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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음악도 사랑도 완벽주의자

등록 2017-07-21 20:36수정 2017-07-24 16:52

[토요판] 혼수래 혼수거
(2)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1932~1982)
1963년 3월 뉴욕 맨해튼 컬럼비아 음반사의 녹음 스튜디오에서 연주 중인 글렌 굴드.
1963년 3월 뉴욕 맨해튼 컬럼비아 음반사의 녹음 스튜디오에서 연주 중인 글렌 굴드.

‘글렌 굴드’가 빵 이름인 줄 알았던 때도 있었다. ‘크루아상’이니 ‘카늘레’니 하는 프랑스 제과 이름이라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지 않은가. 그런 내게 ‘굴드의 바흐를 좋아하느냐’는 멘트로 작업을 걸어온 이가 있었으니, 당시 나는 글렌 굴드가 누군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던 것을 보면 그가 내심 싫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일단 술자리에서 천재 피아니스트를 안다고 하면 ‘좀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외에도 그가 좋은 ‘안주’가 될 만한 이유는 차고 넘친다.

스스로는 자신이 절대 괴짜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그는 숱한 기행으로 유명하다. 한여름에도 늘 두꺼운 외투에 장갑을 끼고 다녔고, 어렸을 때 아버지가 만들어준 접이식 나무의자에만 앉아서 연주했으며, 건강염려증이 심해 007가방 가득 약 봉투들을 싸들고 다녔다. 기묘한 무대 매너도 유명했다. 건반에 코가 닿을 정도로 수그린 자세로 연주했던 그는 종종 연주 중 허밍을 한다거나, 발을 구르고, 지휘하는 것처럼 손을 휘젓기도 했다. 거의 최초로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청중을 거부한 연주자이기도 하다.

1955년 컬럼비아 음반사의 제안으로 발매한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으로 단박에 스타의 자리에 올랐지만, 잇단 연주여행은 섬세한 그를 지치게 했다. 그는 청중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싫어했다.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고 싶지 않아. 3000쌍의 눈이 내 연주를 듣기보다는 내가 하고 있는 모양을 지켜본다는 걸 항상 느끼게 되거든.” 결국 1964년 32살의 젊은 나이에 그는 연주회 무대에서 은퇴했다.

‘괴팍한 은둔자’였던 것만은 아니다. 뼛속까지 예술가였던 그는 고독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사교적이지 못해서라기보다 고독을 택한 것에 가깝다. 세명 이상이 모인 자리에서는 입을 닫았지만,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그의 자취를 쫓다 보면 대인기피증이니 결벽증, 금욕적이라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전혀 의외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비록 무대에서는 사라졌지만 그는 50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스튜디오 녹음, 라디오 출연, 영화감독,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이어갔다. 부유한 모피상의 외아들로 태어나 혼자서는 집 청소도 제대로 못 하고 운전 실력도 엉망이었지만, 돈 벌기를 좋아했고 일찍부터 주식과 채권을 배워 투자의 고수였다.

소년 같은 섬세함과 독특한 생활방식 때문에 ‘모태솔로’였을 것 같지만, 20대 후반부터 40대 들어서까지 10년 이상 지속한 로맨틱한 관계가 있었다. 상대는 다른 작곡가이자 지휘자의 아내였다. 미국인이었던 그녀는 굴드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의 자녀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이주하기도 했다. 굴드는 결혼을 고집했지만 끝내 가정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녀는 <굴드의 피아노>에서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지만 뭔가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애정이 지속될수록 불안을 느꼈고, 편집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고 한다.

독립성이 강한 둘 이상의 멜로디를 동시에 결합하는 작곡기법인 대위법. 굴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평생 구현하고자 노력했던 바흐의 대위법부터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완벽주의자였던 그는 자신의 음악뿐 아니라 자신의 삶조차 다성(多聲)적으로 완성하려고 하고도 남을 사람이니까.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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