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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영화계, 표현의 자유와 공정경쟁 기준 다시 세워라

등록 2016-12-25 16:13수정 2017-01-01 18:22

‘문화 농단’ 싹을 자르자 (중)

정부, 투자 돈줄 쥐고 마구잡이 검열
영화계, “영화를 영화답게”…표현자유 복원·양극화 해소 요구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의 개혁을 촉구하는 독립영화인들이 11월21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이 시국선언에는 독립영화인 821명이 참여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의 개혁을 촉구하는 독립영화인들이 11월21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이 시국선언에는 독립영화인 821명이 참여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표현의 자유 통제’와 ‘양극화 심화’. <한겨레>가 영화계 현안 토론에 활발히 참여해온 영화인 10명에게 박근혜 정부 들어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부분을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10명 전원이 이 두가지를 꼽았다. 그중 9명은 가장 시급히 해결돼야 하는 부분으로 영화진흥위원회와 모태펀드 정상화를 들었다. 영화 생태계의 다양성을 지키는 행정과 투자 체계가 모두 망가져 긴급 수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2014년 10월22일,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비망록)는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다이빙벨 상영-대관료 등 자금원 추적-실체 폭로”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어 12월26일과 28일엔 김 비서실장이 “영화 <국제시장>-보수, 애국”, “<국제시장> 투자자 구득난, 문제 유(有), 장악, 관장 기관이 있어야”라고 말한 것으로 나온다. <국제시장>은 씨제이엔터테인먼트가 투자 배급했다.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비망록)의 한 대목.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 영화 <다이빙벨>에 대한 정부·여당 차원의 대응 방안을 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비망록)의 한 대목.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 영화 <다이빙벨>에 대한 정부·여당 차원의 대응 방안을 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14년 11월19일 서울 CGV대학로 앞에서 <다이빙벨>에 대한 멀티플렉스의 불공정행위 공정위 신고 기자회견이 열렸다. <씨네21> 자료  사진
2014년 11월19일 서울 CGV대학로 앞에서 <다이빙벨>에 대한 멀티플렉스의 불공정행위 공정위 신고 기자회견이 열렸다. <씨네21> 자료 사진

<다이빙벨>에 대한 ‘응징’ 지시가 내려진 그해 10월, 정부가 영화 진흥 차원에서 기금을 투자하고 있는 ‘모태펀드’ 운용기관인 한국벤처투자에 조강래 사장이 취임한다. 이를 계기로 영화계에선 유례없는 ‘투자 통제’가 시작됐다. 또 그해 12월31일자로 김세훈 영진위 위원장이 임명되면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배급유통 관련 사업은 지원에서 통제로 성격이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년 말부터 모태펀드를 통한 영화계 돈줄 틀어죄기, 부산국제영화제 흔들기, 독립영화 및 예술영화 전용관에 대한 본격 통제가 한꺼번에 몰아치면서 영화계는 전례없는 혼돈의 시기로 접어든다.

