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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해리 포터 최종편’과 겨룬 성장소설

등록 2007-12-14 21:35수정 2007-12-17 18:27

〈리버보이〉
〈리버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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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정해영 옮김/다산책방·9000원

<리버보이>는 언제나 곁에 앉아 자신의 삶을 지지해주던 단 한 명의 관객과 죽음으로 작별하는 열다섯 살 소녀의 이야기다. 어른도, 아이도 아닌 소녀가 갑작스레 떠나버린 관중의 빈자리에 다시 생명을 채우는 며칠 동안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새겼다.

주인공 제스는 수영대회 메달을 방에 그득히 늘어놓을 정도로 수영을 좋아하고, 소질도 있는 수영소녀다. 화가인 할아버지는 그런 제스에게서 그림의 영감을 얻는다. 제스는 할아버지의 ‘뮤즈’이고, 할아버지는 제스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다. 제스가 평화롭게 수영을 하고 있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진다.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는 주위의 권고를 뿌리치고 할아버지는 자신이 나고 자란 시골의 강가로 가족휴가를 가려던 계획을 강행한다.

손녀와 할아버지라는 도식적인 설정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열다섯 살 손녀의 눈에 비친 지극히 인간적인 할아버지의 모습 때문이다. 그저 정 많고, 인자한 웃음을 가득 머금은 고정관념 속의 할아버지가 아니라 부족함을 끌어안고 살아와 이제는 죽음을 맞닥뜨린 초라한 인간일 뿐이다. 자신에게 수영이 그렇듯, 그림이라는 가슴 속 불을 평생 지니고 살아온 인간이기도 하다.

“할아버지의 눈에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할아버지 자신도 숨길 수 없는 어떤 것. 할아버지가 말로는 표현하지 않는 어떤 것. 그래서 그녀는 냉소적인 의심을 거두곤 했다.”(84쪽)


“할아버지는 그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읽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만큼 사랑하기도 쉬운 사람이었다.”(116쪽)

그는 강가에서 생의 마지막 그림이 될 ‘리버 보이’를 그리는 데 전념한다. 기력이 쇠해 붓을 놀릴 힘도 없지만, 마지막 열정을 불태운다. 제스는 곁에서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실은 누구도 도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할아버지는 혼자서 마지막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혼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칫 탄력을 잃을 수 있는 이야기에 작가는 능숙하게 판타지와 미스터리 요소를 버무려 넣는다. 할아버지의 그림 제목이기도 하고, 제스가 강가에서 마주친 의문의 소년에게 붙인 이름이기도 한 ‘리버 보이’의 존재가 그렇다. 제스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기운과 미스터리한 리버 보이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한 생명의 내음에 동시에 사로잡힌다. 이야기는 강물처럼 흐르며 인간의 삶과 생명을 은유하는 강과 생명이 형상화된 모습인 리버 보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그림을 하나로 포갠다.

지난 10월 말에 출시돼 지금까지 5만2천부가 팔린 이 책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해리 포터> 마지막 시리즈에 눌리지 않고, 오히려 힘을 얻었다. ‘<해리 포터>를 제치고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책을 낸 출판사가 내건 광고 효과를 보기도 했고, 실제로 <해리 포터>와 대척점에 있는 감성을 성공적으로 담아낸 작품이기도 하다. 책을 편집한 다산북스 정지영 대리는 “자녀에게 책을 사주려는 부모들이 많아 40대 독자의 구매 비율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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