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김태희 관장과 임형택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반계수록, 공정한 나라를 기획하다>.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 생가 옆에 자리한 실학박물관(관장 김태희)에서 내년 2월 28일까지 여는 전시다. 올해는 실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반계 유형원(1622~73)이 쓴 <반계수록> 저술 350년이자 간행 250년이 되는 해다. 반계가 48살 되던 1670년에 완성한 이 책은 꼭 100년 뒤인 1770년에 영조 지시로 경상감영에서 간행됐다. 당쟁으로 부친을 여의고 14살에 병자호란을 겪은 반계가 벼슬길을 단념하고 전라도 부안현 우반동에 칩거해 18년 동안 써내려간 책이 나라의 대표적인 경세서로 인정받은 것이다.
<반계수록-공정한 나라를 기획하다> 전시 포스터.
반계는 이 책에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핵심 과제로 토지 공유를 기본으로 하는 경제 개혁을 내세웠다. 그는 사적인 토지 소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토지는 국가에서 경작권을 분배하고 환수할 수 있는 공전제로 해 모든 사람의 기본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토지 제도를 비롯해 교육과 인재선발, 세제, 병제, 통화 등 여러 방면에서 구체적이고 정연하게 제시한 개혁 방안들은 그 뒤로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이 펼친 경세론의 디딤돌이 됐다.
지난 11일 박물관에서 김 관장과 실학 연구의 권위자인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임 교수는 작년부터 10년 계획으로 그가 이끄는 익선재 강독회 연구원들과 함께 <반계수록>을 번역하고 있다. 책의 가장 앞부분인 토지 제도(전제)는 반계 탄생 400년인 내후년에 먼저 낼 생각이다. 그는 3년 전에는 흩어졌던 반계의 시와 산문을 한데 모아 우리말로 옮긴 <반계유고>(창비)를 후배 연구자들과 함께 냈다. 지난달엔 실학박물관과 한국실학학회가 함께 연 국제학술회의 ‘17세기 동아시아의 역사 전환과 유형원의 <반계수록>’에서 기조발표도 맡았다.
“반계를 실학의 비조라고 하는데 2009년 박물관 개관 이래 한 번도 반계 기획전이 없었어요. <반계수록> 외에는 반계 관련 유물이 적은 탓도 있었죠. 최근 몇 년 임형택 선생님과 후배들이 흩어진 반계의 글을 모아 책도 내고 학술대회도 세 차례 했어요. 이렇게 쌓인 것을 밑천으로 전시를 열었죠.”(김 관장)
전시 제목이 어떻게 나왔냐고 하자 김 관장은 이렇게 답했다. “영조 시대 문신 오광운은 <반계수록> 서문에서 반계를 두고 ‘천하만세를 공(公)하게 하는 마음을 가진 분’이라고 했어요. 반계가 자신이 제안한 제도가 지극히 공정한 것이라고 자부했다는 점도 착안했죠. 요즘 시대적 화두도 공정성이고요.”
전시는 반계의 저술이 후대 실학자들의 사유에 미친 영향에 초점을 맞췄다. 다산 집안에서 간직하던 <반계수록>과 성호 이익의 제자인 순암 안정복이 <반계수록> 간행 이전에 이 책의 내용을 필사하고 자기 생각을 적은 책 <잡동산이>(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등을 전시 유물에 넣은 이유다. 임 교수가 14년 전 인사동에서 우연히 찾아내 <반계일고>라고 이름 붙인 반계 문집도 볼 수 있다. “다산 집안의 <반계수록> 소장본에는 정약용의 부친인 정재원 도장이 찍혀 있어요. 다산도 이 책을 봤을 겁니다. <반계수록>이 다산이 국가제도 개혁론을 편 <경세유표>에 영향을 미쳤다고 짐작할 수 있어요.”(김 관장) 다산은 강진 유배 이전인 34살 때 지은 시에서 반계를 이렇게 추앙했다. “끈지고 간절한 경세의 뜻은,/ 홀로 반계선생에서만 보오리라. (…) 끼친 글이 비록 세상에 가득하나,/ 애처롭다! 백성은 그 혜택을 입지 못했어라.”
다산 집안 소장본 <반계수록>. 실학박물관 제공
반계의 문집 발굴을 계기로 반계 책까지 썼다는 임 교수에게 왜 반계가 실학의 비조인지 물었다. “1930년대 한국학이 출발할 때 정인보, 안재홍 선생 모두 실학을 한국학의 뿌리로 보고 그 출발을 반계 유형원에서 찾았어요. <반계수록> 마지막을 보면 우리나라 적폐가 너무 심해 적악(쌓인 악)을 낳았다고 해요. 임진왜란을 보세요. 무슨 나라가 왜군이 동래에 상륙한 지 15일 만에 수도가 함락당해요.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려 30, 40년 뒤 병자호란에는 국왕이 침략자 앞에 무릎을 꿇어요. 병자호란 때 14살 소년 가장으로 가족과 원주로 피난하는 고통을 겪은 반계가 나라를 살리려면 근본적 개혁밖에는 도리가 없다고 적폐 개혁 방안을 제시한 게 <반계수록>입니다.”
그는 “반계가 추구한 핵심가치는 다수의 욕망, 요구, 이익과 함께하는 것이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반계는 조선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새로운 국가,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싶어 했죠. 그 역시 다른 유학자들처럼 요순 성인의 시대를 이상으로 봅니다. 상고주의이죠. 하지만 반계는 그야말로 옛날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성인의 시대를 오늘날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어요. 양란을 당하고도 근본적 반성이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어요. 당시 유학자들은 근본적 개혁 대신 ‘존명반청-북벌’을 체제 이데올로기로 만들어 제창했죠.”
