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온한’ 뉴라이트 역사관 정밀해부
〈뉴라이트 위험한 교과서, 바로 읽기〉
반동의 속성은 본디 퇴행이다. 구시대의 뭇 괴물들이 되살아나 악악댄다. 이들의 거꾸로 돌기와 비틀기 동작은 권력의 등을 타면서 거침없고 현란하다. 그 우스꽝스런 소극(笑劇) 중 하나가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파문’이다. 뉴라이트의 ‘무(모)한 도전’이 이뤄낸 업적은 실로 장대하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독재자란 오명을 벗고, ‘건국의 아버지’와 ‘산업화의 지도자’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낡은 지폐 같은 망명정부가 아닌 미군정기로 자신의 모태를 되찾았다. ‘불온한’ 세력들이 추앙하고 있는 백범 김구는 좌익 테러리스트란 실체를 온전히 얻었고, ‘친일파’는 따져보니 반민족행위자가 아닌 ‘제도에 적응하고 훈련받은 능력있는 인적 자본’이었다.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일등공신’이 그들이다. 뉴라이트의 사상적 거처인 ‘교과서포럼’은 종국에는 2008년 3월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펴내면서 이를 대한민국의 문명사적 원류를 살핀 대안 교과서라고 설파한다.
<뉴라이트 위험한 교과서, 바로 읽기>는 제목 그대로 이런 뉴라이트 역사관에 대한 비판적 해부다. 역사학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등 역사학계의 진보적 학자들이 대거 참여해 뉴라이트 역사인식과 주장의 허구성을 까발린다. <역사비평> 등에 발표한 글을 고치고, 북한사에 대한 분석을 덧붙였다.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에 대한 총체적 비판서다. 뉴라이트 역사관에 대한 궁금증을 25개의 문답풀이 형태로 꼼꼼히 살피고, 그 위험성을 경고한 각종 성명서도 모았다. 역사교육연대회의 지음/서해문집·1만4900원.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 100년 전 안중근을 만나다
〈안중근 평전〉
“이토가 기차에서 내렸다. 군대가 경계를 붙이고 군악대 연주가 하늘을 울리며 귀에 들어왔다. … 어째서 세상일이 이렇게 공평하지 못할까? 슬프도다. 이웃나라를 강제로 빼앗고 사람의 목숨을 참혹하게 해치는 자는 저렇게 날뛰고 도무지 거리낌이 없는데, 왜 죄 없고 어질고 약한 민족은 오히려 이처럼 곤경에 빠져야 하는가?”(안중근 <안응칠 역사>)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 직전 머릿속에 스쳐간 생각을 훗날 감옥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이토는 1907년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조선 군대를 강제 해산시켜 조선을 식민지화한 주역이었다. 오늘날 강대국의 횡포에 저항했다가 누명을 쓰고 죽어가는 제3세계의 젊은이들도 이런 생각을 품었을까?
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암살한 의거 100돌이고, 내년은 그가 뤼순(여순) 감옥에서 순국한 지 100돌 되는 해다. 일제는 그를 처형한 뒤 주검조차 돌려주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그의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인물들을 ‘재발견’하는 작업을 계속해온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잊혀져가는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되살려냈다. 하얼빈 의거 외에도 안 의사가 자신을 희생하며 벌였던 국채보상운동과 교육사업 등을 조명하며, 독립운동가이자 세계평화주의자였던 선각적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안 의사는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을 통해 한·중·일이 공동으로 동양평화회의를 구성하자고 제안하는 등 동북아 평화에 대한 염원을 포기하지 않았다. /시대의창·1만7800원.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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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내 광고판에 레이더가?
〈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
세계의 교과서는 한국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가 한국 관련 왜곡과 오류의 뿌리인 각국 교과서를 철저히 분석했다. 가까운 일본과 중국은 물론 저 멀리 파라과이와 튀니지까지 40여개 나라 500여종의 교과서를 살폈다. ‘교과서 전문교수’가 살펴본 교과서는 곳곳에서 오류가 발견된다. “북한의 침입에 대비해 서울 시내의 광고판들에는 레이더 설비가 감춰져 있다.”(캐나다) “태권도는 중국에서 차용한 것이다.”(오스트레일리아) “비록 당사자들의 동의가 따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결혼이 중매로 이루어진다.”(미국)….
오류만 가득 찬 것은 아니다. 튀니지 교과서는 한국을 신흥공업국의 대표사례로 25쪽에 걸쳐 소개하며, “거의 선진국에 도달한 국가”로 주목했다. 러시아 교과서는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고 시각 변화를 보였고, 체코 교과서는 옛 동맹국 북한을 비판한다. 각국의 교과서는 의도적 ‘왜곡’보다는, 정확한 정보와 충실한 자료가 없어 생긴 ‘오류’가 더 많았다. 한국의 국가적 지원과 관심이 부족한 탓에, 외국 교과서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본이 지은이에게는 고맙기까지 하다. 지은이는 “우리나라가 외국 교과서에서 얼마나 저평가되는지를 보여줘 외국 교과서 분석사업과 한국 이해자료 개발사업의 중요성, 해외 한국학 지원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싶었다.” 교과서 문제는 정부가 나서 외교문제화할 게 아니라, 민간 차원의 학술적 노력과 문화교류를 통한 해결이 답이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푸른숲·1만6000원. 김순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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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알사상 탄생시킨 ‘민존관비’
〈다석 류영모〉
다석 류영모(1890~1981)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함석헌의 스승으로 그가 남긴 씨알사상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신학자이자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류영모의 제자로 다석사상 연구서를 여러 권 집필한 지은이가 일반 독자들에게 다석의 철학을 알리고자 쉽게 풀어쓴 입문서다.
