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미디어 전망대
6일 뒤면 18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 지 1주년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광범하게 이뤄졌음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보도로는 국정원 직원들의 트위트와 리트위트 건수가 약 2200만건에 달한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지난 대선을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는 근거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은 사퇴 의사가 전혀 없다. 제대로 부정선거를 수사할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윤석열 전 수사팀장을 찍어낸 마당에 누가 부정선거를 입증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에서일까? 9일 초선인 민주당의 장하나 의원이 지난 대선은 부정선거이므로 대통령은 사퇴하고 내년에 선거를 다시 하자고 주장하자 새누리당이 “대선 불복”이라며 펄쩍 뛰었다. 새누리당은 다음날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이 공안통치와 관련해서 박 대통령이 “선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을 꼬투리 잡아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국회 윤리특위에 양·장 두 의원의 제명안을 제출하기로 결의했다. 양 의원이 국회의원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막말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중앙정보부를 무기로 삼아 공안통치를 하다가 그 무기에 암살당하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과거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국민의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는 충고였을 뿐이다. 그런데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은 양 의원의 말을 “대통령의 위해를 선동하는 무서운 테러”라고 부풀려 공격했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복심인 이 수석의 말을 대통령의 말로 건너짚고 국회의원 제명이라는 ‘중형’으로 단죄하기로 결의했다.
국회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양·장 의원의 발언을 의원직 제명으로 다스리겠다는 새누리당의 행동은 상궤를 벗어난 것이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개신교·불교계 지도자들이 이미 불법선거를 근거로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민주 언론의 기준으로 볼 때 양·장 의원의 발언에 대한 조·중·동의 반응도 기대를 벗어난다. 청와대-새누리당과의 유착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10일치 ‘당 지지도만 추락시킨 민주당 의원들 폭언 시리즈’라는 사설 제목이 시사하듯이 두 의원의 발언을 “자해적인” “폭언”이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 사설 ‘민주당의 잇단 대통령 모욕 발언, 민심만 멀어진다’에서 양 의원이 막말을 했다면서 “언어 살인”이라는 청와대 홍보수석의 비판을 두둔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청와대와 새누리당도 감정적 대응은 자제하라고 충고했다. 새누리당의 감정적 대응이 여론의 반발을 살 위험이 크다는 것을 예견한 충고다. 그들의 주장이 여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도 ‘무책임한 민주당 의원의 대선불복 선언’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대선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말한다. 이 신문도 “신경질적인 공세를 자제하라”고 여당에 충고한다. 여론이 자기들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청와대-새누리당과 조·중·동이 다수 여론에 반하는 유착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이 관계가 이 신문들이 왜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최대 범죄인들이 그들의 범죄를 합법화해 줄 법을 만들고 있다.” 국제탐사보도협회가 조세회피처를 이용하는 탈법 거부들을 묘사한 이 말은 탈법을 통해 권력을 장악해서 불법을 합법화하는 마술을 부리는 권력이나 거대 언론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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