■ 투자회사가 검열기구로 그동안 모태펀드는 한국 영화 제작의 종잣돈 구실을 해왔다. 액수가 많든 적든 모태펀드를 시작으로 민간회사들의 제작비 투자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를 담은 <변호인> 배급·투자사들이 줄줄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고 <판도라> <보통사람> <일급기밀> <택시운전사> 등이 모태펀드 투자를 거부당하면서 한국벤처투자가 실질적인 검열기구 노릇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군 의문사 사건을 다룬 영화를 준비하는 한 영화감독은 “지난해 여러 차례 모태펀드에 지원했으나 투자 사전심의를 하는 창투사들로부터 ‘지침이 떨어졌다. 이런 내용의 영화엔 투자할 수 없게 됐다’는 답변을 들었다. 여러 사회비판적 영화들이 아예 모태펀드 본심에 가지도 못하고 사전심의에서 걸러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겨레>가 지난 10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과 함께 한국벤처투자에 모태펀드 투자를 보류·거부한 영화들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을 때 한국벤처투자는 “2014년 1월부터 2016년 9월까지 개최된 투자심의위원회에서 보류 또는 부결된 영화는 단 1건도 없다”고 답했다. 왜 투자를 거부당한 영화는 있는데 거부한 기록은 없는 것일까? 최현용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은 “모태펀드가 투입된 여러 개별 투자조합들은 투자심의위에 모든 것을 물어보고 등록하는 게 관행이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이 서류도 없고 근거도 없이 말로만 되었기 때문에 대체 누가 이런 지시를 내렸는지 확인할 수도 없다”며 “모태펀드의 투명한 운영, 펀드에 대한 정밀한 감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드러나게 영화계를 억압한 사례가 부산국제영화제라면 드러나지 않게 억압한 사례는 모태펀드”라며 “모태펀드가 벤처투자가 아니라 검열기구로 운용되면서 한국 영화는 여름·겨울 성수기 위주 대형 영화로 재편됐고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실험하던 중소형 영화는 완전히 위축됐다”고 지적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은 새 정부 사업으로 1조원 모태펀드 운용계획을 발표하고 영화 투자 범위도 5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늘려잡은 바 있다. 문제는 모태펀드 의존도가 높은 20억~40억원 규모 작은 영화들이 외려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지난 8월에 국내 유일한 독립영화투자펀드인 대한민국영화전문투자조합1호가 펀드운용 자격심사 과정에서 탈락하면서 해산을 결정한 사건은 상징적이다. 모태펀드가 입맛에 맞는 대기업 투자 영화에는 적극 투자하면서도, 독립영화를 비롯한 작은 영화들은 억누르기만 했음을 보여준다. 최순실-차은택 등 정권 비선실세들의 입김에 문화계 핵심 보직 인사가 휘둘리면서, 결국 정권과 비선 눈치를 보고 떡고물이 떨어지는 대기업 투자 영화에만 지원이 몰린 게 아니냐는 의문을 영화계 일부에선 제기하고 있다. 독립영화인들이 “비선 권력 최대 피해자는 작은 영화”라며 국정농단 사태 이후 가장 먼저 시국선언에 나선 것도 영화계 사상 통제가 양극화 심화로 번져왔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영진위, 불통에 이어 비위까지 지난 21일 한국독립영화협회(대표 고영재), 한국영화감독조합(대표 봉준호) 등 8개 영화단체는 김세훈 영진위원장과 박환문 사무국장을 업무상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미 지난 국정감사 때 박 사무국장은 성희롱 발언, 부적정한 예산집행, 복무 위반 등이, 김 위원장에 대해선 부적절한 업무추진비 사용 등이 지적됐다. 이번 고발은 두 낙하산 인사의 규정 위반을 근거로 한 것이다. 동시에 140여억원의 렌더팜 사업 강행에 대한 의혹이 더해졌다. 또 영진위가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 편법운영,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 대폭 축소 등을 통해 <다이빙벨>과 <천안함 프로젝트>를 상영한 극장, 영화제를 탄압하고 제작지원, 홍보마케팅 지원사업 등에서 특정 영화인들 및 제작사, 배급사의 작품을 배제해오는 등 앞장서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왔다는 점에 대한 분노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신유경 한국영화마케팅사협회장은 “정부 정책에 거슬리는 영화들이 아예 만들어지지 못하도록 단속하고 검열하는 시기에 영진위는 과연 무엇을 했느냐”며 “창작의 자유를 지원하고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각종 정부 압력에서 방패막이 노릇을 했어야 할 영진위가 완전히 자정작용을 잃었다. 밀실행정과 관치의 극치를 보여줬기 때문에 정상화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영진위를 없애자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23일 영진위 노동조합도 성명서를 내고 “한국영화진흥에 종사하는 노동자라는 자부심조차 가질 수 없게 됐다”며 김세훈 위원장 공식 사과와 업무추진비 환수, 사무국장 인사조처, 영진위 최고 의결기구인 9인 위원회 정상화 등을 요구했다.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는 “영화란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질문을 통해 경계를 넓히는 예술인데 이명박 정부 때부터 그런 질문을 담은 질문을 허용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 생태계가 무너졌다. 그것부터 복원해야 한다”며 영진위의 독립영화 지원제도 복구, 전용관 지원 검열 취소, 대기업 독과점 심화를 막는 영비법 개정 등을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시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응답한 영화인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
김일권 배급사 시네마달 대표
김혜준 무한상상플러스 대표이사
신유경 영화마케팅사협회 대표
안영진 한국프로듀서협회 대표
원승환 독립영화전용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 이사
이은 영화제작자협의회 대표
이준동 영화제작사 나우필름 대표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최현용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


<영진위 쇄신하고 대기업 문어발 막아야>

-영화계 대안은?

