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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작품처럼 굴곡졌던 ‘괴짜 거장’의 사랑과 죽음

등록 2018-10-05 19:25수정 2018-10-25 16:12

[토요판] 혼수래 혼수거
19.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
1878년경 공부를 마친 뒤 바르셀로나 도시 미화 일을 시작할 무렵의 젊은 가우디. 사진 위키미디어
1878년경 공부를 마친 뒤 바르셀로나 도시 미화 일을 시작할 무렵의 젊은 가우디. 사진 위키미디어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건물 가운데 하나…흉물스러운 건축물.” 작가 조지 오웰이 가우디 평생의 역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성가족성당)을 두고 한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첫인상도 저것과 비슷했다. 기괴하게 거대하고, 무언가가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는 듯한 벽면, 잿빛과 흙빛이 두드러져 보이는 건물 외장은 성당이라기보다 (불경스럽게도) ‘귀곡산장’이란 단어를 먼저 떠올리게 했다. 하긴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카사 밀라 또한 찬양과 동시에 ‘생쥐굴’ ‘불길한 해골 무더기’와 같은 혹평을 들었다고 하니, 생존 당시나 지금이나 보는 사람에게 감탄과 동시에 당혹감을 안겨주는 예술가였던 것 같다. 현재 그의 독창적인 건축물들은 무려 7개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천재적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는 1852년 카탈루냐 지방 레우스에서 가난한 구리 세공업자의 다섯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류머티즘을 앓으며 병약했던 그는 일찍부터 대자연에서 영감을 찾았다.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기둥은 나무줄기나 그루터기와 같고, 지붕은 산등성이와 산비탈과 같다.” 그의 건축물에는 직선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건물 내부에도 동물의 뼈, 야자수, 곤충, 해골 등 동식물을 연상시키는 모티프를 많이 사용했다. 바르셀로나 시립건축학교 재학 때도 이러한 그만의 개성과 대담함이 드러났던 것인지, 가우디가 졸업할 때 학장은 “우리가 졸업장을 미치광이에게 주는 건지, 천재에게 주는 건지 누가 알겠나. 시간이 말해 주겠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130여년째 공사가 진행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사진 위키미디어
130여년째 공사가 진행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사진 위키미디어

‘괴짜’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지만, 역사 속 비운의 천재들과는 달리 젊었을 때 재능을 인정받는 행운을 누렸다. 1878년은 스물여섯 가우디에게 ‘만남의 해’가 된다. 마타로 노동조합 클럽 하우스를 지으며 ‘페피타’라 불리는 여성 호세파 모레우(Josefa Moreu)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5년 동안 매주 일요일이면 그녀의 집에서 식사를 했지만, 그가 청혼을 했을 때 페피타는 이미 다른 사람과 약혼을 한 상태였다고.

같은 해 평생의 후원자가 되는 에우세비 구엘(Eusebi Güell)과도 처음 인연을 맺게 된다. ‘직물업계의 거장’인 구엘을 만나면서 그의 작품세계도 전성기를 맞게 된다. 1878년 카사 비센스 건축을 시작으로, 1883년에는 구엘 가문의 건축가가 되어 카사 구엘, 구엘 공원, 콜로니아 구엘 성당 납골당 등 지금까지 명작으로 일컬어지는 건축물들을 제작하게 된다. ‘미완의 대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감독직을 맡게 된 것도 그의 나이 고작 31살 때였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그의 말년은 수도승에 가까웠다. 건축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에서 거리를 두고, 1909년부터는 오직 대성당의 건축에만 매달렸다. 1925년부터는 구엘 공원의 자택에 머물지 않고 아예 교회 작업장에서 기거하며 생의 마지막 9개월을 보내게 된다. 종일 공사현장에서 하루를 보내다가 산책을 하고, 취침을 하는 것이 그즈음 가우디의 일상이었다. 이듬해 6월 평소와 같이 바르셀로나 시내를 산책하던 74살의 가우디는 4차선 거리에서 달려오는 노면전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 초라한 행색 탓에 아무도 그가 가우디임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건축가의 죽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허망한 모습이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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