봄에 평화나무농장에서 만나 증폭제를 함께 만들고 나눈다. 창립 초에는 텃밭 농부까지 해서 30~40명이 모였으나 10여 년 전 연구회 문호를 정농회 비회원에게도 개방한 뒤로는 참가자가 늘어 최근 모임에는 100여 명이 나왔단다. 겨울에는 생명역동농법 전문가를 불러 4~5일 일정으로 세미나도 정기적으로 한다.

김준권 대표 부부 뒤로 생명역동농법에 사용하는 퇴비가 보인다. 강성만 선임기자
김준권 대표 부부 뒤로 생명역동농법에 사용하는 퇴비가 보인다. 강성만 선임기자

그가 이번 책에서 다룬 증폭제는 저자 자신도 처음 들었을 때 황당하다고 느꼈을 만큼 그 효과가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예컨대 9개 중 대표적인 증폭제라는 소똥 증폭제를 만들려면 먼저 새끼를 낳았던 암소 뿔에 암소 똥을 채워 가을에 땅속에 묻고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이듬해 봄 꺼낸 뒤에는 물에 섞는 ‘역동화’ 과정을 거쳐 땅에 뿌린단다. 저자는 이 증폭제가 왜 땅과 작물에 좋은지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먼저 출산한 암소의 재생력을 언급하고 이어 나선형의 암소뿔 안에 있는 소똥이 물과 땅의 에너지가 가장 활발한 한겨울철 기운을 응축해 모을 수 있다고 적었다. “우리 문화에도 있는 기는 존재는 확실하지만 증명은 쉽지 않잖아요. 바람도 그렇고요. 생명역동농법에서 말하는 활력, 에너지도 그런 것 같아요. 과학적으로 설명은 어렵지만 증폭제를 사용하면 작물이 활기차게 자라는 것을 봐요. 그 때문에 땅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죠. 처음에는 (효력을) 반신반의했지만 지금은 확신해요.”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유럽에서 이 농법이 시작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반복해 이렇게 농사를 지었어요. 효과가 없으면 그렇게 했을까, 생각도 들죠.”

김 대표가 직접 만든 소똥 증폭제를 들어보이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김 대표가 직접 만든 소똥 증폭제를 들어보이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그는 20여 년 전부터 자신의 농장에서 수정 가루와 사슴 방광, 쥐오줌풀, 쇠뜨기, 캐모마일, 민들레 등이 들어가는 증폭제 9개를 모두 만들어 쓰고 있다. 증폭제 재료인 외래종 식물 톱풀, 캐모마일, 쐐기풀은 종자를 독일에서 들여와 직접 키우고 있고 생명역동농법 전에는 한두 마리 사육하던 소도 퇴비 확보를 위해 30마리로 늘렸다. “얼마 전 구제역이 왔을 때 우리 농장 소는 한 마리도 피해를 보지 않았어요. 그때 남편에게 비법을 알려달라는 강연 요청도 있었죠.”(원혜덕) “우사가 상대적으로 훨씬 넓고 배합 사료 대신 농장에서 나는 풀을 먹인 덕을 본 것 같아요.”(김준권)

1966년에 연수생으로 풀무원 농장에 발을 들여놓은 김 대표는 군대를 다녀온 뒤에도 농장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제대 뒤 원경선 선생에게 “선생님은 바깥 일에 바쁘니 살림(농사)은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청했단다. 일정 기간 연수 뒤 자립을 강조하던 원 선생의 평소 생각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남편이 그때 농사를 맡겠다고 했을 때 우리 형제들이 모두 고맙게 생각했어요.” 김 대표는 8살 연하인 아내가 대학 신입생 때 연애를 시작해 81년에 결혼했다.

장인과 풀무원 공동체에서 받은 가장 큰 유산을 묻자 김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농업을 가치 있는 일이라고 본 거죠. 가치 있는 농업에 내 삶을 헌신하자는 제 가치관 형성의 기초를 놓은 분이 장인 어른이죠. 농업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 뒤로는 그 전에는 힘들던 농사 일이 전혀 힘들지 않더군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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