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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이건 반칙이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보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왜?” “브래들리 쿠퍼가 나온다 해서 기대했는데, 너구리 ‘로켓’이잖아. 그 잘생긴 얼굴을 안 보여주는 건 배반이라고.”
이해합니다. 저 또한 <그녀>에서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 컴퓨터 오에스(OS)의 목소리 주인공이 스칼릿 조핸슨이었다는 사실을 엔딩크레디트를 보고서야 알고, 복잡한 감정이 들었으니까요. ‘저 예쁜 여배우를 어찌 목소리로만?’ 하는 원망과 ‘어쩐지 컴퓨터 오에스에 나까지 가슴 설레더라니’ 하는 수긍이 오묘하게 교차했습니다.
25일 개봉한 <프랭크>가 화제입니다.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비주류 음악을 하는 밴드의 유명 록 페스티벌 도전기를 그린 영화인데, 밴드 리더 프랭크가 단연 눈길을 끕니다. 천재적 음악성을 지닌 그는 큼지막한 탈을 절대 벗지 않습니다. 먹고 잠잘 땐 물론이고 심지어 샤워할 때조차도요. 프랭크를 연기한 이는 <엑스맨> 시리즈로 유명한 마이클 패스벤더입니다. 그 잘생긴 얼굴을 내내 탈로 가리고 나오니 “마이클 패스벤더 본격 미모 낭비 영화”란 말이 나올 만도 하지요.
얼굴을 가리고도 마이클 패스벤더는 불꽃 연기를 펼칩니다. 프랭크는 탈 속에 숨은 자신의 얼굴 표정을 말로 표현합니다. “뿌듯한 웃음, 수줍은 미소 뒤따름.” 인터넷에선 기쁨, 실망, 당황, 분노, 오열 등 다양한 감정의 프랭크 표정 20종을 모은 패러디 포스터도 등장했습니다. 20종이라도 프랭크의 표정은 똑같습니다. 누군가 저렇게 같은 표정으로 20가지 상황을 연기한다면 ‘발연기의 끝판왕’이란 오명을 얻겠지만, 마이클 패스벤더는 정반대로 극찬을 받았습니다.
마이클 패스벤더가 끝까지 얼굴을 안 보여주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답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이것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얼굴을 보여주건 안 보여주건 그는 정말로 최고의 연기를 펼칩니다. 그 절정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뜁니다. 분명 당신도 그럴 겁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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