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9일 서울 영등포역 플랫폼에서 최근 잇따른 철도 안전 사고에 대한 설명을 받는 중에 철도노조원들이 일터 개선 요구를 외면한 탓에 이번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며 원 장관 주변에서 집단항의했다. 철도노조 제공
경기도 의왕 오봉역에서 30대 철도 노동자가 기관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닷새째인 9일, 동료 철도 노동자들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찾아가 집단 항의를 했다. 정부가 이번 사고 책임을 노동자들의 ‘관행적인 안전 무시 태도’로 돌린 것도 모자라, 원 장관이 한밤에 서울 영등포역 승강장에서 ‘공개 사고 설명회’를 열자, 노동자들이 “전시행정을 멈추고 사고에 대한 사과부터 하라”고 외친 것이다.
철도노조는 9일 밤 10시께 영등포역 8번 승강장에서 열린 국토부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철도 안전사고 브리핑 장소에서 집단 시위를 벌였다. 이날 브리핑은 원 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이어진 일정이다. 앞서 국토부는 이날 오후 2시께 언론에 “원 장관이 밤 10시 영등포역에서 철도안전대책 관련 노동조합 간담회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지와 달리 노조엔 간담회 참석 요청이 아예 없었고, 실제 참석자들은 한국철도공사의 부사장과 임원, 몇 명의 직원들이었다.
원 장관은 8번 승강장에서 철도공사 관계자들로부터 최근 잇따른 안전사고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다. 원 장관 앞에는 사고 내용을 담은 ‘현황판’도 세워졌다. 철도노조 조합원들은 브리핑 장소를 에워싸고 “안전인력 충원해라”, “인력충원 가로막은 국토부가 책임져라”, “조합원을 살려내라”고 외쳤다. 철도노조 집단 항의 속에서 ‘8번 승강장 설명회’는 10분가량 이어졌다.
설명회 뒤 원 장관은 영등포역 3층에 있는 한 회의장에서 국토부, 철도공사 관계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했다. “사과 없는 간담회는 전시행정”이라며 회의장 입구를 막아섰던 철도노조 조합원들과 경찰, 철도경찰 등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철도노조는 입장문을 내어 “귀국하자마자 철도 사고를 챙기는 장관의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던 것이냐”며 “아닌 밤중에 퇴근도 못하게 현장 직원들을 붙잡아놓고 무슨 간담회인가. 원 장관이 귀국하자마자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은 오봉역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인의 유가족들이 계신 곳”이라고 했다.
철도노조는 오봉역 사고가 정부의 안전인력 충원 외면과 위험한 작업현장 개선 의지 부족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 사고 직후 어명소 국토부 2차관이 “관행적인 안전 무시 작업 태도를 타파하도록 쇄신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동료 노동자들과 유가족의 공분을 더 키웠다. 철도노조는 “수년째 현장 직원들이 오봉역 작업 현장의 위험성을 피력하며 개선을 요청했지만 국토부가 번번이 묵살했다”며 “작업수칙 운운하기 전에 이동통로조차 확보되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왜 작업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폈어야 한다”고 맞섰다. 국회 국토교통위위원회 박상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코레일은 최근 2년간 861명의 안전인력 증원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약 14%인 125만 승인했다.
오봉역이 위험한 현장이라는 지적은 숨진 노동자 유가족이 온라인에 쓴 글에도 자세하게 담겨 있다. 숨진 노동자의 동생이라고 밝힌 ㄱ씨는 전날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사고 다음날 찾았던 현장에 대해 “한국에 이런 곳이 있다고 생각도 못했다. 우리 오빠가 일하던 현장을 본 부모님과 삼촌들은 말을 잇지 못했고 철조망에 매달려 오열했다”며 “철길 옆은 울창한 담쟁이 덩쿨로 뒤덮인 철조망으로 인해 사고가 나도 도망칠 공간도 없었고, CCTV는 당연히 설치돼 있지도 않았으며, 밤에는 불빛조차 환하지 않아 어렴풋이 보이는 시야 속에서 일을 했고, 유일한 소통수단인 무전기 또한 상태가 좋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ㄱ씨는 또 “그 무거운 열차 수십대가 저희 오빠를 밟고 지나 끝까지 들어갔다고 한다”며 “저 많은 열차를 단 2명이서, 그것도 숙련된 2명도 아닌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인원 포함 2명이서 손으로 연결하고 떼고 위치바꾸는 등의 일을 한다고 들었다”고 했다.
철도공사 노동자 사망 사고는 올해만 4번째다. 모두 작업 중 열차에 치이는 사고였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