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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우리는 ‘떼창의 민족’, 뮤지컬·영화관서도 싱어롱~

등록 2023-06-15 08:00수정 2023-07-25 15:22

[서정민의 뮤직박스]
‘식스 더 뮤지컬’ ‘자우림, 더 원더랜드’ 싱어롱 현장
<식스 더 뮤지컬> 공연 장면. 아이엠컬처 제공
<식스 더 뮤지컬> 공연 장면. 아이엠컬처 제공

가수 콘서트에 온 줄 알았다. 많은 관객들이 야광봉을 흔들며 ‘떼창’을 했다. 내겐 죄다 처음 듣는 노래여서 따라 부를 순 없었지만, 함께 야광봉을 흔들다 보니 절로 흥이 났다. 옆 관객이 목 터져라 노래하는 모습에 덩달아 나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했다. 지난 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식스 더 뮤지컬> 공연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식스 더 뮤지컬>은 역사 속에 갇혀있던 영국 헨리 8세의 여섯 왕비가 21세기 팝스타로 재탄생해 자신들의 얘기를 노래로 풀어내는 형식의 뮤지컬이다. 마치 6인조 걸그룹이 콘서트를 하듯 처음부터 끝까지 뜨거운 무대가 펼쳐진다. 관객들 또한 여느 뮤지컬과 달리 좋아하는 가수 공연에 온 것처럼 즐긴다. 뮤지컬 제작사 아이엠컬처가 ‘싱어롱 데이’ 이벤트를 마련한 건 그래서다.

&lt;식스 더 뮤지컬&gt; 싱어롱 데이 이벤트를 위해 마련된 야광봉과 가사지. 서정민 기자
<식스 더 뮤지컬> 싱어롱 데이 이벤트를 위해 마련된 야광봉과 가사지. 서정민 기자

다른 관객 눈치를 보지 않고 노래를 마음껏 따라 부를 수 있는 싱어롱 데이 이벤트는 5월26일, 6월1·6일에 이어 오는 24·25일까지 모두 다섯 차례 열린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뮤지컬계에서 이런 이벤트가 종종 열렸지만, 팬데믹 기간에는 함성조차 금지돼 꿈도 못 꿨다. 그러다 마침내 모든 규제가 풀리면서 싱어롱 봉인도 해제된 것이다. 지금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도 싱어롱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일 <식스 더 뮤지컬> 공연장 앞에선 관객들에게 야광봉과 노래 가사지를 나눠줬다. 상당수가 엔(N)차 관람자인 듯 능숙하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심지어 대사까지 따라 하는 관객도 있었다.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던 박아무개(24)씨는 “오늘이 6번째 관람이다. 원래 콘서트 같은 뮤지컬인데다 싱어롱까지 하니 정말 흥겹고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며 “앞으로도 4번 더 관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3일 &lt;자우림, 더 원더랜드&gt; 싱어롱 상영회에 참석한 관객들. 서정민 기자
13일 <자우림, 더 원더랜드> 싱어롱 상영회에 참석한 관객들. 서정민 기자

그날 야광봉만 흔들고 ‘떼창’에는 동참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던 중 마침내 내게도 기회가 왔다. 자우림 데뷔 25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영화 <자우림, 더 원더랜드> 싱어롱 상영회를 연다는 것이었다. 영화 마케팅 담당자는 “일반 대중보다 자우림 팬들이 많이 찾는 영화이다 보니 소통을 더욱 친밀하게 해보자는 차원에서 싱어롱 상영회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기회는 13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리는 단 두 차례 상영회. 2018년 <보헤미안 랩소디> 싱어롱 상영회 때 신나게 노래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영화관으로 향했다.

메가박스 코엑스 돌비시네마관 앞에선 자우림 팬인 듯한 이들이 인증샷을 찍으며 분위기를 예열하고 있었다. 들어가니 대부분의 자리가 가득 차 있었다. 팬들도 이날만을 기다린 듯했다. 마침내 영화가 시작됐다. 스크린 속 자우림은 록 페스티벌과 데뷔 25주년 기념 공연장을 오가며 ‘헤이 헤이 헤이’, ‘매직 카펫 라이드’, ‘하하하쏭’, ‘팬이야’ 등 히트곡 퍼레이드를 펼쳤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따라 부르는 이가 없었다. 여느 영화관처럼 다들 스크린에만 집중했다. 침묵을 깨고 혼자 노래할 용기가 나진 않았다. 나는 속으로 따라 부르는 ‘내적 떼창’만 열심히 했다.

13일 &lt;자우림, 더 원더랜드&gt; 싱어롱 상영회에 앞서 인증샷을 찍고 있는 관객들. 서정민 기자
13일 <자우림, 더 원더랜드> 싱어롱 상영회에 앞서 인증샷을 찍고 있는 관객들. 서정민 기자

영화는 또 봐도 감동적이었다. 25년이 됐어도 여전히 치열하게 고민하며 노래하는 자우림의 모습은 나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자우림의 노래 ‘샤이닝’이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흐를 때, 눈물이 찔끔 났던 것도 같다. 그때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자우림 멤버들이 갑자기 영화관으로 들어와 노래하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 있어달라는 뜻의 노래 ‘스테이 위드 미’였다. 그제야 관객들 모두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나도 ‘내적 떼창’에서 ‘외적 떼창’으로 모드 전환했다.

노래를 마친 뒤 김윤아가 물었다. “앞에 다른 노래들도 떼창하셨나요?” “아니요.” “싱어롱 상영인데, 왜…?” “눈치 보느라….” 누군가 외쳤다. “영화 다시 봐요. 처음부터 다 따라 부르게.” 그 얘기에 사람들이 공감의 환호성을 질렀다. 사실 모두가 한마음이었던 것이다.

13일 &lt;자우림, 더 원더랜드&gt; 싱어롱 상영회에서 자우림 멤버들이 직접 나와 관객들과 함께 노래하고 있다. 서정민 기자
13일 <자우림, 더 원더랜드> 싱어롱 상영회에서 자우림 멤버들이 직접 나와 관객들과 함께 노래하고 있다. 서정민 기자

영화 속 김윤아는 공연장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우림은 앞으로도 어리석고 불안하게 음악을 이어갈 거고요, 어리석고 불안한 누군가와 음악으로 이어지고 싶어요.” 그날 영화관 관객들도 그랬다. 다들 어리석고 불안한 존재들이지만, 자우림을 매개로 모여 서로 위로하고 의지했다. 비록 마지막 한 곡뿐이었다 해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떼창’이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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