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정부 이송을 하루 앞둔 18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윤 대통령은 이를 수용해 재의요구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시에 국민의힘은 법안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면서 더불어민주당에 재협상을 제안했으나, 민주당은 “법안을 더 후퇴시킬 수 없다”며 거부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이태원 참사 특별법 관련 의원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이 법을 공정하게, 여야 간에 원만하게 처리하는 것을 기대한다기보다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유도했다고 판단했다”며 “(정부·여당에) 정치적 타격을 입히고 총선에서 계속 정쟁화하기 위한 의도로 판단해 재의요구권 (행사를 윤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로 의총에서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독소조항이 많은 법안을 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9일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이태원 특별법은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꾸려 10·29 이태원 참사의 원인과 수습 과정에서의 문제점 등을 밝히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국민의힘은 △특조위 위원 11명 중 7명을 야당과 국회의장이 추천하게 한 조항(나머지 4명은 여당 추천) △특조위가 형사재판이 확정된 사건이나 불송치 또는 수사 중지된 사건 기록을 모두 열람할 수 있도록 한 조항 등을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한다. 특조위 구성이 ‘야권 쏠림’이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고, 특조위가 사건 기록을 열람해 “재탕, 삼탕 기획 조사할 우려가 있다”(윤 원내대표)는 것이다.
다만 윤 원내대표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민주당을 향해 “특조위 구성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안, 독소조항을 제거하는 안을 갖고 재협상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여야 간 일정 정도 합의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됐다면 거부권 건의를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재의요구권 행사에 대한 여론 부담이 있는 건) 맞다. 그러니까 재협상을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이태원 특별법이 정부로 이송될 경우 재의요구를 할 방침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재의요구권 행사에 무게가 쏠려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다만 재의요구 시점은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은 법안 이송일로부터 휴일을 제외한 15일 이내에 공포하거나 이 기간 안에 국회에 재의를 요구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이 기간 동안 여론 설득과 재의요구 당위성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이태원 특별법까지 재의를 요구할 경우, 취임 뒤 5번째이자, 법안 수로는 9개째 재의요구권 행사가 된다.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 3법, 쌍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야당은 “대통령의 심부름센터를 자처하는 여당에 국민의 분노가 쌓이고 있음을 명심하라”고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임오경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것이 총선용 정쟁이라니 부끄러운 줄 알라”며 “본회의를 통과한 특별법은 특검 삭제, 특조위 활동 및 구성 등 이미 충분히 여당의 의견을 반영해 양보한 법안이므로 더 이상 국민의힘이 거부하고 반대할 명분은 없다”고 말했다. 여당이 재협상을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민주당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여당은 특조위 구성을 흔들어 사실상 무력화하려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며 “국회의장의 중재를 받아들여 마련한 현 수정안에서 더 후퇴하면 유족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여당의 재의요구권 건의에 항의하며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삭발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선담은 기자 s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