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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 연휴 개봉관이 <검사외전>으로 도배됐을 때, 극장가엔 ‘<검사외전>을 보지 않을 권리’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관객이 선택할 여지가 없는 영화 편성은 누구의 책임인가를 묻는 말이기도 했지요. 이번엔 25일 개봉하는 영화 <귀향>을 볼 권리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14년의 준비기간과 시민 7만5270명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귀향>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그린 점뿐 아니라 제작과정 또한 한국영화사에 기록될만 합니다. 그런데 개봉을 일주일 앞둔 지난주까지 이 영화의 상영관은 전국 30여곳 정도밖에 안됐습니다. 그럼에도 <귀향>이 온라인 예매율 25.6%로 1위를 차지하자 23일부터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전국 300여곳 극장에서 상영하게 됐습니다. 일주일새 10배 가까이 개봉관이 늘어난 것입니다.
<귀향>은 제작비 모금에 동참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국 각 지역에서 36회 시사회를 열어왔습니다. 그중 대형 영화관은 1곳도 없다가 나중에서야 메가박스와 롯데가 동참했습니다. 상영 예정이던 <쿵푸팬더3>를 취소하고 <검사외전>을 틀어 ‘몰아주기’ 논란을 일으켰던 씨지브이는 <귀향> 시사회엔 철저하게 인색한 태도입니다. 23일 현재 씨지브이는 110개, 롯데는 100개 상영관이 예정됐지만, 스크린 수로는 씨지브이가 롯데보다 40개가 더 적습니다. 씨지브이가 전체 스크린의 40% 이상을 과점하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배정입니다.
극장가가 대형 영화로 도배되는 현상에 대해 흔히 멀티플렉스들은 ‘자본의 논리’라고 해명합니다. 그런데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 <귀향>이 묻힐 뻔한 것은 정말 자본의 논리일까요? 씨지브이에선 18일에야 <귀향> 예매가 시작됐습니다. 씨지브이,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3대 멀티플렉스 중 씨지브이 상영 계약이 가장 늦게 체결되면서 극장가엔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정부가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합의를 했는데 <귀향> 같은 영화를 틀었다간 높으신 분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극장이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연평해전>이 흥행과 무관하게 최다 스크린 배정 기록을 세웠던 것과 대비되는 <귀향>의 상황이 불러온 해석일 것입니다.
소문의 사실 여부를 떠나 귀향이 ‘정치적 논리’로 묻혀선 안된다는 관객들의 마음만은 분명합니다. 몇주 전부터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귀향>을 소개하는 글들이 꾸준히 올랐습니다. <귀향>은 극장 체인에 맞서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볼 권리를 행사한 영화로도 기록될 것입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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