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학전 보전 추진”…마지막 장소대여 위기 벗어나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김광석의 부조상 위로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김광석 앞에는 ‘당신을 기억합니다’라고 적힌 리본이 달린 꽃바구니와 꽃다발, 소주와 담배 등이 놓여 있었다. 김광석 28주기인 지난 6일 저녁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 앞 김광석 노래비 모습이다.
계단을 내려가니 아늑한 소극장 공간이 펼쳐졌다. 무대 한가운데에는 노래하는 김광석의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다. 김광석의 절친인 가수 박학기는 향을 피우고 술잔에 소주를 따른 뒤 친구의 사진을 바라봤다. 그는 “오늘은 훗날 큰 아름드리나무가 될 씨앗을 만나는 자리”라고 말했다.
가객 김광석은 이곳 학전에서 1천회 공연을 했다. 1996년 1월6일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뒤 해마다 기일이 되면 가족과 친구들은 이곳에 모여 고인을 기렸고, 추모 콘서트도 열었다. 이 모임이 2012년 ‘김광석 노래 부르기’ 대회로 이어졌고, 지난해부터는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로 바뀌었다. 참가자는 김광석 노래와 함께 자신의 창작곡도 선보여야 한다. 김광석 같은 재능 있는 싱어송라이터를 발굴하자는 취지에서다.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오른 7팀이 차례로 무대에 섰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자유롭게’ 등 김광석 노래를 재해석하고, 창작곡을 하나씩 들려줬다. 대부분 20대인 젊은 참가자들은 김광석에 얽힌 사연을 얘기하기도 했다. 서림은 “김광석 노래로 처음 기타를 배웠고, 아버지가 처음 오셨던 대학로 극장이 학전이다. 여기서 노래하니 꿈만 같다”고 했다. 이상웅은 “7살 때 부모님 따라 라이브클럽 갔다가 이 노래를 듣고 너무 좋아서 언젠가 꼭 불러보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소개한 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불렀다.
심사위원석에선 김광석이 몸담았던 그룹 동물원의 박기영, 정원영 호원대 교수, 권진원 서울예대 교수, 가수 이적, 작곡가 김형석, 작사가 심현보, 홍수현 피디 등이 점수를 매겼다. 김광석의 친형 김광복씨, ‘서른 즈음에’를 작사·작곡한 강승원도 객석에서 함께했다. 기타와 아쟁의 조합으로 노래한 이상웅·정지윤이 대상 격인 ‘김광석 상’을, 김광석 특유의 고독한 감성으로 ‘외사랑’을 부른 서림이 ‘다시 부르기 상’을 받았다. 나머지 참가자들도 가창상·연주상·편곡상·작곡상·작사상 등 전원 수상했다.
한국 소극장 문화를 상징하는 학전은 창립 33주년인 오는 3월15일 문을 닫을 예정이었다. 지속적인 재정난에다 김민기 대표의 암 투병까지 겹친 탓이다. 이번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가 학전에서 열리는 마지막 대회로 알려졌던 이유다. 다행히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학전 보전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내년에도 이곳에서 대회가 열릴 가능성이 생겼다. 박기영은 “이 대회가 올해로 마지막이 되는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좋은 소식이 들려 다행이다. 민기 형만 건강하게 돌아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광석추모사업회장을 맡고 있는 김민기 대표는 해마다 이 대회의 자리를 지켰지만, 올해는 건강 악화로 그러지 못했다.
마지막에 대회 참가자, 심사위원, 관객 모두 일어나 김광석의 ‘일어나’를 노래했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학전과 김민기 대표를 향한 모두의 염원을 담은 응원가처럼 들렸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