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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료’에서 황금‘염려’까지…빗나간 황금종려상 예측들

등록 2022-06-02 05:00수정 2022-06-02 07:30

[오승훈의 이 칸 저 칸] (18) 칸은 아무도 모른다
제75회 칸국제영화제 취재 마침표
칸 폐막은 진정한 ‘나의 해방일지’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의 주요 행사가 열리는 ‘팔레 드 페스티발’ 건물. 칸/오승훈 기자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의 주요 행사가 열리는 ‘팔레 드 페스티발’ 건물. 칸/오승훈 기자

<아무도 모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 영화는 칸국제영화제 수상 결과를 예측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일깨우는 제목처럼 들린다. 실제 2004년 57회 칸영화제가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야기라 유아에게 최우수남자배우상을 안길 때조차 그 결과는 아무도 몰랐다. 올해도 마찬가지.

사실 외신들의 호평과 높은 평점에도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못받는 영화가 있는 반면, 혹평과 낮은 평점에도 보란 듯이 최고상을 거머쥔 사례도 적지 않다. 예컨대 지난해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티탄>은 외신 평점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작품. 결국 모든 상이 그러하겠지만 칸도 심사위원들의 맘인 거. 현지에서 만난 허문영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기자들의 칸 예측 기사는 항상 오보였다”며 “칸은 정말 알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을 지낸 송강호도 인터뷰에서 “칸의 심사 결과에는 집행위원장이든 누구든 영향을 끼칠 수 없다”며 “그런 점에서 칸은 정말 알 수 없고, 또 알 수 없다“고 했다.

칸영화제 행사장인 ‘팔레 드 페스티발’ 맞은편에 내걸린 한국 영화 &lt;헤어질 결심&gt;과 &lt;브로커&gt; 대형 포스터. 칸/오승훈 기자
칸영화제 행사장인 ‘팔레 드 페스티발’ 맞은편에 내걸린 한국 영화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 대형 포스터. 칸/오승훈 기자

하지만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알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 현지 취재기자들이 취향반 취재반으로 수상작 예측을 시도한 이유였다. 지난달 23일 저녁(현지시각), <헤어질 결심>의 공식시사회를 마친 룸메이트 기자단도 하릴없는 수상 예측을 했더랬다. 박찬욱 전문가인 타사 선배는 필름 누아르의 전통을 언급하며 “<헤어질 결심>은 상 받을 결심을 하고 만든 수출용 영화 같다. 이번에는 ‘칸느박’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듯하다”고 했다. 타사 후배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황금종려상이 아니라 황금‘종료상’을 받는 거 아니냐?”고 말장난하자 후배는 “그러다가 괜히 황금‘염려상’을 받는 거 아닐까요?”라고 대꾸했다. 듣고 있던 선배는 “숙소 앞 슈퍼 영업시간 종료가 염려된다”며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처럼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날 밤, 외신들의 호평이 쏟아지자 ‘상 받을 결심’은 더욱 힘을 얻었다. 영국 <가디언>의 영화담당 기자이자 평론가인 피터 브래드쇼가 <헤어질 결심>에 5점 만점을 줬고, 이튿날 주요 외신들의 평점은 이날까지 공개된 작품 가운데 최고점인 3.2점을 기록했다. 2위를 기록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은 2.5점에 그쳤다. 마르크시즘과 계급에 대한 짓궂은 유머를 뒤섞은 <슬픔의 삼각형>은 시종 유쾌하고 발칙한 영화이긴 했지만 황금종려상까지는 아닌 것 같았다. 허 위원장이 “대단한 영화”라고 극찬한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아마겟돈 타임>도 평점이 낮았다. 진짜 게임 종료각인가?

부질없는 수상 예측을 하느라 칸 해변에 어느새 날이 저물고 있다. 칸/오승훈 기자
부질없는 수상 예측을 하느라 칸 해변에 어느새 날이 저물고 있다. 칸/오승훈 기자

하지만 장담하기엔 아직 일렀다. 앞서 말했듯 평점과 결과는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거니와, 이날까지 공개되지 않은 경쟁작이 10편 가까이 남았다는 점, 거기엔 두 번이나 황금종려상을 가져간 ‘칸의 호형호제’ 다르덴 형제와 2018년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가 포함돼 있었다. 섣부른 예측을 경계할 이유는 충분했다. 이런 상황에서 후배와 난 “다르덴이 등판하면 결과가 다르덴?”이라고 찧고 까불었지만, 수상 결과가 궁금하긴 매한가지였다.

26일 저녁, 고레에다 감독의 <브로커> 공식 시사를 마쳤을 때, 뤼미에르 대극장을 감돌던 뜨거운 박수소리(분명 <헤어질 결심>보다 더 열광적인 느낌적 느낌)에 난, 이 영화가 고레에다에게 두번째 황금종려상을 줄지 모른다는 ‘뇌피셜’에 휩싸였다. 감동적인 서사 속에 우리 모두에 대한 위로가 담겨 있는 이 착한 영화가 상을 안 받으면 어떤 영화가 받는가 말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 그러나 불법 입양 브로커라는 일종의 인신매매가 주는 불편함은 외신들로 하여금 혹평을 쏟아내게 했고 분위기는 다시 <헤어질 결심>으로 기울었다.

28일(현지시각) 폐막한 75회 칸영화제에서 &lt;슬픔의 삼각형&gt;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스웨덴 출신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이 양손을 들며 환호하고 있다. 마치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는 표정일까. EPA/연합뉴스
28일(현지시각) 폐막한 75회 칸영화제에서 <슬픔의 삼각형>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스웨덴 출신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이 양손을 들며 환호하고 있다. 마치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는 표정일까. EPA/연합뉴스

사실 수상 결과를 아무도 모른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심사위원단은 사전에 결과를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 결과는 시상식이 있는 날 오후, 당사자에게 ‘시상식에 참석하라’는 언질 정도로 우선 전해진다.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 팀에 칸영화제 쪽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고 알려진 시각은 28일 오후 4시 무렵. 투자배급사인 씨제이이엔엠(CJ ENM)을 통해 이러한 사실이 공유되자 한국 기자들 사이에선 긴장감이 감돌았다. 거대한 일거리의 쓰나미를 예감한 것. 타사 선배는 “전화가 왔다는 것은 둘 다 뭐든 상을 준다는 거”라며 “<헤어질 결심> 황금종려상, <브로커> 송강호 최우수남자배우상일 경우 귀국 비행기표를 연기해야 할 거”라고 했다. 결과는 감독상(박찬욱)과 최우수남자배우상(송강호)의 조합. 황금종려상은 <헤어질 결심>에 출연한 이정현이 ‘설마 했던 니가 나를 떠나버렸어~’라고 절로 노랠 부를 만한 <슬픔의 삼각형>.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이 영화로 황금종려상을 두 번 수상한 9번째 감독이 됐다.

‘이 칸에서 저 칸’은 너무도 아득해서 칸은 역시나 알 수 없는 곳이었다. 결과적으로 마지막까지 일복이 터질 거 같다는 예감은 황금‘염려상’감이었고, 새벽 1시까지 마감하고 50분 짐 싼 뒤 2시에 우버 불러 밀항하듯 귀국길에 오른 난 황금‘종료상’감이었다. 일만 오지게 하다 저승각으로 떠나는 ‘이 칸 저 칸’과의 마지막 작별이 반가운 이유였다. 이것은 진정한 ‘나의 (칸) 해방일지’.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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