서울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류영모는 열다섯살 때 당시 신교육에 큰 영향을 준 기독교를 자연스럽게 접하며 독실한 신자가 됐다. 특히 함석헌·한경직처럼 한국 기독교사의 중요한 인물들을 여럿 배출한 오산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기독교 정신을 가르치는 데 힘썼다. 그러나 2년간의 교사생활 중 톨스토이와 불경, 노자 등을 공부하며 그가 가졌던 전통신앙은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교회를 비롯한 전통적인 기독교의 제도와 관습을 비판하면서 석가의 불성, 공자의 인성, 예수의 영성을 동일시한 그의 주장은 당시의 진보적인 무교회 신자들마저 충격에 빠뜨렸다. 또한 입신양명을 철저히 배격하며 육체적 노동을 강조해 젊은 시절 시골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산 탓에 다른 기독교 운동가에 비해 그 이름이 덜 알려지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을 신성시하고 모든 종류의 우월함이나 특권을 거부하는 그의 ‘민존관비’ 사상은 훗날 씨알사상의 토대가 됐다. 다석의 사상을 ‘씨알’이라는 단어로 옮기며 발전시킨 함석헌은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오늘의 내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평생을 금욕적으로 살며 영성신앙을 추구한 스승을 기렸다. 박영호 지음/두레·1만2000원.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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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탐험가’의 커피문화 비평
〈모든 요일의 카페〉
‘팍스 아메리카나-조급증-우리.’ <모든 요일의 카페>의 지은이인 이명석씨는 한국에서 에스프레소를 맛없게 만드는 ‘악의 축’으로 이 세 가지 요소를 지목한다. 국내에 에스프레소 커피가 들어온 계기는 스타벅스를 비롯한 미국의 시애틀 계열 커피 전문점의 진출이다. 이들은 에스프레소 계열 커피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 시럽을 첨가해 먹는 문화도 전파했다. 우유와 시럽 넣는 걸 전제해 강하기만 하고 풍미는 떨어지는 커피를 만든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한국의 많은 카페들이 기계 판매처에서 저가에 패키지로 공급해주는 원두를 고민 없이 받아 쓰고, ‘팍스 아메리카나’의 영향으로 에스프레소의 진짜 맛을 즐기지 못한 사람들은 쓴 커피에 우유와 시럽을 넣는다.
<이명석의 유쾌한 일본만화 편력기> 등을 썼던 지은이는 자신을 ‘카페 정키’라고 부른다. 지은이가 만들어낸 용어인 카페 정키는 카페 여기저기를 떠도는 여행자이자, 음료뿐 아니라 주변 소음, 음악 등 카페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 반응하는 비평가다. 이 책은 커피에 대한 전문 지식을 나열하거나, 가볼 만한 카페를 일목요연하게 소개하지는 않는다. 카페와 관련된 일상의 경험과, 커피에 대한 정보 등이 경쾌한 문장으로 한데 묶여 있다. “도쿄 기치조지의 카페 ‘요코미’에 들어선 순간, 중학생 때 읽은 소설 속 한 소년의 다락방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같은 경험담을 읽다보면 20~30대 여성과 수다를 떨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지은이는 올해 불혹이 된 남자다. 이명석 지음/효형출판·1만3000원.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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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급 물리학자가 신뢰한 ‘과학 너머’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
“물리학을 믿는 나 같은 사람들은 과거·현재·미래의 구별이 단지 끈질기게 남는 환상일 뿐임을 알고 있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숨지기 한 달 전에 남긴 문장이다. ‘시를 사랑한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1923~) 역시 그랬다. “조화로운 우주 전체를 놓고 볼 때 과거와 미래는 절대적인 의미가 없다.” 다이슨이 보기에 물리학뿐 아니라 인간사에서도 시공간을 과거·현재·미래로 나누는 일은 옹졸한 짓이었다. 출간된 지 30년 만에 우리말로 번역된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는 첨단 과학의 한복판에서 맹렬히 활동했던 과학자의 회고록이자 철학적 에세이다. 다이슨은 이 책에서 50여년 동안 자신이 만난 사람과 겪은 사건을 향해 ‘사색의 두레박’을 던진다. 물리학자로서 그는 24살 때 버스 안에서 양자전기역학(QED)을 수학적으로 깔끔히 설명하는 방정식을 창안함으로써 이미지와 아이디어의 뒤죽박죽 상태였던 양자역학을 오롯이 세운 사람이다. 하지만 인간과 우주, 역사와 신이란 무엇인가를 성찰하는 그의 시선은 분석을 넘어 문학에 이른다. “어쩌면 개인의 자유와 공공의 안전을 결합시켜야 한다는, 영속적이고 반복적인 문제를 다룰 때, 위험 대 이익의 득실 분석보다 위대한 시인의 지혜가 더 확실한 길잡이가 될지도 모릅니다.” ‘과학 너머’를 신뢰했고 참된 윤리를 갈망했던 그에게 2차 세계대전의 절망이 너무도 깊었기 때문이다. “미친 세상은 어디로 가는가? 어딘가 절망의 이면으로.”(엘리엇) 과학자가 호기심을 좇다 영혼을 팔아넘기는 파우스트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실천한 기록이 24꼭지에 담겼다. 김희봉 옮김/사이언스북스·2만원. 전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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