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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이태원 참사 100일’ 오늘, 언론은 댓글창을 닫을까?

등록 2023-02-04 09:00수정 2023-02-04 17:25

[한겨레S]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혐오의 온상이 된 ‘댓글창’
지난해 12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이태원 관광특구연합회, 시민대책회의 활동가들이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의 추모 공간을 재단장 하고 있다. 한 유가족이 벽에 붙은 추모메세지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해 12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이태원 관광특구연합회, 시민대책회의 활동가들이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의 추모 공간을 재단장 하고 있다. 한 유가족이 벽에 붙은 추모메세지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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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내 직업을 이야기하면 모두가 제일 먼저 하는 걱정이 ‘댓글’이다. 악플도 심심찮게 달릴 텐데 마음고생이 많으시겠어요. 사람들 하는 이야기 많이 신경 쓰이시죠…. 그런 걱정을 들을 때마다 나는 뭐라고 답하면 좋을지 몰라 그저 웃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순간부터 댓글 보는 일을 그만뒀기 때문이다. 단순히 글에 달린 악플이 보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다. 당장 나부터 방송계와 미디어 산업에 대한 이런저런 의견을 글로 써서 먹고사는 사람인데, 나에 대한 타인의 의견이 마음에 안 든다고 댓글창을 외면하는 건 좀 치사한 일 아닌가. 하지만 댓글을 통해 유의미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는 갑갑함만큼은 이길 수 없었다.

‘술탄 오브 더 티브이’가 주로 연예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던 시절, 댓글은 크게 네 종류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 독자가 좋아하는 사람을 호평한 경우. 둘, 독자가 좋아하는 사람을 혹평한 경우. 셋, 독자가 싫어하는 사람을 호평한 경우. 넷, 독자가 싫어하는 사람을 혹평한 경우. 댓글이 내게 우호적인 건 나와 독자가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첫번째와 네번째 경우다. 독자가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해 비판하는 두번째 경우, 댓글에서 나는 “사소한 걸 꼬투리 잡아 연예인에게 갑질하려 드는 기레기”가 됐고, 독자가 싫어하는 연예인을 옹호하는 세번째 경우에는 “얼마를 받으면 이런 ‘실드’를 쳐주나”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내 칼럼에 달리는 댓글은 대체로 이 네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건 내 글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는, 글의 대상이 된 연예인을 향한 독자의 호오 표현에 가까웠다. 그나마 그런 댓글은 글을 조금이라도 읽어보고 쓴 것이니 그래도 나았다. 정치적 지향성이 상대적으로 선명한 편인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의 숙명인 걸까. 어떤 날에는 글과 전혀 상관없는 댓글들이 달리기도 했다. 특정 정치인을 향한 욕설, 음모론을 퍼트리는 프로파간다성 댓글, 내 글과 무관하게 매체를 향한 적개심만 표한 댓글… 글을 읽어보지도 않고 단 댓글이 주렁주렁 열린 댓글창 앞에서 나는 애꿎은 손톱만 잘근잘근 씹어댔다. 상황이 이러니, ‘글을 못 쓴다’라거나 ‘필자가 지나치게 편파적이다’ 같은 댓글을 만나면 차라리 반가웠다. 나는 댓글로 유의미한 의견을 만나는 일을 포기했고, 그리 오래지 않아 댓글을 보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에겐 돈벌이 수단인 댓글

2020년, 젊은 연예인을 한 해에 둘이나 잃어버린 후에야 인터넷 포털들은 연예뉴스에서 댓글창을 닫기 시작했다. 댓글창이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순기능보다 인신공격, 허위사실 유포, 모욕 등의 역기능에 더 특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물론 악플을 달던 사람들이 포털 댓글창이 사라졌다고 갑자기 개과천선한 건 아니어서, 이들은 각자 자신들이 놀기 좋은 커뮤니티로 이동해 그곳에서 악플과 혐오 표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대로변 격인 포털에서만큼은 연예인을 향한 악플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무렵, 알고 지내던 한 연예 비평 매체 대표와 대화를 나누다가 다소 의외의 얘기를 들었다. 연예뉴스 댓글창이 사라진 이후, 회사의 수익이 줄었다는 고백이었다. “사람들이 밑에서 댓글을 달고 의견을 교류하고, 때로는 댓글창에서 싸우기도 하잖아요. 그러면 어떤 기사는 조직적으로 ‘댓글 방어’를 하라고 좌표가 찍히기도 하고, 그에 맞대응하면서 공격 좌표가 찍히기도 하죠. 그러면 사람들이 댓글을 달기 위해 기사 페이지를 방문하는 빈도가 늘어나니까, 기사의 페이지 뷰가 계속 증가하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이 댓글을 달 수 없으니까, 포털에서 페이지 뷰가 그만큼 떨어진 거죠.”

