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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아빠의 거짓말

등록 2015-05-08 19:41수정 2015-10-23 18:28

[토요판] 김세윤의 재미핥기
어르신의 숨이 멎었다. 시골 의사 이노(쇼후쿠테이 쓰루베)가 재빨리 심폐소생술을 준비한다. 그때다. 어르신의 며느리가 꽉, 치맛자락을 움켜쥔 것은. 그걸 본 이노가 동작을 멈추고 찬찬히 가족들 얼굴을 살핀다. 눈짓 몸짓으로 티나게 신호를 보내는 자식들. 오랜 병간호에 지친 그들은 어르신의 심폐가 정말 소생하면 어쩌나, 걱정스런 눈치다.

그동안 이 가족이 겪은 고생을 모르는 바 아니므로 인공호흡을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한번 꼬옥, 환자를 안아주는 이노. “어르신, 그간 고생 많으셨어요.” 토닥토닥 등을 다독이는데…. 캑캑. 돌아가신 줄만 알았던 어르신이 별안간 기침을 하며 깨어나는 게 아닌가. 괜히(?) 등을 두드리는 바람에 기도를 막고 있던 초밥이 튀어나온 것이다. “선생님이 최고야!” “정말 명의라니까!” 마당에서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이 만세를 부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노를 치켜세운다. 본의 아니게 또 환자를 구한 시골 의사. 죽은 사람도 다시 살려낸 “우리 의사 선생님!”.

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2009)만 떠올리면 별수 없이 또 웃게 된다. 만세를 부르는 주민들에 둘러싸인 주인공의 어쩡쩡한 표정 앞에서 도저히 웃지 않을 재간이 없다. 하지만 영화가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자꾸 마음이 짠해진다. 이노가 돌팔이라는 사실이 영영 탄로나지 않길 바라게 된다. 왜냐면, 그는 매우 좋은 의사이기 때문이다. 진짜 의사가 아닌데도 누구보다 ‘진짜 의사’에 가까운 인술(仁術)을 펼치기 때문이다.

한 청년이 무허가 택시영업을 하다 체포되었다는 신문 기사. 산골 마을 어르신들을 병원까지 태워드리면서 몰래 팁까지 받았다던가. 청년이 다시는 손님을 태울 수 없게 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영화감독 니시카와 미와는 생각했다. 어르신들은 비록 무허가 택시일망정 계속 영업해주길 바라지 않을까? 그나마 청년의 가짜 택시마저 없으면 산골 어르신들이 어떻게 병원엘 다닐까?

이런 궁금증을 품고 <우리 의사 선생님>을 만든 감독. ‘외딴 산골 가짜 의사 이야기’로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진실만을 원하십니까? 거짓은 용납할 수 없습니까? “때론 초라한 진실보다 환상적인 거짓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더구나 그것이 사랑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영화 <빅 피쉬>의 이 대사에 당신은 혹시 동의하지 않는 겁니까?

시인 김소연이 <마음사전>이라는 책에 썼다. “생각보다 더 어리석고, 생각보다 더 추하며, 짐작처럼 순수하지도 않고, 짐작처럼 신비하지도 않”은 세상을 살아가려면 “실망과 공포를 완화시켜주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인간이 거짓말을 고안해낸 거라고. 그러면서 시인은 또 말했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 속에는 ‘거짓말처럼 날이 개었습니다’, ‘거짓말처럼 씻은 듯이 다 나았습니다’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우리는 가장 좋은 순간을 믿기 어려워하고, 그렇기에 그 순간은 ‘거짓말처럼’이라는 수식어를 앞장세운다. 우리가 살았던 세상을 두고, 우리가 만났던 사람을 두고 ‘거짓말처럼 아름다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음사전> 145쪽)

영화 <모두의 천사 가디>
영화 <모두의 천사 가디>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또 한 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제목이 <모두의 천사 가디>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가 매일 발코니에 걸터앉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지껄이자, 평생 웃는 얼굴로 살갑게 부대끼던 마을 사람들이 돌변한다.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찬다. 견디다 못한 아이의 아버지가 거짓말을 지어낸다. 제가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 아이가 실은 그분이 내려보낸 천사랍니다, 그래서 인간이 알아먹지 못하는 언어로 말씀하는 거랍니다, 뭐 이렇게 말이다. 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 ‘거짓말처럼’ 먹히기 시작하고, 마을 사람들 태도가 ‘거짓말처럼’ 누그러지더니, 장애에 대한 차별과 편견마저 ‘거짓말처럼’ 꼬리를 내리는 이야기.

김세윤 방송작가
김세윤 방송작가
<모두의 천사 가디>는 <우리 의사 선생님>을 볼 때처럼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는 코미디다. 그러다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자꾸 마음이 짠해지는 것도 <우리 의사 선생님>을 닮았다. 정말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아빠의 거짓말. “생각보다 더 어리석고, 생각보다 더 추하며, 짐작처럼 순수하지도 않고, 짐작처럼 신비하지도 않”은 이 세상을 달리 보게 하는, 영화라는 거짓말. 조금 ‘불운’한 사람을 자꾸 ‘불행’한 사람으로 몰아가지 않는 사회의 쓸모를 이 영화가 가르쳐준다. “예술은 우리가 진실을 깨닫도록 하는 거짓말이다.” 피카소의 말은 정말 거짓말이 아니었다.

김세윤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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