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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90년대 이후 인류사 큰 변화 궁금해 주로 신간 읽죠”

등록 2016-12-14 18:05수정 2016-12-14 20:55

[짬] 생애 첫 칼럼집 펴낸, 김병익 문학평론가
<시선의 저편>의 저자 김병익 문학평론가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문학과지성사 건물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시선의 저편>의 저자 김병익 문학평론가가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문학과지성사 건물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문학평론가 김병익(78) 선생이 2013년 6월부터 <한겨레> ‘특별기고’ 칼럼 지면에 써온 글이 한권의 책으로 나왔다. <시선의 저편-만년의 양식을 찾아서>(문학과지성사). 그는 서문에서 칼럼을 “서둘러 한자리에 모은 것은 내 첫 독자인 아내 정지영과의 맺음 50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를 지난 13일 서울 서교동 문학과지성사 사옥 6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책 끝엔 70여권의 책 목록이 있다. 칼럼에서 인용한 책들이다. ‘김병익 특별기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의 사유가 독서체험에 바탕해 길을 뻗는다는 것이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은퇴 이후 소일거리인 책읽기가 칼럼이 됐으며 이 글은 그를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유일한 통로 구실을 한다.

“오전엔 신문을 읽어요. <한겨레> 등 종합지 셋, 스포츠신문 하나를 구독합니다. 스포츠지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웃음) 만화나 게임을 보면 머리를 식히는 데 좋아요. 책은 오후에 읽습니다. 열흘에 두권가량 읽죠.” 책 내용 중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면 따로 메모하고 거기에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적는다. 이 ‘댓글’ 메모가 매해 A4 용지로 250~300장가량 된다고 했다.

“출판사를 하면서 자꾸 신간을 봐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저는 주로 신간을 읽습니다. 고전의 지혜는 실천하든 안 하든 대체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죠. 하지만 지금 우리가 부닥치고 있는 문제는 인류사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입니다. 세계가 어떤 길로 가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 신간을 읽는 것이죠.” 한겨레 책섹션 등을 보고 흥미로운 신간을 발견하면 온라인으로 구매한다고 했다. 70여권 책 목록의 다수는 문명, 생태, 과학기술 관련 책이다.

‘한겨레’ 기고글 담은 ‘시선의 저편’
글에 인용한 70여권 책 목록도
“은퇴 뒤 소일거리 독서가 글 바탕”

“인공지능, 디엔에이 연구 발전으로
피조물 인간, 창조주로 신분상승
촛불은 ‘민주주의 일상화’ 촉구”

그는 1990년대를 기점으로 인류사가 새 단계로 비약하고 있다고 했다. ‘사이버’와 ‘디엔에이’가 이런 사유의 매개다. “한편에선 인공지능이 출현해 인간을 대신하려 하고 있죠. 또 디엔에이 개발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 인간을 수정하고 새로 만들어내려 합니다. 인간이 피조물에서 창조주로 신분상 비약을 하고 있는 것이죠.”

김병익 문학평론가.
김병익 문학평론가.
이런 변화가 당혹스럽다고 했다. “유전자 변형을 통해 (새로 태어날) 당신 아이가 병이 없고 머리 좋고 잘생기게 해주겠다는 권유를 받는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자연의 유전자 변형은 바라지 않으면서 자식은 그렇게 되길 원하는 그런 ‘불연속의 사태’가 일상생활 전반에서 생겨날 겁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혜택에 즐거워하면서도 이내 ‘이렇게 낙관만 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고 했다. “첨단과학기술은 인류에게 풍요와 편리함을 주지만 한편으론 지구적 자원의 탕진, 환경 파괴, 인간사 불평등의 심화와 같은 문제도 가져옵니다. 비정규직 문제도 과학기술 개발이 끼어들면서 커진 것이죠.”

그가 보기에, 지난 인간의 역사는 조금씩 개선되어 왔다. “전쟁이나 재난, 산업화 시절의 공해 등 부정적 요소도 있지만 긴 흐름에서 보면 인간의 권리가 조금씩 존중되면서 개선되어 온 게 사실이죠.” 90년대 이후 변화가 세계에 궁극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란 질문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 책을 보면 이게 맞는 것 같고 다른 책을 보면 그게 맞는 것 같고, 뒤죽박죽이죠. 그래서 신간을 봅니다.”

그는 칼럼에서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그가 알기 위해 공부한 흔적을 ‘겸손하게’ 풀어낸다. 독자들은 ‘열광’ 대신 ‘숙고’의 시간을 갖게 된다.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다룬 지난해 10월30일치 글(디지털 툴, 그 불편한 기대)을 보자. 전문가들의 상반된 논의를 전한 뒤 그는 자신의 문제로 돌아온다. “갖가지 새 네트워크 서비스에 대해 정작 그 사용법을 모르기에 그 힘을 높이 평가하는 이런 내 무식한 역설은 외려 자연스럽다.”

화제를 문학으로 돌리려 하자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드니까 언어나 비유, 상징 이런 것보다는 현장이나 실물, 삶 그 자체에 흥미가 갑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60~70년대의 문학은 한국전쟁이란 소재를 다루면서 유신 등 독재권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작가 의식을 드러냈죠. 전쟁과 기아, 분단을 소재로 자유의 문제를 다뤘죠. 지금 작가들은 사적인 체험과 미시적 감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 탓을 했다. “모든 시대는 각기 자기 시대 나름의 독특한 표현이 있어요. 제가 지금 젊은 작가들의 감수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죠.”

그는 지난 10월 동아일보사가 주는 인촌상(언론·문화 부문)을 받았다. “돈벼락을 맞아 지난 두달 (밥 사느라) 바빴어요. 축출당한 언론사에서 상을 받았으니 아이러니이죠. 저는 ‘정치학과 열외’이고 ‘문단 업둥이’이기도 하죠.” 그는 75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당했다. 정치학과 출신이면서 정치와 다른 길을 갔고, 문학을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았으면서 문학비평가로 활동했다. 그가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란 뜻의 외국어로 자신의 삶을 설명한 이유다.

최근 ‘촛불 혁명’의 의미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해방 뒤 민주주의가 헌법 안으로 들어왔지만, 일상 속으로는 침투하지 못했어요. (이번 촛불은) 민주주의가 일상 속으로 더 확산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거래 관계에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힘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갑을관계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민주주의가 여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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