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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일의찬찬히읽기] 신화에 가려진 버지니아 울프에 관한 진실

등록 2006-03-16 20:27수정 2006-03-17 16:38

최성일/도서평론가
최성일/도서평론가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버지니아 울프-시대를 앞서 간 불온한 매력
나이젤 니콜슨 지음, 안인희 옮김, 푸른숲 펴냄

누가 버지니아 울프의 이름을 모르냐마는 정작 우리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나이젤 니콜슨의 표현을 빌면 우린 영국 관점의 ‘울프’도, 미국 시각의 ‘버지니아’도 잘 알지 못한다. ‘버지니아’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 1990년대 초반에도 그랬다. ‘페미니즘 3부작’이 ‘발견’되고 장편소설 <세월>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버지니아의 신화는 오히려 강화되었다. 당시 <출판저널> 강철주 편집장의 분석대로 <세월>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독자들이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로 말미암아 작가가 낯익다고 착각한 결과였다. 새로운 신화 탄생이 아니라 기존 신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나이젤 니콜슨의 버지니아 전기는 우리에게 그녀와 그녀의 삶을 한 꺼풀 벗겨 보인다. 이 책은 신화에 가려진 버지니아의 동시대성을 드러낸다. 버지니아를 제인 오스틴이나 샬럿 브론테와 한 시대를 산 사람으로 오인하기 쉬우나 그녀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끝물을 탄 20세기 작가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다면 버지니아는 나하고 같은 공기를 들이마셨을 법도 하다. 버지니아의 남편 레너드 울프는 내가 세 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떴다.

나이젤은 버지니아 전기 작가로 적임이다. 그의 어머니 비타 새크빌-웨스트와 버지니아는 서로 사랑했다. 나이젤은 버지니아와의 만남을 소중하게 기억하지만 아쉬움도 따른다. 그는 버지니아에게 받은 편지를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어린 나이젤을 탓한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호가스 출판사의 첫 출간도서를 잃어버리고선 자신의 멍청함을 꾸짖는다.

버지니아와 그녀 주변인물에 대한 나이젤의 생생한 묘사는 소설을 방불한다. 간추린 작품 설명은 수준 높은 문학비평에 필적한다. 또 나이젤이 인용한 버지니아의 일기만큼 ‘의식의 흐름’ 기법을 간명하게 표현하긴 어려우리라. “우리는 언제나 끊임없이 이미지와 생각들이 겹치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현대 소설은 이런 경험을 매끈하게 다시 정리해주는 대신, 우리의 정신적 혼란을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일기와 편지는 버지니아의 문학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요소다. “그녀에게 일기는 그물 침대처럼 명상을 위한 것이었고, 편지들은 침대처럼 문학적 연습과 그 뒷이야기를 위한 것이었다.”


나이젤은 블룸즈버리 그룹, 드레드노트 속임수 사건, 버지니아의 정신병과 자살 등을 둘러싼 풍문과 억측을 해명하기도 한다. 나이젤은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여 버지니아의 자살에서 레너드의 책임론을 부정한다. 나이젤은 버지니아의 생애와 작품, 그리고 사상을 대체로 수긍한다. 다만, 버지니아의 페미니즘에는 비판적이다. 트로이의 헬레네부터 마가렛 대처에 이르기까지 여자들도 정치의 도구로서 전쟁을 부추겼기에 여자가 남자보다 평화를 선호한다는 주장은 그르다는 것이다.

울프 부부가 창업한 호가스 출판사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울프 부부의 열정과 끈기, 뛰어난 기획력의 소산이지만 레너드 울프의 사업 수완도 일익을 담당했다. 레너드는 출판사 직원을 곧잘 해고했으며 월급도 적게 주었다. “기본적으로 버지니아는 도시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시골 사람이기도 했다.” 또한 “버지니아의 강한 지성은 그녀의 날아오르는 상상력과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었다.” 게다가 그녀는 예뻤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으나 늘 아름다웠다. 그러니 어찌 버지니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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