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 포스티노>(1994)
[토요판] 김세윤의 재미핥기
궁금한 게 별로 없던 마리오에게 무척 궁금한 것이 생겼다. 은유(隱喩, metaphor)란 놈이 그것이다. 하도 궁금해서 시인에게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은유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른 것과 비교하는 거야. 예를 들어 ‘하늘이 운다’면 그게 무슨 뜻이지?”
“비가 온다는 말 아닌가요?”
“맞아. 바로 그런 게 은유지.”
설명을 들어도 여전히 모르겠다. 그래도 반드시 ‘은유’라는 녀석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래야 시인이 될 수 있으니까.
“선생님, 저도 시인이 되고 싶어요. 시를 쓰면 여자들이 좋아하잖아요. 어떻게 시인이 되셨어요?”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감상해 보게.”
“그럼 은유를 쓰게 되나요?”
“그렇지.”
시인의 말대로 마리오는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주위를 감상한다. 하지만 사모하는 그녀 베아트리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편지는 매일 잘도 배달하면서 정작 자신의 속마음 하나 제때 배달하지 못해 쩔쩔매는 우편배달부. 그러더니 결국, 시를 쓰고야 만다. ‘그대의 미소는 나비의 날갯짓’ 같다고 하고, ‘당신의 미소는 장미’라고도 썼다. 은유였다. 드디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른 것과 비교하는’ 방법을 깨우친 것이다. 하지만 마리오의 시를 읽은 베아트리체의 고모는 노발대발, 씩씩거리며 시인을 찾아온다.
“무슨 일입니까?”
“한 달 동안 마리오 루폴로란 남자가 우리 식당을 배회하며 조카딸을 유혹했어요.”
“어떻게 했는데요?”
“그놈이 은유인지 뭔지로 우리 조카딸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죠. 재산이라고는 발톱 사이에 낀 때밖에 없는 자식이 말솜씨 하나는 비단이더군요.”
성난 고모는 조카딸의 속옷에서 찾아낸 물증까지 꺼내 들이민다. 우편배달부가 쓴 연애시.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가는 시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스친다. ‘벌거숭이 무인도의 밤처럼 섬세한 당신, 당신의 머리카락엔 별빛이….’
“이게 조카딸의 벌거벗은 몸을 봤다는 증거가 아니고 뭐겠어요?”
“아니죠, 로사 부인. 이 시에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어요.”
“아뇨. 이 시에 사실이 나와 있어요. 벌거벗었다잖아요! 그 청년에게 전해 주세요. 다시는 우리 애를 만나지 말라고 말입니다.”
‘詩와 바다와 자전거가 있는 영화’ <일 포스티노>(1994)를 다시 본다. 은유의 마법을 배우고 익히며 스스로 시인이 되어가는 우편배달부의 인생이 다시 봐도 참 근사해 보인다. “은유인지 뭔지로 우리 조카딸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마리오를 성토하는 로사 부인도, 그런 부인에게 “은유인지 뭔지”를 설명할 길 없어 말문이 막혀버린 시인도 모두 정겹기만 하다. 이탈리아의 작은 섬, 그 오붓한 바닷가를 찰싹찰싹 어루만지던 라스트 신의 잔잔한 파도는 다시 봐도 애틋하고 언제 봐도 뭉클하다.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신을 40년 만에 다시 꺼내기로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가 암으로 죽은 게 아니라 암살당한 것이라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서란다. 이 소식을 전하는 어느 네티즌이 네루다를 ‘칠레의 장준하’라고 불렀다(맞아, 바로 이런 게 은
유지). 장준하의 두개골이 한국 현대사의 은유이듯 네루다의 유골은 칠레 독재정권의 메타포. 그러니 만일 시신 꺼내는 날 비라도 온다면, ‘하늘이 운다’ 정도가 아니라 ‘한 시대가 흐느낀다’ 정도의 은유는 써야 할 것이다.
야만의 시대를 낭만의 시어로 맞받아친 시인들의 인생을 다시 생각한다. “벌거숭이 무인도의 밤처럼 섬세한” 영화 한 편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보드랍게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밤. 마리오를 연기한 배우 마시모 트로이시, 시인을 연기한 배우 필리프 누아레, 그리고 필리프 누아레가 연기한 바로 그 시인 파블로 네루다. 이제는 모두 고인이 된 <일 포스티노>의 세 사람을 그리워하며 괜히 센치해진다. 나도 시를 쓰고 싶어진다.
김세윤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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