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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지쳐 죽음을 떠올릴 때 속는셈 치고 ‘컬러풀’!

등록 2015-03-13 20:52수정 2015-03-14 11:59

[토요판] 김세윤의 재미핥기
색이 없다. 온통 우중충 빛바랜 단색 사진 같다. 이승과 저승 사이, 색을 빼앗긴 그곳에 죽은 사람들 영혼이 서성인다. 저승행 티켓 받는 긴 줄 끝에 주인공 ‘나’가 서 있다. 한 소년이 다가와 웃으며 말한다. “당신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죽었군요. 하지만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새 삶을 시작할 기회를 드릴게요. 정말 엄청난 행운이죠.”

그건 행운이 아니라고, 다시 살고 싶은 마음 따윈 없다고, ‘나’는 거절했다. ‘나’에겐 선택권이 없다고 소년이 대꾸했다. 피할 수 없는 숙제 같은 것이라고 했다. 다른 이의 몸안에 머무는 유예기간 6개월 동안, 자기가 전생에 지은 죄를 기억해 내면 정식으로 환생하게 된단다. 그리하여 모든 기억이 지워진 채 지상에 내려온 ‘나’. 병원 침대에서 눈을 뜬다. 약 먹고 자살하려던 15살 중학생 몸을 빌린다. 그렇게 고바야시 마코토가 된다.

애니메이션 <컬러풀>
애니메이션 <컬러풀>
애니메이션 <컬러풀>(2010·사진)은 이렇게 시작한다. 하나도 컬러풀하지 않은 사후세계를 벗어나 ‘나’가 땅으로 내려오는 순간부터 화면 가득 컬러가 넘쳐난다. 샛노란 꽃잎과 초록빛 이파리가 싱그럽다. 하나도 싱그럽지 못한 마코토의 처지가 그래서 더 딱해 보인다. 학교에 가봐야 몇 년째 친구 한 명 없는 왕따에다 만년 꼴찌 신세. 짝사랑하는 여자 후배 히로카가 웬 중년남자와 모텔에 들어가는 걸 보고 충격받은 마코토는, 같은 모텔에서 웬 낯선 남자와 함께 나오는 엄마까지 본 뒤 자살을 시도했던 거다. 젠장, 기껏 얻는 기회가 뭐 이래? 좀 괜찮은 인생으로 환생할 순 없었던 거야?

다행히 마코토가 잘하는 것도 하나 있다. 그림 그리기. 마코토가 그리다 만 그림을 ‘나’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온통 파란색으로 칠한 캔버스 구석에 그려넣은 말 한 마리. “하늘을 달리는 말” 같다고 히로카는 말했지만, 같은 반 여학생 쇼코의 해석은 달랐다. “바다를 헤엄치는 말로 보여. 깊고 고요한 바닷속에서 천천히 수면을 향해 가는.”

친구가 없고 자신감이 없고 그러다 보니 아예 자신의 존재조차 없어지는 것 같아 힘든 처지가 마코토와 다를 바 없는 쇼코. 하늘을 달리는 말이 아니라 물속에서 발버둥 치는 말을 그리는 게 마코토다운 거라고. 쇼코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래서, ‘나’의 영혼이 들어온 뒤 조금 달라 보이는 마코토를 보며 불안해한다. 제 편이 사라질까봐. 자기 혼자만 물속에 남겨질까봐.

쇼코의 은근한 바람과 달리 마코토는 더 변해간다. 처음으로 친구란 걸 사귄다. 더 자주 웃는다. 다시 살고 싶은 마음 따위 없다던 ‘나’는 마코토가 된 뒤 자꾸 살고 싶어진다. 이 컬러풀한 세상의 아주 작은 한 칸을 나만의 색깔로 칠해보고 싶은, 뭐 그런 본능 같은 게 조금씩 꿈틀대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전생의 일을 기억해내지 못했으니. 이대로 유예기간이 끝나면 마코토가 죽게 된다. ‘나’는 또다시 색이 없는 세상에 갇히게 된다. 방법이 없을까? 살아서 16살의 봄을 맞이할 방법, 정말 없는 걸까?

겨울이 갔다. 봄이 온다. 자살하는 청소년이 많아지는 게 바로 요맘때라던가. 세상의 빛깔은 점점 컬러풀해지는데 내 인생의 빛깔은 여전히 우중충한 것이 견딜 수 없어서. 학기가 바뀌어도 괴롭고 외로운 처지가 바뀌지 않는다는 데 절망해서. 벌써 몇 명의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하늘을 달리고 싶은 아이들이 물속에서만 허우적대다 지쳐 죽음을 떠올릴 때, 속는 셈 치고 영화 <컬러풀>을 보았으면 좋겠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 장면, 꼭 보아주면 좋겠다. “이상해, 나 미쳐가나봐. 오래오래 살고 싶다가도 금세 죽고 싶어져. 정말 이상하지 않아?” 히로카가 울먹일 때, 이미 한번 죽어본 적 있는 ‘나’가 위로하는 장면. “그럴 때가 있어. 너만 그런 게 아냐. 그게 정상인 거야.” “가끔 나쁜 생각 하는 거,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다 그래, 모두 똑같아. 사람은 한 가지가 아닌 여러 색을 띠고 있어. 컬러풀한 거야. 예쁜 색이든, 추한 색이든.”

김세윤 방송작가
김세윤 방송작가
살다 보면 아무리 예쁘게 칠하려 애써도 자꾸만 어둡고 추해지는 시간이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어둡고 추한 시절로 인해 삶이 비로소 컬러풀해지는 거라고, 이 영화는 말한다. 색을 빼앗긴 세상에 이미 다녀온 ‘나’가 들려주는 경험담이니 한번 믿고 싶어진다. <컬러풀>에 ‘자살방지 영화’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를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컬러풀한 건 좋은 거예요. 컬러풀하게 살아가세요.” 아무것도 아닌 말 같은데 이 대사만 들으면 이상하게 뭉클해지니까. 기어코 컬러풀한 삶을 살아내고 싶어지니까.

김세윤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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