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일/도서평론가
최성일의 찬찬히 읽기
<알래스카의 자연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여행하는 나무>
호시노 미치오 지음. 김욱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누가 나더러 가보고 싶은 나라가 어디냐고 물으면 딱히 그런 지역이 떠오르지 않아 예전엔 베트남, 요즘은 쿠바라고 대충 얼버무린다. 그런데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의 <여행하는 나무>를 읽고 나서는 알래스카에 가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것 역시 현실적인 바람은 아니다. 알래스카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도 걱정스럽지만 더 큰 걸림돌은 거기까지 가는 절차다. 아직은 알래스카에 가고자 하는 열망이, 1867년 드넓은 땅을 러시아로부터 720만달러라는 헐값에 사들인 나라의 한국주재 대사관 앞에서 줄을 서고, 비자발급 담당영사와 면담하는 번거로움을 감내할 만큼은 못된다. 나는 호시노의 극적인 최후에 이끌렸으나, 하마터면 호시노의 책을 읽지 못할 뻔 했다. ‘-ㅂ니다’의 경어체에 거부감이 있는 나로선 이 책의 3분의 1만 편지글문투인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편지글 형식의 독서 감상문에서 보이는 서간문체의 상투성과 뭔가를 감추는 듯한 경어체 문장의 겉치레가 싫다. 하지만 호시노의 편지글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의 글월은 솔직하고 담백하며 차분하다. 서간문 형식이 아닌 책의 나머지 3분의 2 또한 독자에게 보내는 정겨운 편지였다. 그는 알래스카의 자연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사연을 차곡차곡 편지에 담아 우리에게 들려준다. “경비행기의 창가에 가만히 이마를 대본다. 태양의 온기가 전해져 생각보다 따뜻하다. 해빙한 지 얼마 안 된 유콘 강이 반짝반짝 빛나며 대지를 물결치고 있다. 이곳의 호수와 늪은 아직도 이름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사람들의 발자국이 한 번도 찍힌 적이 없는 곳일 게다. 알래스카의 매력은 바로 이런 데 있다. 인간과 관계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자연. 자연을 위해 존재하는 자연. 그것이 바로 알래스카의 본질이다.” 호시노는 알래스카의 가장 아름다운 광경으로 흰 벌판을 방황하는 카리부 사슴의 엄청난 무리를 꼽는다. 그렇다고 호시노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영하 50도의 혹한이 빈번한 알래스카에 뿌리를 내린 까닭은 알래스카의 자연을 그리워해서가 아니다. “알래스카를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고 싶어”서다. 이런 사람들 중 한사람인 생물학자 빌 플레이트는 에스키모들과 함께 알래스카에서의 핵실험 반대운동을 펼쳐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살에 호시노가 알래스카에 첫발을 딛는 과정은 영화에나 나올법하다. 홋카이도의 자연을 동경하던 소년 호시노는 어느새 북방을 향한 희구의 대상이 알래스카로 바뀐다. 하지만 그에겐 새로운 동경의 대상에 가닿을 수단이 막연했다. 소년은 도쿄 시내 간다의 헌책방에서 구한 알래스카 사진집에 나오는 에스키모 마을 촌장에게 무작정 편지를 띄운다. 신기하게도 여섯 달 후 쉬스마레프 마을의 촌장이 보낸 답장을 받는다. 호시노는 26살 때 알래스카로 돌아와 그곳에 정착한다. 1996년 8월 일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취재를 하던 호시노 미치오는 러시아 캄차카 반도의 쿠릴 호반에서 불곰의 습격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사춘기 시절부터 일본 홋카이도 큰곰과 자신을 하나로 여겼던 호시노는 그를 공격한 캄차카의 불곰에게 유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는 “만일 알래스카에서 야영을 할 경우, 곰의 습격에 대해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더 이상 알래스카가 아니라는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다.
호시노 미치오 지음. 김욱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누가 나더러 가보고 싶은 나라가 어디냐고 물으면 딱히 그런 지역이 떠오르지 않아 예전엔 베트남, 요즘은 쿠바라고 대충 얼버무린다. 그런데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의 <여행하는 나무>를 읽고 나서는 알래스카에 가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것 역시 현실적인 바람은 아니다. 알래스카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도 걱정스럽지만 더 큰 걸림돌은 거기까지 가는 절차다. 아직은 알래스카에 가고자 하는 열망이, 1867년 드넓은 땅을 러시아로부터 720만달러라는 헐값에 사들인 나라의 한국주재 대사관 앞에서 줄을 서고, 비자발급 담당영사와 면담하는 번거로움을 감내할 만큼은 못된다. 나는 호시노의 극적인 최후에 이끌렸으나, 하마터면 호시노의 책을 읽지 못할 뻔 했다. ‘-ㅂ니다’의 경어체에 거부감이 있는 나로선 이 책의 3분의 1만 편지글문투인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편지글 형식의 독서 감상문에서 보이는 서간문체의 상투성과 뭔가를 감추는 듯한 경어체 문장의 겉치레가 싫다. 하지만 호시노의 편지글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의 글월은 솔직하고 담백하며 차분하다. 서간문 형식이 아닌 책의 나머지 3분의 2 또한 독자에게 보내는 정겨운 편지였다. 그는 알래스카의 자연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사연을 차곡차곡 편지에 담아 우리에게 들려준다. “경비행기의 창가에 가만히 이마를 대본다. 태양의 온기가 전해져 생각보다 따뜻하다. 해빙한 지 얼마 안 된 유콘 강이 반짝반짝 빛나며 대지를 물결치고 있다. 이곳의 호수와 늪은 아직도 이름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사람들의 발자국이 한 번도 찍힌 적이 없는 곳일 게다. 알래스카의 매력은 바로 이런 데 있다. 인간과 관계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자연. 자연을 위해 존재하는 자연. 그것이 바로 알래스카의 본질이다.” 호시노는 알래스카의 가장 아름다운 광경으로 흰 벌판을 방황하는 카리부 사슴의 엄청난 무리를 꼽는다. 그렇다고 호시노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영하 50도의 혹한이 빈번한 알래스카에 뿌리를 내린 까닭은 알래스카의 자연을 그리워해서가 아니다. “알래스카를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고 싶어”서다. 이런 사람들 중 한사람인 생물학자 빌 플레이트는 에스키모들과 함께 알래스카에서의 핵실험 반대운동을 펼쳐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살에 호시노가 알래스카에 첫발을 딛는 과정은 영화에나 나올법하다. 홋카이도의 자연을 동경하던 소년 호시노는 어느새 북방을 향한 희구의 대상이 알래스카로 바뀐다. 하지만 그에겐 새로운 동경의 대상에 가닿을 수단이 막연했다. 소년은 도쿄 시내 간다의 헌책방에서 구한 알래스카 사진집에 나오는 에스키모 마을 촌장에게 무작정 편지를 띄운다. 신기하게도 여섯 달 후 쉬스마레프 마을의 촌장이 보낸 답장을 받는다. 호시노는 26살 때 알래스카로 돌아와 그곳에 정착한다. 1996년 8월 일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취재를 하던 호시노 미치오는 러시아 캄차카 반도의 쿠릴 호반에서 불곰의 습격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사춘기 시절부터 일본 홋카이도 큰곰과 자신을 하나로 여겼던 호시노는 그를 공격한 캄차카의 불곰에게 유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는 “만일 알래스카에서 야영을 할 경우, 곰의 습격에 대해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더 이상 알래스카가 아니라는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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