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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일의찬찬히읽기] 방에서도 길 잃는 뇌기능장애인 세상에 새로운 길 하나 만들다

등록 2006-04-13 19:26수정 2006-04-14 14:09

최성일/도서평론가
최성일/도서평론가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살아있다, 나는 행복하다>
야마다 키쿠코 지음, 김윤희 옮김. 랜덤하우스중앙 펴냄

내가 겪은 거나 다름없는 다른 사람의 체험기를 읽으려면 용기를 내야 한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야기라도 행복한 결말과 비극적 결말은 하늘과 땅 차이다. 투병기는 환자의 생존 여부에 따라 책을 마주하는 자세부터 달라진다. 비극적 결말은 옷깃을 여미기에 앞서 책을 다 읽는 일조차 버겁다. 여기 구체적인 병명이 다른 중증 뇌질환자의 투병기가 세 권 있다.

프랑스 작가 파스칼 로즈는 뇌동맥류를 앓았다. <로즈의 일기>(마음산책)는 일기의 주인공이 아직 때가 되지 않아 목숨을 건졌기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영국 비비시(BBC) 기자 아이반 노블의 <나는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물푸레)는 책을 펼치는 것마저 두려웠다. 두서없이 책장을 뒤적일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거라곤 ‘악성’, ‘시한부’, ‘낮은 생존율’, ‘완치 불가능’ 따위의 무시무시한 낱말들이었다. 결국 나는 뇌종양의 일종인 성상세포종 환자의 투병기 읽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정형외과 전문의 야마다 키쿠코의 <살아있다, 나는 행복하다>는, 제목이 ‘해피 엔딩’을 시사하기에, 완독이야 가능하겠지만 그 과정은 험난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야마다의 투병기는 예상 밖으로 순탄했다. 그렇다고 그녀의 병세가 그리 만만한 건 아니다. 야마다의 증상은 로즈는 물론이고 노블보다도 더 나빠 보인다. 야마다는 정식명칭이 ‘윌리스 동맥륜 폐색증’인, 이른바 모야모야병 환자다. 그녀는 20, 30대에 모야모야병으로 인한 뇌졸중을 여러 차례 겪었다. 급기야 34살 때의 뇌출혈과 뇌경색은 그녀를 ‘고차 뇌기능장애’에 빠뜨린다. 반신불수가 된 야마다에게 갖가지 인지장애가 겹쳐 나타났다. 장애의 정도는 무척 심각해서 시계를 못 읽고, 신발을 거꾸로 신으려 하며(짝을 바꿔 신는 게 아니라), 방 안에서 길을 잃을 정도로 길눈이 몹시 어두워졌다. 또 음식을 쉽게 삼키기 곤란한데다 이를 닦으려면 치약을 입 안에 넣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책을 썼을까? 야마다의 재활의지와 주변의 도움이 큰 힘이 됐거니와, 고차 뇌기능장애의 특성 또한 간과하기 어렵다. “고차 뇌기능장애와 치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모르는가’ 하는 점이다. 즉 객관적으로 자신을 파악하고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다.” 야마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냉정하리만큼 객관적이고 차분하다. 그래서 “적어도 나는 장애 때문에 항상 불행하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나 보다. 뒤표지를 장식한 이 병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이렇게 행복하지 않았을 거라는 문구는 야마다의 발언이 아니라, 파킨슨병에 걸린 미국 배우 마이클 제이 폭스의 자서전 내용을 야마다가 본문에 인용한 것이다. 229쪽에 있는 뇌의 각 부분을 가리킨 그림에서 전두엽의 위치도 부정확하다. 이 두 가지는 이 책 한국어판의 옥에 티다.


<살아있다, 나는 행복하다>는 “한 사람의 환자로서 그리고 그를 관찰하고 치료해 나가는 의사로서, 망가진 뇌의 실태를 극명하게 밝혀나간 삶의 기록이다.” 나는 이 책을 이태 전, 뇌수막염으로 2급 장애 판정을 받은 아들을 보살피고 있는 후배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 어떤 뇌라도 학습능력이 있고, 재활치료는 상상력에 달려 있다는 야마다 키쿠코의 체험적 조언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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