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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남아공 외계인’과 용산 남일당 철거민

등록 2013-01-25 19:42수정 2013-07-15 16:25

<디스트릭트 9>(2009)
<디스트릭트 9>(2009)
[토요판] 김세윤의 재미핥기
<디스트릭트 9>(2009)은 근래 지구인이 만든 에스에프(SF)영화 중 가장 창의적인 작품이었다. 얼마나 창의적이었느냐면, 겨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만든 영화 주제(?)에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 포함 4개 부문 후보씩이나 된 영화다. 참 재미난 영화이고 한두 장면에선 찔끔 눈물도 나는 영화인데다가, 눈물 나다 말고 다시 웃음 나는 통에 기어이 똥구멍에 털까지 나는 영화다. 이 좋은 작품을 아직 알현하지 못한 백성들을 어여삐 여겨 간략히 소개하자면, 얘기는 이렇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커다란 우주선이 날아온다. 그동안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 달리 외계인들은 의외로 허약 체질. 얼른 집단 수용소를 만들어 영 매가리 없는 그들을 격리하고 ‘디스트릭트 9’이라 이름 붙인다. 28년 후. 250만 다문화 이주 외계인은 온갖 차별과 수모를 겪으며 외계인 집성촌에 불법 가건물들을 짓고 살고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정부가 도심 재개발 사업을 밀어붙이면서 이 가난한 외계인들을 시 외곽으로 강제 이주시키려 한다. 살인진압, 강제철거로 몰아세우는 와중에 그만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점차 외계인의 형상으로 변해가는 철거용역 비커스(샬토 코플리). 정부가 그를 가만둘 리 없다. 궁지에 몰린 이 비운의 철거용역 지구인께서는 결국 생존을 위해 외계인 철거민과 손을 잡게 되는데…. 자, 그와 손잡은 외계인 집엔 ‘두 개의 문’이 있었으니, 하나는 현관문이요 또다른 하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나고 자란 감독 닐 블롬캠프는 어릴 적 보고 자란 ‘흑백분리 정책’에서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실제로 남아공엔 ‘디스트릭트 6’라는 유색 인종 거주 지역이 있었다. 그러니까 ‘디스트릭트 9’에 사는 외계인은 ‘디스트릭트 6’에 살던 가난한 사람, 힘없고 집 없고 ‘빽’ 없는 모든 사회적 약자의 은유이자 상징인 셈이다. 감독은 외계인 거주 지역의 남루한 풍경을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들어 넣지 않고, 대신 실제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남아공 판자촌에 가서 영화 찍는 패기를 보여주었다. 덕분에 에스에프영화이면서 하나도 우주적이지 않은 비주얼로 지구의 가장 그늘진 곳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가 되었다.

<디스트릭트 9>은 하필 용산참사가 일어난 바로 그해 가을에 개봉했다. 남아공 외계인들의 처지가 남일당 철거민들의 처지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망루에 올라간 건 분명 지구인들이었는데 그들을 외계인으로 대하는 나라의 국민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용산참사 4주기를 앞두고 유가족들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1인시위를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차기 대통령께서 통 사무실에 나타나질 않는다는 뉴스도 보았다. 인수위 회의에 딱 한번 참석한 뒤 줄곧 재택근무를 하신다던가.(아, 우리가 뽑은 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아니라 ‘최초의 히키코모리 대통령’이었어ㅠ.ㅠ) 집에서 열심히 나랏일을 구상하다 지치면, 그래서 ‘영화나 한 편 볼까’ 하는 생각을 행여 하게 된다면, <디스트릭트 9>과 함께 애니메이션 <호튼>을 꼭 좀 봐주셨으면 좋겠다.

김세윤 방송작가
김세윤 방송작가
들꽃 위에 내려앉은 좁쌀만한 티끌 하나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영화다. 하지만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은 먼지 한 알 속 세상에 사는 탓에 무시당하고 짓밟힐 위기에 처한 그들이 목청을 높여 필사적으로 소리치는 영화다. “여기 우리도 있어요! 여기 우리도 있어요!” 다행히 남들보다 큰 귀를 가진 코끼리 호튼이 그 절박한 외침을 듣고 작고 힘없는 사람들의 처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는 영화다.

‘여기 우리도 있어요!’ 사회적 약자가 제 존재를 알리는 낮은 목소리는 자주 큰 것들의 소음에 묻히게 마련이다. 호튼은 집에서 나와 자주 숲 속을 거닌 덕분에 티끌 속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서는 들을 수 있는 세상의 소리가 그리 많지 않은 법이다.

김세윤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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