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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의 아이콘인데…빨래는 엄마가 해줬다고?

등록 2018-06-01 19:40수정 2018-06-03 10:29

[토요판] 혼수래 혼수거 ⑬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태어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자신을 ‘신비주의자, 초월주의자, 자연철학자’로 묘사했다.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태어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자신을 ‘신비주의자, 초월주의자, 자연철학자’로 묘사했다.

분명 책장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뒤져도 안 보였다. 19세기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대표작 <월든> 말이다. 책을 읽지는 않아도 때마다 사서 모셔두는 것이 취미인지라 당연히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 며칠 전까지도 본 듯하다. 초록빛 월든 호수 정경 위에 나뭇잎이 살포시 얹어진 그 익숙한 표지! 이쯤에서 고백해야겠다. 지금껏 <월든>을 읽지 않았다. 심지어 갖고 있다고 착각까지 했지만, 그냥 언젠가 읽어봐야지 하고 미뤄뒀던 또 하나의 고전이었던 것.

최근 이 책을 찾게 된 이유가 있다. “소로가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 살 때 빨래는 엄마가 해줬다”는 말이 에스엔에스에서 떠돌았다. 자급자족 심플라이프의 상징으로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산 것으로 유명한 그인데 정작 빨래는 그의 어머니가 대신 해줬다고?

1845년 봄, 28살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도끼 하나를 들고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1.5㎞가량 떨어진 월든 호수 옆 숲속으로 들어갔다. 3개월 만에 네평짜리 오두막을 완성했다. 그는 숲으로 들어간 이유를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고 했지만, 사회의 모든 제도와 권위에 저항했던 그의 꼿꼿한 성품을 떠올리면 “돈독이 오른 사람들이 돈벌이에 미치는 것밖에 달리 사는 방법이 없다고들 하는 통에 화가 나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했던 말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월든 호숫가에서 그는 덜 입고, 덜 먹고, 침대·책상·의자 세개만 들여놓고 살면서 ‘주 1일 노동, 6일 휴일’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실천했다. 소로 평전을 쓴 박홍규 교수(영남대 법학과)는 소로를 불합리한 제도에 저항하며 ‘멋대로’ 산 고상한 쾌락주의자·혁명가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소로는 ‘월든 오두막’에 살 때, 멕시코 전쟁과 노예제에 반대하며 몇년간 세금을 내지 않아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노예들을 북부로 탈출시키는 비밀 조직의 일원으로 급진적 노예제 폐지론자의 처형을 반대하는 연설을 하러 다니기도 했다.

평생 독신이었던 소로에게도 첫눈에 사랑에 빠진 여자가 있었다. 22살 때였다. 1839년 잠시 콩코드를 방문한 목사의 딸이었다. 2살 위 형인 존도 이 여성에게 마음을 뺏겼다고. 형제는 이듬해 청혼을 했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말았다. 2년 뒤엔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형 존이 파상풍으로 사망한다. 실연과 상실의 슬픔이 컸던 탓이었을까? 소로가 월든의 오두막으로 들어간 것은 이 일들을 모두 겪고 난 뒤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소로가 평생 숲속에서 혼자 은둔해 살았다고 오해하는데 그가 오두막에서 산 기간은 총 2년2개월2일 동안이다. 숲속이긴 했지만 그의 부모님이 사는 곳에서 불과 2㎞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스스로는 자발적 빈곤이 성공적이었다 평했지만, 이 때문에 영양실조에 걸려 가족의 도움이 없었으면 죽을 뻔했다고도 한다. 그의 이런 ‘허당 매력’은 1844년 낚시 뒤 고기를 굽다가 콩코드의 숲 300에이커(약 120만㎡)를 태워 먹은 일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빨래’에 대한 진실은 정확히 밝혀진 게 없다. 인간이 만든 모든 사회적 제도, 틀을 거부하고 자연의 순리를 따랐던 그의 철학에 비춰보자면 단순히 옷 빨기를 싫어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만 해볼 뿐.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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