미처 생각해본 적 없는 사실이라 충격적이었다. 그 말을 조금만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매체의 수익을 위해 일부러 독자들끼리 댓글창에서 분쟁을 빚도록 유도하는 기사를 쓸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물론 내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 대표가 운영하는 매체는 가십성 기사보다는 전문성을 지닌 분석 기사나 비평을 주로 싣는 매체였으니, 그런 부도덕한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매체조차 댓글창이 닫히며 유의미하게 수익 차이가 발생했다면, 가십성 기사를 주로 써왔던 매체들은 그동안 악플로 얼마나 많은 이익을 거뒀던 걸까? 나는 여성 아이돌이 속옷을 입었네 아니네를 집요하게 물어뜯던 몇몇 매체를 떠올렸다. 그들이 왜 댓글창이 난장판이 되도록 내버려 뒀는지, 왜 공론의 장이 오염되도록 방치했는지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댓글창의 쓸모는 과연 뭘까

연예뉴스에서 댓글창이 사라졌으니 이제 괜찮은 걸까? 그럴 리 없다. 혐오 발언을 하고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연예인만 가지고 떠들 리 없었다. 정치면에서, 사회면에서, 경제면에서, 사람들은 댓글창을 무대로 혐오 발언을 펼치고 다녔다. 사람들은 댓글창에서 성범죄를 고발하고 나선 피해자들을 향해 ‘꽃뱀’이라고 손가락질하고, 특정 지역 사람들을 향한 지역감정을 표출하고, 중국 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감과 중국인에 대한 반감을 구분하지 못해 중국 전체를 싸잡아 욕하고 조롱했으며, 이슬람을 향한 편견과 증오를 토해냈다. 참사가 터지면 이 일에서 정치적 리스크를 제거하는 데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과 이 일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심산이 노골적인 사람들이 댓글창에서 싸워댔다.

물론 모든 매체가 그저 포털을 통한 페이지 뷰 수익을 위해서 댓글창을 방치하는 건 아닐 것이다. 여전히 독자에게서 유의미한 피드백을 얻고 싶어 하는 기자들도 많고, 무엇보다 독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 망설여질 것이다. 하지만 과연 댓글창이 유의미한 피드백으로 존재하는 걸까?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전국 3만138가구, 만 19살 이상 가구원 5만8936명을 대상으로 펼친 ‘2022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포털 뉴스에 댓글을 달아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포털 뉴스 이용자의 7.5%에 불과하다. 열명 중에 한명이 채 안 되는 수치다.

반면 댓글을 “매우 자주 본다”고 응답한 사람은 2.5%, “자주 본다”고 응답한 사람은 17.6%, “가끔 본다”고 응답한 사람은 32.7%로 총 52.8%에 달한다. 댓글을 쓰는 사람보다 7배 많다. 열성적으로 댓글을 다는 소수 독자가 자극적이고 수위가 높은 표현을 펼치기 시작하면, 피로감으로 인해 다른 의견을 지닌 독자들이 댓글 다는 일을 줄이기도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댓글을 통해 여론 동향을 가늠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댓글창을 통해 유의미한 피드백을 받으려는 시도가, 소수의 의견을 전체 여론 동향으로 착각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일까. 해외에서는 아예 댓글창을 닫아버리는 언론들이 등장하고 있다 한다. 〈미디어오늘〉을 인용하자면, 미국 “엔피알(NPR·내셔널퍼블릭라디오)은 2016년 댓글창 폐지를 알리며 △댓글 이용자가 방문자의 0.003%에 불과하고 △엔피알 기자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고 △악플과 주제에서 벗어난 댓글로 인해 뉴스의 신뢰성이 떨어지며 △댓글 정화 비용도 상당하다는 점 등을 들었다.”(‘기사 다 읽거나 퀴즈 맞힌 독자만 댓글 쓰게 한다면’, 2023년 1월31일,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유의미한 공론의 장을 만들기 위해 뉴스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댓글을 정화하려 시도도 해봤지만, 그 노력이 무색했다는 이야기다.

‘진정한 추모’ 위한 최소한의 태도

이 글이 〈한겨레S〉 지면에 실리는 2023년 2월4일엔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제’가 열린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보도자료를 내고 “시민추모대회가 진정한 추모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언론의 신중한 취재·보도와 더불어, 2차 가해의 온상으로 지적된 댓글창에 대한 언론사와 포털의 전향적 대책을 다시 요청한다”고 밝혔다. 두 단체는 지난해 12월16일 시민추모제를 앞두고도 카카오와 네이버에 관련 기사 댓글창 닫기를 요구했는데, 카카오는 이에 응했고 네이버는 각 언론사의 재량에 맡겼다. 당시 지상파 3사, 종편 채널 4사, 보도 채널 2사와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연합뉴스〉 등이 댓글창을 닫았다.

댓글창을 닫는다고 해서 혐오 발언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란 정도는 잘 알고 있다. 연예뉴스가 그랬듯, 혐오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은 다시 각종 커뮤니티들로, 소셜미디어로 흘러들어 갈 것이고 그건 또 그거대로 다른 문제가 되겠지. 하지만 최소한 정보를 전달하는 뉴스의 신뢰를 깎아내리고, 뉴스를 혐오 발언으로 오염시키고, 진흙탕 싸움으로 정보의 본질을 가리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포털에서 2차 가해가 벌어지는 일은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 뉴스가 보도되는 2월4일, 언론과 포털들은 어떤 선택을 내릴까. 프리랜서 작가인 나보다 매체 내부에 있는 사람들, 포털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고민이 훨씬 더 깊을 것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부디 그 고민의 결과가 전향적인 대책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그리고 나아가 혐오의 온상이 되어버린 공론의 장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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