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한복 논란 속에 한국 서비스를 실시했다가 철수한 <샤이닝 니키>. 화면 갈무리
문화산업은 태생부터 선전의 장이었다. 가령 20세기의 전쟁들과 체제경쟁에서 영화를 뺀다면 매우 허전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영화사에 손꼽히는 초기 걸작 중 하나인 <전함 포템킨>은 러시아 혁명 20주년을 기념하며 만든 영화였다. 나치는 자국민들에게 히틀러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세계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을 실시했다.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데 있어서 군사력이나 경제력만큼이나, 할리우드가 만들어내는 스펙터클들의 공로도 적지 않았다.
이것은 문화산업이 결국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무심하게 담아낸 일상의 풍경이 특정한 맥락 속에서는 100권의 책보다 무서운 선전의 도구가 된다. 특히 냉전이라는 시기를 관통하며, 이 선전과 선동을 위한 미학은 점점 더 고도로 발전해나갔다. 이것은 제국과 압제자들이 자신들의 체제와 힘을 과시하는 도구이기도 했던 반면, 그에 맞서는 이들이 진실을 알리고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저항을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싸움들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것은 자본주의였다. 진지한 고민, 정치적 야심, 저항의 외침,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반역과 탈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자본주의에 먹혀들어갔다. 자본주의는 ‘팔린다’라는 조건만 충족하면 거의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 게임계를 강타하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 역시 그 본령은 결국 돈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고, 또 텐센트와 넷이즈로 대표되는 세계적 규모의 게임 자본들이 버티고 있는 곳이다. 게임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고, 이 때문에 만들 때도 팔 때도 중국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제 중국은 단순히 소비만 하는 국가가 아니라 높은 개발력을 갖춘 생산국이다. 게임 강국을 자부하는 한국 게임 시장에서 중국산 게임들이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지도 이미 오래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영향력은 여러 부정적인 반응들을 낳고 있다. 홍콩 시위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것을 무역적 보복으로 대처하고, 시진핑 주석에 대한 부정적 묘사나 그 엇비슷한 것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는 등 중국 정부의 검열을 자본의 힘으로 나라 밖까지 확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의 국가체제와 문화산업의 관계는 미묘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문화산업은 자본주의 내부에서의 경쟁이고, 그 경쟁에서 중요한 법칙 중 하나는 ‘팔리면 취한다’는 포용력이다. 그러나 이는 중국의 체제가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고, 여기에 중국 게이머와 네티즌의 애국주의적 공세까지 더해지며, 갈등이 나날이 쌓여가는 상황이다. 오로지 자본만이 여전히 ‘돈이 되는’ 중국을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 ‘문화전쟁’의 향방을 섣불리 예측하긴 어렵다. 다만 문화에는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존재해왔다는 것 정도를 얘기할 수 있을 뿐.
사회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