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혼수래 혼수거
⑧ 배우 그레타 가르보(1905~1990)
20대 때만 해도 호프집에 가면 벽면에 고전 할리우드 스타들의 액자가 걸려 있었다. 오드리 헵번, 잉그리드 버그먼, 험프리 보가트 등 얼굴과 분위기만으로도 ‘장식 효과’를 주는 그런 배우들. 그때 그레타 가르보를 처음 알았다. 갈매기 눈썹 밑에 게슴츠레한 시선, 차가운 표정이 처음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텅 빈 얼굴에는 묘한 끌림이 있었다. 흑백사진으로는 알 수 없는 그의 눈 색이나 머리색, 목소리 등이 궁금해졌다. 게다가 그가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영화계를 떠나 평생 동안 은둔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는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르보가 말한다.”(Garbo Talks) 1930년 개봉한 영화 <안나 크리스티>의 광고 표어는 이 한 문장으로 끝난다. 긴말이 필요 없었다. 우수에 젖은 눈빛과 우아한 미모, 차가운 표정으로 관객들을 매혹했던 가르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뉴스’가 됐다. 북구 억양이 남아 있는 낮고 차분한 음색은 그의 신비한 이미지와 잘 어울렸고, 그를 193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로 만들었다.
‘스웨덴의 스핑크스’, ‘신비로운 이방인’으로 불렸던 가르보는 1905년 스톡홀름에서 노동자의 딸로 태어났다. 아름다운 외모 덕에 10대부터 광고와 영화들을 찍기 시작했고, ‘우아함’(Garbo·스페인어)이라는 예명으로 할리우드 거물급 영화사 엠지엠(MGM)과 계약했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무살이었다. <마타 하리> <안나 카레니나> <크리스티나 여왕> 등 그가 은퇴 전까지 16년간 찍은 28편의 영화 대부분은 시대의 고전으로 남았다. 하지만 1941년 <두 얼굴의 여자>가 흥행에 실패하자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다. 그 뒤로는 잘 알려져 있듯 50년을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비혼으로 살았다. 마치 그가 <그랜드 호텔>에서 읊조렸던 대사 “혼자 있고 싶어요”처럼.
가르보가 갈망한 ‘자유’는 대중의 관음증을 더 돋우었다. 아직도 인터넷에는 그가 뉴욕을 산책할 때 찍힌 파파라치 컷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사진들 대부분이 그의 아파트 밖에서 11년간을 숨어 지내며 그를 스토킹했던 사진가 테드 레이슨이 찍은 것들이다. 가르보도 이를 알고 그를 따돌리기 위해 산책 중에 일부러 엉뚱한 방향으로 걷는다든가 입 주변을 휴지로 빙글빙글 문지르는 행동 등으로 사진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가르보의 은퇴가 동성 연인을 위한 것이었다는 말도 있다. 2006년 스웨덴 여배우 미미 폴락의 아들은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공개하며 가르보와 폴락이 ‘로맨틱한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편지에는 “사랑해, 내 귀여운 미모사”와 같은 말들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더욱 눈을 끄는 대목은 그가 배우 생활을 힘겨워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할리우드를 ‘공장’이라고 표현했고, “일이 즐겁지 않고 촬영장에 억지로 끌려나가는 기분을 느낀 날이 많았다”고 했다. 한때 그의 은퇴를 두고 ‘늙고 추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라는 추측이 있었다. 과연 그런 사람이 하루에 두번씩 규칙적으로 10㎞가 넘는 거리를 산책했을까? 악의적이고 저급한 루머에서 평생 ‘여배우’라는 신화적 이미지에 갇혀 그가 느꼈을 고독이 그려진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⑧ 배우 그레타 가르보(1905~1990)
1939년 그레타 가르보의 모습. 위키피디아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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