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혼수래 혼수거
⑪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1788~1860)
‘여자는 오로지 종의 번식을 위해서만 창조되었다.’ ‘여자는 마음속으로 남성이 할 일은 돈을 버는 것이고, 여성이 할 일은 돈을 써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는 힘이 약한 탓에 힘보다는 술책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나는 여자보다 개가 좋다.’
모두 19세기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한 말이다. 이 정도면 여성혐오로도 경지에 오른 것 같다. 그 어떤 철학자도 여성에 대해 이렇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여자가 뭘 어쨌길래?
흔히 염세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부유한 집안의 ‘도련님’이었다. 아버지는 성공한 무역상이었고, 어머니는 소설·수필·기행문 등으로 유명한 작가였다. 늦은 나이에 아들을 얻은 아버지 하인리히는 장남이 상인이 되길 바랐지만, 아들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관심이 더 많았다. 매력적인 문장가였던 어머니 요하나의 재능을 물려받은 덕이리라. 그러나 모자 사이는 원만하지 못했다. 1805년 아르투어가 17살 때 아버지가 상점 창고에서 떨어져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자살로 추정됐다. 이 죽음을 두고 그는 어머니를 원망했다. 그들의 서걱거리는 관계는 이 유명한 한마디로 충분히 짐작이 간다. 요하나가 운영하던 살롱에 드나들던 괴테가 아르투어의 재능을 알아보고 칭찬하자, 그의 어머니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한 집안에 두 명의 천재는 나오지 않는 법이에요.”
어머니가 너무했던 걸까? 평생 친구도 연인도 없이 개를 벗 삼아 살았던 쇼펜하우어도 보통 성격은 아니었다. 그는 당시 주류였던 헤겔의 이성 철학을 거부하고 세계를 이성이 아닌 의지로 파악하려는 그만의 사상을 펼쳤다. 베를린대학 강사 시절, 자신은 ‘듣보’이면서도 일부러 유명한 헤겔과 같은 시간대에 강의를 고집해 첫 강의가 곧 마지막 강의가 되게 했다. 금욕적인 생활을 고집하면서도 엄청난 대식가여서 옆 사람이 “박사님, 정말 십인분을 드시는군요”라고 하자 “네, 물론이지요. 열 사람을 위해 생각하기도 합니다”라고 답했다고. 매일 자신이 키우던 푸들(한때 이름을 ‘헤겔’이라 붙였으나, 뒤에 ‘아트만’으로 개명했다)을 데리고 마인 강가를 산책하며 큰 몸짓으로 혼잣말을 해서 의절한 그의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의 성공은 말년에서야 이뤄졌다. 31살에 쓴 그의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출간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바그너·톨스토이 등이 그의 사상을 추종하고 존경을 표했지만, 그의 사상은 당대보다도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니체, 비트겐슈타인, 아인슈타인, 프로이트뿐 아니라 토마스 만, 헤세 등 수많은 예술·철학가들에게 숭배를 받았다.
그의 여성혐오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성들은 쇼펜하우어를 아주 재미있어했다고 한다. 이 욕쟁이는 거침없이 솔직하게 여자의 단점을 써 젖혔다. 통찰력 있는 독설에는 묘한 쾌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그의 독설은 여성에만 머물지 않았다. 남녀평등에 관한 자기만의 견해에서는 그의 독특한 재치와 비틀린 유머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영아나 유아의 보육자이자 양육자로서 여자들이 적합한 이유는 유치하고 어리석고 근시안적이며 한마디로 큰 아이기 때문이다”와 같은 문장에서는 여전히 누가 큰 아이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위악적인 문장들에서 어머니로부터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한 소년’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나뿐일까.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화가 빌헬름 부슈가 그린 쇼펜하우어와 푸들.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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