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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비혼주의자 혹은 제인주의자

등록 2017-06-16 20:29수정 2017-07-24 16:51

[토요판 ] 혼수래 혼수거
(1)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1775~1817)
언니 커샌드라 오스틴이 1810년께 그린 제인 오스틴의 초상화.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 소장
언니 커샌드라 오스틴이 1810년께 그린 제인 오스틴의 초상화.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 소장

사실 내가 제인 오스틴에게 빠져든 건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비비시(BBC) 드라마 시리즈 때문이었다. 자의식 강한 여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영리하고 섬세하고 좀 남달랐다. 제인 오스틴은 20대 시절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해본 ‘연알못’(연애를 알지 못하는)인 내게 교본과 같았다.

정작 원작 소설을 읽은 건 이 영화와 드라마들을 다 보고 나서였다. 소설을 읽고 약간은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마냥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의 작품은 어쩐지 생각보다 ‘이성적’이었다. 영화에서 봤던 등장인물들도 그대로고, 장면도 그대로였지만, 늘 이야기의 핵심은 결혼과 유산 상속 ‘타령’이 됐다.

제일 애정했던 <오만과 편견>의 기념비적인 첫 문장만 해도 그렇다. “재산을 꽤 가진 미혼남이라면 분명 아내를 원하리라는 것은 널리 인정받는 진리다. (중략) 이웃들은 이 진리에 사로잡혀 있어, 그는 이들의 딸들 중 하나가 마땅히 차지할 재산으로 간주되고 만다.” 자주 회자하는 것은 첫 번째 문장이나, 제인 오스틴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진정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두 번째 문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성을 재산으로 간주하고 마는 현실.

제인 오스틴은 열네살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흔둘에 병으로 죽기 전까지 모두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그가 남긴 ‘모든’ 작품이 연애와 결혼을 다루고 있다. 가히 집착적으로 결혼에 관해 이야기했다. 미혼 여성이 가족의 ‘짐’처럼 여겨졌던 시대였다. 아버지 조지 오스틴은 가난한 목사였는데 복잡한 이유로 집안의 유산을 제대로 상속받지 못했다. 본인도 36살에 <이성과 감성>을 처음 출간하기 전까지는 수입이 없었고, 거의 전 생애를 부모 혹은 오빠들의 도움으로 글을 썼다. 결혼이 곧 독립이며 자립이 되는 게 현실이었을 것이다. 또한 사랑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닌 거래로서의 결혼이 일반적이었던 답답한 현실이었다. 후배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이 “미움 없이, 쓰라림 없이, 두려움 없이, 항의 없이, 설교 없이” 깨알 같은 풍자와 신랄한 묘사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려냈다.

연애·결혼 소설의 대가지만 자신은 미혼으로 생을 마감했다. 영화 <비커밍 제인>에서는 제인 오스틴이 스무살 무렵에 톰 르프로이를 만나 비밀리에 약혼하는 것으로 그려지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실제로 청혼을 받고 수락한 것은 27살 때였다. 상당한 재력가이자 6살 연하였던 남자의 청혼을 받고 수락했지만, 바로 다음 날 취소해 버렸다. 당시 기준으로는 청혼을 받을 수 있는 거의 마지막 나이였다고. 미혼이 아닌 ‘비혼’을 적극적으로 택한 것 같다.

그런 그가 두번이나 가짜 결혼을 발표했던 사실이 최근에 드러났다. 자신의 아버지가 교구장으로 있던 스티븐턴 교구의 결혼등록부에 자필로 2건의 결혼 발표를 적어둔 것이 발견됐다. 10대 때 친 장난으로 추정된다. 재미있는 점은 결혼 상대의 이름은 피츠윌리엄과 에드먼드로, 나중에 그의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결국, 부자 연하 남편을 거절하고 작품과의 결혼을 택한 것인가.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혼자 잘 살다 혼자 죽은 ‘혼수래 혼수거’ 인생을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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