‘실학의 창시자’ 유형원 경세서
‘반계수록’ 기획전 내년 2월까지
다산 집안 소장 ‘반계수록’ 등 전시
임 교수 반계 문집 찾아 3년 전 출간
작년부터 후배들과 ‘반계수록’ 번역도
“반계에서 ‘공의 사회’ 건설 지혜 찾길”
임 교수는 반계의 책에서 근본적인 인본주의적 사고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반계는 여자도 이름을 써야 한다고 해요. 사람인데도 이름이 없다고요. 그 시절 양반가도 호적에 여자 이름을 올리지 않았어요.”
그는 “<반계수록>이 비록 100년 늦었지만 실학자 책을 국가에서 펴낸 거의 유일한 사례”라며 “치세에 이 책을 다시 펴낸 정조는 ‘생전에 반계 선생을 만나지 못한 게 한이다’는 말까지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책을 낸 두 왕도 반계의 구상을 받아들여 나라를 개혁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임 교수는 말했다. “토지제도 등 근본적인 개혁에 무관심했죠. 정조는 축성 등 부분적인 내용에만 관심을 보였어요. 어떤 학술적 주장도 실천적 동력이 없으면 공언입니다. 반계도 책을 쓸 때 실천적 동력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자기 뜻을 펼칠 우군을 어떻게 모을지도 생각 못 했겠죠. 그건 다산도 어려웠을 겁니다.”
그는 ‘국정 전반을 개혁하라’는 반계의 뜻은 오늘의 시대적 과제와도 통한다고 했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부의 불균형이죠. 옛날보다 더해요. 반계가 토지 소유를 공평히 하자고 했잖아요. 쉽지는 않겠지만 청년 실업이나 부동산 문제 등을 어떻게 해결해 ‘공의 사회’를 건설할지, 반계의 책에서 지혜를 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임 교수는 학문에 뜻을 둔 이후로 내내 실학자의 삶과 사유와 함께했다. <실사구시의 한국학> <문명의식과 실학> <21세기에 실학을 읽는다> 등 실학을 탐구한 저술도 여럿이다. 실학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궁금해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실학은 우선 실학자의 저술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정말 우리 연구자들이 저술을 깊이 파고들었는지, 의문이 있어요. 실학 연구가 실학자의 근본정신이나 고민에 집중하는 대신 또 하나의 지식을 내놓는 데만 신경쓰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실학의 속류화, 인기 상품 만들기이죠.”
그는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재벌이나, 언론, 검찰 개혁 등 적폐 청산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금이야말로 신실학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학문은 근본적으로 운동성을 띠어야 좋은 학문입니다. 실학의 근본정신을 재현해야 합니다. 나라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반계의 뜻을 학문하는 이들이 새겼으면 해요.”
올해 취임 2년 째인 김 관장은 반계 사유의 현재적 의미를 이렇게 풀었다. “반계는 나라의 치욕을 씻고자 ‘변법’을 주장했어요. <반계수록>은 ‘나라다운 나라’를 위한 국가 기획이죠. 정도전의 조선 기획인 <조선경국전>(1394)이 조선 건국과 <경국대전>(조선 시대 최고 법전) 체제를 만들었듯이 반계의 기획은 새로운 조선으로 이어져야 했어요. 최근 코로나 사태로 국가의 기능 내지 임무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어요. 공적이고 효율적인 국가는 반계가 추구한 것이기도 했어요.”
임 교수는 한문학을 전공했지만, 홍명희와 이태준 등 한국 근현대 문학에도 관심을 두고 글을 써왔다. 외연을 넓혀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해요. 생각과 문학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문·사·철이잖아요. 문학과 역사, 철학이 따로 있지 않아요. 인간이란 삶 자체가 통합적입니다. 인간이 만든 정신적 산물을 통합적으로 봐야 하는 이유이죠. 현재 학술제도로는 이런 연구가 어려워요.”
60년 가까이 한국문학을 탐구한 임 교수에게 ‘한국문학의 특질’은 뭔지, 궁금했다. “제가 한국문학의 성질이라고 말하면 부분적인 데 그치고 왜곡할 수도 있어 조심스럽지만, 이렇게 말할 순 있을 것 같아요. 한국문학은 다양성이 있고 또 사회참여 정신이 뚜렷하고 비판적입니다. 한문학의 주류도 현실 비판적이죠. 현대문학도 그래요. 일본 문학은 섬세한 편입니다. 중국 문학도 사회참여 정신이 있지만 우리가 상대적으로 더 강해요.”
그는 계획을 묻자 “제가 석사 학위를 따기 전에 썼던 논문 ‘흥부전의 역사적 고찰’을 포함해 예전에 쓴 고전소설 글을 묶어 ‘동아시아 차원의 서사 문학의 발전’이라는 책을 내려고 합니다. 지금 후배들과 조선 후기 야담집인 <계서잡록> 독회를 하고 있어요. 책으로 내야죠”라고 답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김 관장에게 박물관 운영 구상을 들었다. “실학은 박제된 지식이 아니라 현재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우리 박물관이 실학자의 메시지를 현대적 문장으로 만들어 전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비대면 시대에 유튜브 채널도 열어 실학자의 생각을 대중들과 나누려고 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