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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건강하게 다시 태어나고 싶다”

등록 2017-09-29 20:02수정 2017-09-30 10:00

[토요판] 혼수래 혼수거
5. 아동문학 작가 권정생(1937~2007)

아동문학 작가 권정생씨. <한겨레> 자료사진
아동문학 작가 권정생씨. <한겨레> 자료사진

어릴 적 내 꿈은 ‘거지’였다. 엄마는 지금도 종종 말씀하시는데, 나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 물으면 거지라 답하고, 오빠는 귀신이 되겠다고 했단다. 엄마를 경악시킨 답이었지만, 나는 지금도 그 답변의 이유를 또렷이 기억한다. 그 어린 나이에도 사는 게 너무 고달팠기 때문이다!

‘몽실 언니’가 들었으면 혀를 찼을까. 철없던 내 머리를 가만히 쓰담쓰담 했을 것 같다. 고백하건대 이번에 <몽실 언니>를 처음 읽었다. 해방 직후부터 6·25전쟁을 겪으며 차례로 부모를 잃고, 절름발이의 몸으로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극한의 삶을 산 한 여성의 이야기.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녀는 일어나 깡통을 쥐고 구걸을 나서 병든 아버지와 동생을 먹여 살렸다. ‘거지’가 그렇게 극한 직업인 줄 알았다면 결코 장래희망으로 말하진 못했으리라. 그러나 그 강인함만큼은 충분히 존경하고도 남지 않은가.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는 지은이 권정생 선생의 말씀이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권정생도 한때는 ‘거지’의 삶을 살아야 했다. 해방 직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가족의 삶은 여전히 빈한했다. 19살에 얻은 늑막염과 결핵은 그를 평생 괴롭혔다. 지극정성으로 그를 돌보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동생의 결혼을 위해 28살의 권정생은 집을 떠나야만 했다. 병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고, 갈 곳도 없었던 그는 “철저한 거지가 되기로” 결심한다. 고난은 작가를 더욱 ‘영적’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아픈 몸을 이끌고 굶주리며 떠돌았지만 그는 들판에 앉아 성경을 읽었고 시를 썼다.

대표작 <강아지 똥>은 그가 16년 동안 종지기로 일했던 교회 문간방에서 쓰였다. 1967년 경북 안동시 조탑동 교회에 자리를 잡았을 때는 이미 3개월간의 노숙생활로 온몸에 결핵이 퍼져 서른살의 젊은 나이에 신장, 방광을 다 들어내는 수술을 하고 2년도 못 산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때였다.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며, 몸을 잘게 부수어 거름이 돼 민들레꽃을 피우는 강아지 똥의 이야기를 써 ‘제1회 기독교 아동 문학상 현상모집’에 당선된다. 이후 1984년부터는 평생을 교회 뒤 빌뱅이 언덕에 작은 흙집을 짓고 살며 많은 아동문학 작품을 남겼다.

그의 주인공들은 벙어리, 바보, 거지, 장애인, 외로운 노인,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강아지 똥 등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약한 존재들이었다. 한동네 살아도 권정생이 유명 작가인 줄도 몰랐던 동네 사람들은 그를 “참 가난했심더. 평생 옷 한 벌로 지냈싱께”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그가 죽자 10억원이 넘는 인세가 담긴 예금통장이 나왔다. 모든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유언을 남겼다. 죽기 2년 전 남겼다는 또 다른 유언은 그가 자신의 몸을 부숴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전했던 ‘강아지 똥’ 그 자체였음을 깨닫게 한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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