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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블랙코미디 소재로 삼으려다 ‘인간 강기훈’ 발견했죠”

등록 2016-07-19 19:15수정 2016-07-19 22:00

[짬]‘강기훈’ 다큐멘터리 제작 권경원 감독
권경원 감독. 사진 김정효 기자 <A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권경원 감독.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강기훈씨가 ‘유서대필’ 누명을 벗는 데 24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검찰은 1991년 5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자살한 김기설씨의 유서를 강씨가 대신 써주었다며 자살방조 혐의로 구속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5월 이전의 유죄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확정했다.

국가가 ‘한 줌의 법률기술자들’을 앞세워 선량한 시민을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으로 만들어버린 이 사건엔 희비극적 요소가 뒤섞여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꾸미는 것이 바로 웃기는 일 아닌가? 내년 초 개봉을 목표로 <강기훈 말고 강기타>를 만들고 있는 권경원(44) 감독이 애초 주목한 것도 이런 ‘웃김’이었다.

그는 2009년 이 사건을 소재로 블랙코미디로 만들려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 뒤 7년이 흘렀고, 코미디는 음악다큐가 됐다. 지난 15일 한겨레신문사에서 권 감독을 만났다.

‘유서대필 조작사건’ 지켜본 ‘91학번’
2011년 강씨 처음 만나 ‘매력’ 끌려
3년전 암투병 강씨 ‘기타연주’ 보고
음악다큐 ‘강기훈 말고 강기타’ 찍어

“영혼 팔아서라도 많이 보여주고파”
후원 1만명 모아 ‘극장 개봉’ 기대

코미디가 다큐가 된 데는 곡절이 있었다. 그는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2011년 9월 강기훈씨를 처음 만났다. ‘마음씨 곱고 평범한’ 한 인간이 보였다. 강씨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사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까지 한 강씨가 2013년 7월 친구들 앞에서 기타 연주회를 열었다. 권 감독은 이 모습을 찍었다. 강씨는 ‘카메라 때문에 미치겠다’고 했지만 영화보다 멋진 장면이 나왔다. ‘강기훈씨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은 2014년 3월 권 감독에게 500만원의 제작비를 모아주며 ‘강기훈 다큐’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재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이 사건에 대한 사회적 환기를 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촬영은 90% 정도 마무리됐습니다. 강기훈씨가 연주하는 9~10개의 기타곡을 배경으로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1991년의 만인보’가 되겠네요.”

‘강기훈 다큐’이지만 주인공 강씨 인터뷰는 그동안 딱 한 차례 했다. 지난해 11월 일본 교토였다. “무죄가 확정된 뒤 저와 촬영감독이 강씨의 교토 여행에 동행했습니다. 강씨는 교토를 자주 갑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짧은 망명’ ‘내 몸이 갈 수 있는 최대치의 반경’이라고 하더군요.”

강씨는 유서대필 조작 사건을 다룬 이 작품이 다큐보다는 극영화이길 바랐다고 한다. “사건이 아니라 인물을 그려 달라는 뜻으로 이해했어요. 이번 음악다큐를 두고도 ‘당신 영화이니 마음대로 하시오. 난 터치 안 한다’고 하더군요.” 강씨는 이런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사건이 묻어 있는데 이게 어떻게 음악다큐가 되느냐. 결국은 음악을 핑계로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니냐.’ “영화를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더 굳게 했지요.”

강씨는 재작년 말 다큐의 1차 편집본을 시사하는 자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시사회 참석자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반반이었어요. 이야기를 늘 하던 방식대로 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기대감과 거기서 오는 불안감이 교차했던 것 같아요.”

권 감독은 서울대 윤리교육과 91학번이다. 96년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두 달 동안 구치소 생활을 했다. 구속 전날 여동생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학과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대신 영화를 찍겠다. 사건을 해석하는 곳이 아니라, 사건이 벌어지는 곳에 있고 싶다.”

대학을 마친 뒤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연출전공 16기로 2001년 졸업했다. 졸업 작품인 <새천년 건강체조>가 도쿄국제영화제 초청을 받았고, <마지막 늑대> 조감독을 한 것 등이 영화 무대의 주요한 이력이다.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예술) 영화를 즐겨 보는데, 현실은 <결혼이야기> 같은 영화를 만들어야 했죠. 상업영화 질서에 제가 적응을 못했어요.”

‘영화가 평생의 업이 될 수 있나’를 두고 숙고할 무렵 ‘강기훈’이 다가왔다. 그리고 ‘영화로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에 있겠다’는 그의 소망도 슬쩍 나래를 펴게 됐다. “91년의 기억, 대학 1학년 때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영화화하고 싶었어요. 유서대필 조작 사건에 화가 났었죠. 어떤 영화사도 받지 않을 시놉시스를 전 국민이 받아준 셈입니다. 그 시나리오가 24년 동안 광장의 밀실에 갇혀 있었던 것이죠.”

그는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사람들이 이번 다큐를 많이 보게 하고 싶다”고도 했다. 지난 5월부터 포털 다음에서 스토리펀딩을 하고 있다. 19일 현재 1156명이 후원해 3584만원의 약정을 받았다. “서울시 지원금 3천만원까지 포함해 사실 제작비는 다 모았어요. 하지만 후원자가 1만명쯤 되면 좋겠어요. 그 정도면 일반 상영관 진출도 가능하지 않겠어요.” 예술전용관 확보도 영화진흥위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는 쪽으로 정책이 바뀌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앞서 영화진흥위에 두 차례 제작 지원을 신청했으나 다 떨어졌다.

“극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이전보다 커졌어요. 지금 상영 중인 <환상의 빛>을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다큐를 찍다 극영화를 만들었지요.”

권 감독은 오는 24일 오전 11시 부천시청 뜨락에서 다큐 후원자들과 만나는 행사를 연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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