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의회 앞. EPA 연합뉴스
전세계적으로도 저소득층의 체감 물가를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식 통계로 파악되지 않는 취약계층의 물가 부담이 거시경제의 또 다른 리스크로 떠오를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일본과 홍콩 등은 이런 우려를 감안해 이미 계층별 체감 물가를 따로 산출해 발표하고 있다.
21일 유럽중앙은행(ECB)이 최근 펴낸
금융안정 보고서를 보면, 유럽중앙은행은 “저소득층은 소득의 더 많은 비중을 에너지와 식료품 등 필수재에 지출한다”며 “올해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에너지와 식료품이 특히 더 큰 타격을 받은 만큼, 저소득층은 더욱 취약한 처지에 처해 있다”고 짚었다. 공식 물가 통계가 보여주는 것보다 저소득층이 체감한 물가 상승률이 훨씬 높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유럽중앙은행은 이런 괴리 때문에 저소득층의 가계부채 부실 위험이 과소평가됐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저소득층의 체감 물가 상승률이 더 높은 만큼, 실질소득도 더 심각한 타격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의 부채 상환 능력도 그만큼 더 가파르게 악화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유럽중앙은행은 “전체 가계부채 중 저소득층 차주의 비중이 높은 국가의 경우에는 은행의 자산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럽의 경고는 취약계층의 체감 물가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중요한 이유를 보여준다. 물가 상승률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뿐 아니라 각종 경제전망과 국민연금 지급액이나 최저생계비 산정 등 정책의 기초자료로 쓰인다. 한국은행도 2014년 펴낸
이슈노트에서 “향후 물가 상승세가 큰 폭으로 확대되거나 축소되는 경우에는 계층별 물가 동향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한 바 있다.
일부 국가들은 이미 계층별 물가 상승률을 따로 산출하고 있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일본 총무성이 지난 18일 발표한
소비자물가 통계를 보면, 지난달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가 체감한 물가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은 3.9%였다. 소득 5분위(상위 20%)가 체감한 물가 상승률 3.3%는 물론 전체 평균 3.6%도 크게 웃돌았다. 일본은 가구주 연령별 물가 상승률도 해마다 발표하고 있다.
홍콩도 마찬가지다. 가구의 지출 규모별 물가 상승률을 매달 공식 소비자물가지수와 함께
공표하고 있다. 홍콩에서 올해 1∼9월에 지출 하위 50%에 해당하는 가구가 체감한 물가는 1년 전보다 2.3% 올랐다. 전체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1.9%)과의 차이가 컸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