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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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불을 지폈던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개훔방) 논쟁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번엔 역으로 <개훔방>이 예술영화전용관의 프라임 시간대를 독점했다는 비판이 나오는데요. 지난 2일 영화 <조류인간>의 신연식 감독은 보도자료를 내 “<조류인간> 개봉 첫 날 몇몇 극장에서 아침 10시와 밤 10시40분대라는, 현실적으로 관람이 힘든 시간대에 상영중이었다”며 “반면 상업영화 재개봉작 <개훔방>은 좋은 시간대에 편성된 것을 보고 좌절감을 느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12월31일 개봉한 <개훔방>은 대형 영화에 밀려 고전했습니다만,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비판 여론과 관객들의 응원에 힘입어 2월 중순 재개봉에 돌입했습니다. 문제는 개훔방이 확보한 대부분의 스크린이 예술영화전용관에 집중됐다는 데 있습니다. 독립영화는 5개도 확보하기 힘든 씨지브이 아트하우스 상영관을 15개나 점령했다는군요. 신 감독은 이를 두고 “고등학생이 대학생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억울해 하면서, 유치원 놀이터에 와서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라고 맹비난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 감독은 바로 영화 <개훔방>의 각본을 쓴 당사자입니다.
흔히 예술영화전용관은 영화계에서 독립영화 생태계 유지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여겨집니다. 규모면에서 상업영화와 대적할 수 없는 독립영화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셈이죠. 이런 전용관마저 25억짜리 상업영화 <개훔방>을 집중 상영하니, 독립영화 감독들로선 속이 끓을 수밖에요. 피해자라며 문제제기를 하던 <개훔방>이 가해자로 돌변한 상황에 배신감을 느낄 법도 합니다. 한편에선 늘 스크린 독과점 논란의 핵심인 씨지브이가 일반 상영관 대신 예술영화전용관인 아트하우스를 선심쓰듯 내주는 것으로 면피를 하려 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하지만 결국 이 문제는 한국 영화계의 구조적 문제와 연결됩니다. 대형 상업영화의 스크린 독점이 지금보다 덜하다면, 예술영화전용관 수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다면, 지금처럼 약자들끼리 ‘한정된 파이’를 두고 다투는 일은 없겠죠. 강자와 약자의 싸움처럼 보였던 <개훔방> 논란이 약자와 더 약자의 싸움으로 변질된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네요.
유선희 기자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상영 중인 영화관의 모습. 류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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