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5일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김창남 선정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한국대중음악상이 어느덧 20회를 맞았습니다. 성대하게 여러 음악인들의 잔치로 모시고 싶었으나 온라인 중계 방식으로 발표하게 돼 죄송합니다.”
지난 5일 저녁 유튜브로 공개된 20회 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시상식에서 김창남 선정위원장(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이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다시 예전처럼 오프라인 시상식을 열 법도 했지만, 그러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을 나타낸 것이다. 그는 말을 이었다.
“여기선 다른 시상식의 화려함 대신 따뜻함을 늘 느낍니다. 음악을 어렵게 이어가는 사람들끼리 서로 손잡고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그래, 수고했어. 또 한걸음 나아가보자’ 속삭여주는 것 같은 따스함, 그게 이 상의 진정한 정신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정신이 유지된다면 시상식 형식은 중요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2004년 첫 시상식부터 위원장 맡아
‘노찾사’ 출신이라 쓴 ‘덤터기’ 계속
이명박 정부 ‘갑작스런 지원 불가’ 등
영예로운 고난의 길…여러 부침 겪어
비주류 음악계엔 대중 만날 기회를
주류에겐 창조적 활력 주는 게 의도
20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을 끝으로 20년간 맡아온 선정위원장 자리를 내려놓는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시상식에선 올해의 음반 등 4관왕을 차지한 디제이 겸 프로듀서 250을 비롯해 모두 26개 트로피의 주인공이 무대에 오르거나 영상으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시상식 유튜브 영상에 “처음 봤는데 레드카펫, 턱시도, 드레스도 없었지만 어느 시상식보다 멋지고 값져 보였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한대음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한대음 20년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다른 시상식들이 하지 않는 여러 장르의 음악들에 대한 고민과 결론을 내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댓글이 달렸다.
다음날인 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 교수의 눈빛에선 만감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그는 이번 시상식을 끝으로 20년간 맡아온 선정위원장 자리를 내려놓는다.
“그만둔다 생각하니 지난 20년간 겪은 여러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기도 하고, 능력 안 되는 사람이 맡아서 나도 힘들었고 한국대중음악상도 자리 잡기 힘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겸양을 보태 이렇게 말했지만, 그가 아니었으면 한대음이 지금까지 오기도 쉽지 않았을 터이다. 한대음의 지난 20년은 영예로운 고난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한대음은 2004년 문화연대와 <문화일보> 공동주최로 첫 시상식을 열었다. 인기도, 방송 출연 빈도, 판매량 등이 기준인 기존 음악상과 달리 평론가, 음악방송 피디, 대중음악 기자, 학계 등 전문가들이 음악적 성취에만 초점을 맞춰 선정해보자는 뜻에서 출발했다.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출신이자 대중문화 평론가·연구자인 김 교수가 초대 선정위원장을 맡았다. “처음엔 한번 하고 말 줄 알았어요. 이렇게 계속 ‘덤터기’를 쓰리라곤 생각 못 했죠.”(웃음)
20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김창남 선정위원장(왼쪽)이 디제이 겸 프로듀서 250에게 올해의 음악인 트로피를 수여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2007년 4회 시상식부터 선정위원회가 독자적으로 운영하면서 부침을 겪게 됐다. 5회까진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으로 시상식을 꾸렸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09년 6회 시상식을 일주일 앞두고 돌연 지원 불가 통보가 날아들었다. 시상식을 몇주 연기한 끝에 간신히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에서 소규모로 진행했다. 이후 <한겨레> <이데일리> 등과 공동주최로 시상식을 이어왔으나, 협력이 지속되진 못했다.
“선정위원장으로서 시상식 경비 마련을 위해 여기저기 전화 돌리며 후원을 요청했어요. 원래 친한 사람에게 안부 전화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이라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부탁하는 게 어려웠죠. 거절당하면서 굴욕감을 느낀 적도 있었고요. 그런 가운데서도 도움을 준 분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한대음이 내세운 ‘음악성’에 대한 기준이 뭐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낯선 인디 음악인의 수상을 두고 “대중이 잘 모르는 음악도 대중음악이냐”고 따져 묻는 이도 나왔다. “사실 음악성의 판단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죠. 각 선정위원의 다양한 취향과 기준을 모아 최대한 공통된 결과를 도출하는 수밖에요. 대중성도 그래요. 대중에게 사랑받을 잠재적 가능성이 있지만 매체 등을 통해 알려지지 못한 음악을 찾아 알리고 돕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20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을 끝으로 20년간 맡아온 선정위원장 자리를 내려놓는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그는 “주류 음악계에 창조적 활력을 주고, 비주류 인디 음악인에게 대중을 만날 기회를 주고, 대중에겐 주류권 바깥의 음악을 만날 기회를 주는 것이 이 상의 의도”라며 “20년을 오면서 그 의도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정위원장을 그만두는 이유에 대해 그는 “요즘 음악 트렌드를 따라가기도 버겁고 여러모로 힘에 부친다”며 “무엇보다 20년이 지났는데도 이 상을 안정적인 반석 위에 올리지 못한 데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거운 짐을 남겨놓고 그만두는 게 미안하기도 하다”고 했다. 20년간 일하다 자신과 함께 이번에 그만두는 이지선 선정위 사무국장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선정위는 조만간 후임 위원장을 선출할 예정이다.
“나는 떠나지만, 이 상이 애초 의미를 유지하면서 권위를 가진 상으로 더욱더 발전했으면 합니다. 이 상이 또 하나의 권력이라는 비판도 있는데, 정말 권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동의한다면 권력이 생기고, 이는 권위와 같은 말이 됩니다. 수상자에게 영예뿐 아니라 실제 판매량이 늘어 돈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를 통해 한국의 음악적 저변이 확대되고 다양성 확보에 기여하길 바랍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