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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혼자 살기의 끝판왕

등록 2019-01-19 17:07수정 2019-01-19 17:10

[토요판] 혼수래 혼수거
22.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국왕 대관식에서 예복을 입은 엘리자베스 1세. 당시 길게 늘어뜨린 머리는 미혼을 상징했다. 위키피디아
국왕 대관식에서 예복을 입은 엘리자베스 1세. 당시 길게 늘어뜨린 머리는 미혼을 상징했다. 위키피디아
‘혼수래 혼수거’의 끝판왕은 누굴까. 혼자서도 잘 살다가 혼자 잘 간 인생. 역사상 손꼽을 만한 독신자라고 하면 과연 누가 떠오를까. 너무 유명해서 스쳐갔던 끝판왕, 킹왕짱, 말 그대로 왕이 떠올랐다. 여섯 번이나 장가를 든 아버지 헨리 8세와는 정반대로 평생 비혼으로 지내 ‘처녀 여왕’이라 불린 16세기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 말이다.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치고 대영제국의 시대를 연 ‘위대한 여왕’의 어린 시절은 꽤 고달팠다. 헨리8세의 두 번째 부인이자, 엘리자베스의 어머니인 앤 불린은 1536년 불륜과 반역죄로 처형된다. 엘리자베스가 세 살 때의 일이다. 헨리8세는 앤이 처형되고 나자, 그와의 혼인도 무효로 했기 때문에 엘리자베스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이런 불우한 환경에도 총명하고 씩씩했던 그는 공부를 좋아해서 춤이면 춤, 외국어면 외국어, 승마와 사냥까지 못 하는 게 없는 만능 재주꾼이었다고 한다. 그를 가르쳤던 저명한 학자 애스컴은 “그토록 빠른 이해력과 기억력을 지닌 여성을 본 적이 없다. 잉글랜드에서 가장 빛나는 별은 영특한 우리 레이디 엘리자베스”라 감탄했다고 한다.

이복 언니인 ‘피의 메리’ 치하에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긴 엘리자베스는 1558년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잉글랜드 여왕 자리에 오른다. 젊은 여왕은 여전히 미혼이다. 숱한 음모와 배반, 위협 속에서 빨리 결혼할 것을 강요받았지만, 그는 오직 전략적 ‘밀당’으로 일관했다. 오스트리아의 찰스 공, 프랑스의 앙주 공, 스웨덴의 에릭 14세, 러시아의 이반 대제 등 유럽 여러 명문가에서 구혼이 들어왔지만, 처음엔 짐짓 임하는 척하다가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시간을 끌어 혼담은 모두 흐지부지됐다. 엘리자베스의 이런 솜씨를 당시는 ‘페넬로페의 뜨개질’에 비유했다. 온종일 뜨개질한 것을 밤이면 도로 풀고, 다음 날 아침 다시 뜨개질을 하는 것.

평생의 연인이자 심복이었던 레스터 백작 로버트 더들리와도 끝내 결혼하지 않았다. 이유에 대해선 여러 가설이 있지만, 언니 메리가 생전에 가톨릭 가문과 정략 결혼을 시키려 했을 때 그가 반항하며 한 말에서 유추되는 바는 있다. “제가 겪은 고통이 워낙 큰 탓에...결혼하고픈 소망도 없어졌어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비롯한 의붓어머니의 처형을 연이어 목격한 그가 결혼을 좋게 생각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백성들은 “짐은 국가와 결혼하였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엘리자베스를 사랑했다. 이 시기에 영국은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초석을 마련했고, 셰익스피어의 문학과 베이컨의 철학이 꽃피워 문화적으로도 르네상스기를 맞았다. 최초의 미국 식민지 버지니아(Virginia)는 바로 이 ‘처녀 여왕’을 기린 것이었다.

170cm이 넘는 훤칠한 키에 “감탄할만한 미모”를 지녔던 엘리자베스도 말년에 식민지에서 들여온 사탕과 초콜릿, 담배 등을 너무 즐겨서 치아 대부분이 빠졌다고 한다. 최고의 권력을 누렸다고는 하지만, 사생활이라고는 없는 칠십 평생을 살았을 그가 달콤한 음식에서 위안을 찾았다는 건 좀 귀여운 부분이다. 그러면서 끝까지 ‘누구도 붙잡지 못한 위대한 여성’으로 남았다는 건 또 얼마나 멋진 일인지. <끝>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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