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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시대에 되묻는 박두만의 독백, ‘봉준호’표 장르영화의 시작점

등록 2019-05-27 15:03수정 2019-05-27 16:09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⑥살인의 추억
감독 봉준호(2003년)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 수사는 새 반장이 부임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박두만(송강호·왼쪽)과 특별수사본부 형사들이 범행 현장을 살피고 있다.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 수사는 새 반장이 부임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박두만(송강호·왼쪽)과 특별수사본부 형사들이 범행 현장을 살피고 있다.
2000년대 초 이른바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새로운 세대의 감독들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봉준호 감독은 그 중심에 있다. 그가 제기한 테마의 무게, 장르와의 긴장감, 드라마투르기의 면밀함, 스타일의 독창성 등은 분명 새로운 풍경이었다. <살인의 추억>은 봉준호 감독의 이 모든 미덕이 황금비율로 배합된 작품이다.

1980년대 남한 사회를 뒤흔든 연쇄살인 사건에서 출발한 영화는 처음엔 범죄 스릴러의 모양새로 전개된다. 한 농촌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제대로 된 목격자도, 뚜렷한 증거도, 의심 가는 용의자도 없다. 과학수사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박두만(송강호)은 범인을 조작하려 하고, 서태윤(김상경)은 사건 서류에서 뭔가 단서를 찾으려 하고, 조용구(김뢰하)는 폭력으로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범인은 거대한 암흑처럼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 박현규(박해일)라는 용의자로 초점이 맞춰지지만 결국 터널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감’을 바탕으로 수사를 하는 시골 형사 박두만(송강호)과 ‘과학수사’를 지향하는 서울내기 형사 서태윤(김상경)은 수사를 하는 내내 사사건건 의견이 엇갈리고 부딪친다.
‘감’을 바탕으로 수사를 하는 시골 형사 박두만(송강호)과 ‘과학수사’를 지향하는 서울내기 형사 서태윤(김상경)은 수사를 하는 내내 사사건건 의견이 엇갈리고 부딪친다.
<살인의 추억>은 실패담이다. 여기서 영화는 “왜 범인을 잡지 못했는가”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왜 범인을 잡지 못하는 시대였는가”라고 묻는다. 이 질문을 통해 <살인의 추억>은 장르 영화에서 벗어나 시대의 공기를 포착한다. 폭력과 야만의 시절. 공권력은 데모 진압에 집중되고, 동원된 학생들은 길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마치 범죄를 조장이라도 하듯 등화관제를 하던 시기. 이 영화는 범인을 잡는 형사들의 배경에 ‘1980년대’를 전시하면서 결국 그 시대의 시스템이 모든 것의 원인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방식은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방법론이다. 봉준호의 영화 속에선 항상 가족 혹은 공동체가 파괴되거나 억압을 받고, 그의 영화는 그 가해자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결론은 아이러니의 상황에 봉착하거나 통렬한 뒷맛을 남기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제시되는 풍경과 디테일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살인의 추억>은 ‘봉준호표 영화’의 본격적 시작이며, 한편으론 한국 장르 영화의 진일보한 성취다.

김형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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