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셀피 속에서 살아난 은둔자의 열정

등록 2018-01-26 19:29수정 2018-01-29 16:33

[토요판]혼수래 혼수거
⑨ 사진가 비비언 마이어(1926~2009)
사생활이 잘 알려지지 않은 비비언 마이어는 자화상을 많이 남겼다. 자화상에서 그는 큰 키의 마른 체형으로 늘 구식 블라우스나 원피스를 입고 카메라를 목에 건 모습으로 등장한다. 출처: vivianmaier.com
사생활이 잘 알려지지 않은 비비언 마이어는 자화상을 많이 남겼다. 자화상에서 그는 큰 키의 마른 체형으로 늘 구식 블라우스나 원피스를 입고 카메라를 목에 건 모습으로 등장한다. 출처: vivianmaier.com

은둔자들은 종종 수집광이 된다. 비비언 마이어의 삶도 대체로 수수께끼다. 수십만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2009년 죽는 순간까지 아무에게도 자신의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다. 1926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프랑스인 어머니와 오스트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것 말고는 확실한 게 별로 없다. 생업은 보모였다. 1951년 20대 중반에 일찌감치 보모가 되어서 40여년을 보모, 가정부, 간병인으로 일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남의 집을 전전했지만 엄청난 양의 필름과 책, 잡지, 신문, 서류 등을 끌어안고 살았다. 구직면접을 볼 때 “저는 제 인생과 같이 이 집에 들어옵니다. 제 인생은 상자들에 담겨 있습니다”라고 말했을 정도.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사진가로 불리기 시작했다. 마이어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필름 15만장을 보관해두던 창고 5곳의 임대료를 내지 못하게 되자 2007년 그의 물건들은 경매에 부쳐지게 된다. 사진들은 시카고의 부동산 중개업자이자 길거리 사진작가인 존 말루프의 손에 들어가게 됐고, 2년 뒤 그가 우연히 사진을 인화하며 빛을 보게 된다. 사진의 가치를 알아본 말루프는 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고, 사람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그는 이 과정을 <비비언 마이어를 찾아서>(2015)라는 다큐 영화에 자세히 담고 있다.

“그녀의 은밀한 열정이 세상에 떠밀려 나오다니 슬프다.” 다큐 영화 예고편에 달린 댓글이다. 마이어도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싫어했을까? 그저 그가 돌봤던 아이들과 몇몇 친구들의 증언, 그가 남긴 수많은 사진과 녹음들로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보모로 입주하며 제일 처음 했던 요구가 ‘방에 자물쇠를 달아달라’는 것이었을 정도로 개인적이고 폐쇄적인 생활을 했고 10년을 넘게 친하게 지낸 친구도 정작 그가 어디 출신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카메라를 통한 그의 시선은 늘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위트로 반짝인다.

25년 이상 애용했던 카메라 롤라이플렉스로 그는 6×6㎝의 정사각형 안에 뉴욕 거리의 노동자, 연인들, 노숙인, 장애인 그리고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냈다. 은밀히 손잡은 연인, 차 안에서 잠든 남자, 물구나무선 노숙인, 차에 치여 누워 있는 어린이 등 거리의 일상으로 성큼 들어간 그의 시선은 대담하면서도 활기차다. 특히, 자화상을 많이 남겼다. 쇼윈도나 거울에 비친 모습 그리고 피사체에 섞여 들어간 자신의 그림자를 자주 찍었다. 요즘으로 치면 ‘셀피의 조상님’ 정도 되려나.

이처럼 재능 많고 독립심 강하고 똑똑한 여성의 말년이 가난하고 비참했다는 사실이 몹시 마음 아프다. 정치·사회적 이슈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슈퍼마켓에서 줄을 선 한 여자에게 닉슨의 탄핵에 관해 물으며 이렇게 말한다. “의견은 있어야죠. 여자들도 의견이 필요해요.”

여전히 마이어가 어떤 생각으로 사진을 찍었고, 어떤 삶을 추구했는지는 미지수다. 다만 그가 가장 오래 돌봤던 겐즈버그 형제가 2009년 <시카고 트리뷴>에 올린 부고는 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자유롭고 다정한 영혼의 소유자인 마이어는 자신이 아는 모든 이들의 삶을 마법처럼 어루만져주었습니다. 또한 영화 비평가이자 비범한 사진가였습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출처: vivianmaier.com
출처: vivianmaier.com
출처: vivianmaier.com
출처: vivianmaier.com
출처: vivianmaier.com
출처: vivianmaier.com
출처: vivianmaier.com
출처: vivianmaier.com
출처: vivianmaier.com
출처: vivianmaier.com
출처: vivianmaier.com
출처: vivianmaier.com

▶ 더 많은 사진은 www.vivianmaier.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현금다발 든 돼지저금통 놓고 운동회?…‘오징어게임2’ 예고편 1.

현금다발 든 돼지저금통 놓고 운동회?…‘오징어게임2’ 예고편

추위에 쫓겨 닿은 땅…한국인은 기후난민이었다 [책&생각] 2.

추위에 쫓겨 닿은 땅…한국인은 기후난민이었다 [책&생각]

천만 영화 ‘파묘’보다 더 대단한 웹툰이 있다고? 3.

천만 영화 ‘파묘’보다 더 대단한 웹툰이 있다고?

흥행 파죽지세 ‘베테랑2’…엇갈리는 평가에 감독이 답했다 4.

흥행 파죽지세 ‘베테랑2’…엇갈리는 평가에 감독이 답했다

‘굿파트너’ 종영 앞둔 장나라 “눈물 날 것 같았다” 5.

‘굿파트너’ 종영 앞둔 장나라 “눈물 날 것 같았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