영화진흥위원회 정상화, 독립영화지원제도 회복, 전용관 상영작을 검열하는 예술영화 배급유통 사업 취소, 대기업 독과점 막는 영비법 정비 등 영화계 정상화를 위한 시도는 대부분 ‘원상태 복구’에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영진위를 맡고 몇몇 대형 자본에만 유리한 시장의 규칙이 굳어진 박근혜 정부 4년을 지나면서 영화계는 산업적으로도 다양성을 잃어버렸다. 영화인 3인이 <한겨레>를 통해 ‘박근혜 정부 이후를 위한 정책 제안’을 내놓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공정거래를 위한 정책적 대안을 강조했다.

정리/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지난 5월2일 열린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오픈포럼에서 참석자들이 ‘예술영화전용관, 가능한 미래’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씨네21> 자료 사진
지난 5월2일 열린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오픈포럼에서 참석자들이 ‘예술영화전용관, 가능한 미래’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씨네21> 자료 사진

‘불통’ 영진위, 위원이 위원장 뽑도록

■ 영화진흥위원회 정상화 “현재의 영화진흥위원회는 비정상 상태다. 영진위 최고의결회의인 9인 위원회는 2016년 1월부터 11월24일까지 서면의결 포함 13번 열렸다. 대부분 전문 심사위원회에서 다룬 내용을 추인할 뿐, 진흥계획을 다룬 것은 5월26일 6차 위원회 딱 한번이었다. 그나마 이 회의에선 사무국에서 준비한 허술한 원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영진위는 선도하는 주체가 아니라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는 곳이다. 그런데 영진위의 소통 역량은 대단히 낮다는 평가를 영화계로부터 받는다. 위원 인선이 영화계의 의견 분포를 전혀 반영하기 어려울 만큼 상당히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원들을 역량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로 바꾼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문화체관광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영진위원장 선출은 영진위가 처음 구성되었을 때의 방식, 즉 위원에 의한 호선제도로 복원돼야 한다. 김종덕 문체부 장관이 임명한 김세훈 위원장과, 위원들에 의해 호선될 새 위원장이 섬기는 대상은 확연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문화예술 분야의 자율성이 존중될 필요가 있는 준정부기관의 장은 이사 중에서 호선하자”는 취지의 법률 개정안이 이미 발의됐으므로 변화를 기대한다.”

김혜준 무한상상플러스 대표이사

제작까지 손대는 대기업, 법이 막아야

■ 공정성장을 위한 제작-상영-배급 분리 “영화 산업에서 가장 다수의 소자본으로 이루어져 있는 부문은 제작이다. 그런데 얼마 전 씨제이엔터테인먼트가 제작사인 제이케이필름을 인수하는 등 대기업이 투자·배급을 넘어 제작 부문까지 점점 침식해 들어오고 있다. 쇼박스도 배급하는 영화의 제작 지분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

제작이 다수의 소액 자본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영화 제작은 창의성이 가장 중요한 부문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색깔에 대해서는 과민하고 대기업 독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박근혜 정부 들어서 문화에서 대기업의 증식을 막기 위한 여러 제도들의 취지가 무색해져버렸다. 최근 대기업이 영화 배급과 상영을 겸업할 수 없도록 하자는 영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제작과 상영 분리에 대해서도 깊게 토론해야 한다.”

최현용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

시민들이 만든 영화관에도 지원을

■ 시민 주체 영화관 활성화 “이번 정권 들어 독립영화 상영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민간 영화관을 만들려는 노력이 나타났다. 서울의 인디스페이스, 강릉의 신영극장, 대구 오오극장 등 시민들이 후원금을 모아 만든 동네 영화관이 생겨났다. 춘천 일시정지 시네마, 서울 ‘극장 판’과 옥인상영관, 대전 영화다방 등 자투리 공간으로 만든 10~20석짜리 미니 상영관도 모두 자생적으로 생겨난 공간이다.

그전까지는 영화관 사업 주체라면 기업 아니면 지방자치단체였는데 이제는 새로운 주체가 생겨난 것이다. 정부는 그곳에서 상영되는 프로그램을 통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지원하지 않으려고 했다. 영화진흥정책은 이런 자발적인 노력을 북돋고 보조를 맞춰야 한다. 산업적 영향은 크지 않더라도 영진위는 그런 변화에 주목하고 영화 상영을 경제활동이 아닌 지역 문화활동으로 활성화하기 위해 고민하는 기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원승환 독립영화전용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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