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만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전 총괄 프로듀서(앞)가 지난 14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몽골 경제인 만찬’에 참석해 웃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사실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 결정된 바가 없다.”(카카오)
카카오가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주식을 공개매수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회사가 언론에 내놓은 입장이다. 카카오의 우군으로 거론된 씨제이(CJ)가 “사실무근”이라고 강력 부인한 것과는 대비되는 애매한 답변이다. 자연스레 시장은 카카오의 공개매수 참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썩였고 에스엠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특히 하이브가 이미 ‘에스엠 인수’를 선언하고 공개매수에 착수한 상황인 만큼, 두 회사 간 경쟁이 주가에 불을 붙일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었다.
문제는 만약 카카오가 인수전에 뛰어들면 ‘거짓 공시’의 소지가 커진다는 점이다. 에스엠은 지난 7일 카카오에 지분 9.1%를 넘기는 계약을 맺으면서 “전략적 제휴”를 위한 것이라고 공시했다. 경영권 인수 목적이 아니라는 얘기다. 카카오로서는 공개매수에 나서든 나서지 않든 시장을 속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지는 셈이다. 카카오와 에스엠의 말 바꾸기가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할 가능성은 없을까?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주장 먹힐까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에스엠은 지난 7일 카카오와 맺은 신주인수·전환사채 계약의 목적이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입지와 제휴를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공시했다. 하이브가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 지분 인수의 목적을 “경영권 영향”이라고 공시한 것과는 대비된다. 하이브와 달리 카카오는 에스엠 경영권에 관심이 없다고 밝힌 것이다.
카카오가 인수전에 뛰어들면 앞선 공시가 거짓이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듯 주요사항 공시에 거짓을 기재해 자본시장법을 위반하면 과징금 부과 등의 제재를 받는다. 이번 공시의 경우 에스엠이 올린 것이어서 제재를 받는 대상도 에스엠 쪽이 된다.
에스엠이 꺼내 들 만한 논리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것이다. 7일 공시 당시에는 카카오가 경영권에 관심이 없었지만 하이브의 등판으로 생각이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하이브가 카카오의 직접적 경쟁사인 네이버와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이런 주장도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다. 에스엠이 경쟁사의 영토로 넘어갈 가능성이 생기자 아예 경영권을 가져오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금융당국도 에스엠이 이렇게 주장할 경우 공시의 거짓 여부를 입증하기 힘들 수 있다.
다만 하이브가 공식적으로 참전하기 전에도 이미 경영권 분쟁의 정황이 존재했다는 점은 에스엠에 불리하게 작용할 요인이다. 에스엠은 지난달 20일 이 전 총괄 프로듀서와의 프로듀싱 계약 종료를 발표하고 “지배구조 개편”을 선언한 바 있다. 이후 카카오와 맺은 계약도 이 전 총괄 프로듀서의 반대 속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쟁점에 대해서는 법정에서도 시시비비가 가려질 전망이다. 에스엠-카카오 계약 직후 이 전 총괄 프로듀서는 신주·전환사채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는데, 여기서도 카카오가 주식을 취득하는 목적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상법에 따르면 기존 주주가 아닌 제3자에게 새 주식을 배정하는 것은 경영상 불가피한 경우에만 허용된다. 신기술의 도입이나 재무구조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대로 경영권 방어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등의 경우엔 금지된다. 원칙적으로는 제3자가 아닌 기존 주주에게 신주를 인수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취지다.
때문에 법원이 에스엠-카카오 계약의 목적을 경영권 쟁탈로 볼 경우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게 된다. 이 경우 ‘전략적 제휴’를 주장한 에스엠의 공시도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처분 신청의 첫 심문기일은 오는 22일로 예정돼 있다.
카카오도 ‘5% 룰’의 사정범위에 들어온 이후에는 직접 속내를 드러내야 한다. ‘5% 룰’이란 누구든지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게 되면 경영 참여 여부 등 보유 목적을 공시해야 하는 자본시장법 조항을 가리킨다. 경영권 변동의 가능성을 투자자들에게 투명하게 밝히고, 기존 주주에게도 경영권 방어의 기회를 충분히 보장해주기 위해 도입된 규정이다. 카카오의 경우 에스엠과 맺은 신주인수·전환사채 계약에서 정한 납입일의 다음 날인 3월7일부터 공시 의무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카카오 쪽에 공시 의무가 있기 때문에 거짓 공시를 하면 카카오가 제재를 받는다.
게다가 ‘5% 룰’ 공시는 최근 강화됐다. 지난해 8월 금융위원회는 경영 참여가 목적인 경우 관련 계획을 더욱 구체적으로 쓰도록 공시 서식을 고친다고 발표했다. 가령 ‘몇월 며칠에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해 아무개 후보자를 임원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하겠다’고 밝히는 식이다. 경영권 다툼이 더욱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실제로 ‘5% 룰’ 공시는 경영권 분쟁에서 허위 기재 논란에 휩싸인 경우가 적지 않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위해 지분을 매수하면서도,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거짓 기재하는 사례도 있다. 경영 참여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각종 공시 의무가 훨씬 강화되고, 지분을 추가로 취득하거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냉각 기간도 부과되기 때문이다. 또 경영 참가 선언이 주가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당분간 지분을 추가로 사들이기도 한층 어려워진다. 카카오가 공개매수를 고려하고 있다면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자본시장법은 이런 허위 공시를 막기 위해 강력한 제재 규정을 두고 있다. ‘5% 룰’ 공시에 거짓을 기재할 경우 과징금을 물리는 것뿐 아니라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거나 더 나아가 아예 주식처분명령을 부과하는 것도 가능하다.
카카오가 당분간 ‘에스엠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도덕적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카카오가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매수가 임박했을 가능성을 사실상 인정한 탓이다. 지난 15일 저녁 “카카오가 최근 국내 대형 증권사 한 곳을 공개매수 주관사로 선정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자 카카오는 “결정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나정 카카오 커뮤니케이션실장(부사장)은 “(보도 내용을) 부인한 것도 아니고, 부인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는 설명을 내놨다.
자연스레 카카오가 공개매수 계획을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었다. 온라인에서는 “카카오가 (공개매수 단가로) 14만원을 불렀다고 한다” 따위의 이야기가 쏟아졌고, 에스엠 주가는 16일 하루 만에 7.6% 뛴 13만1900원에 마감했다. 하이브가 제시한 공개매수 가격 12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약 25%의 지분 확보를 목표로 한 하이브의 공개매수가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카카오가 조만간 실제로 공개매수에 나서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하고 있다. 하이브가 이 전 총괄 프로듀서와의 계약을 통해 확보할 지분은 총 18.4%지만, 카카오가 예정된 주식을 모두 취득하면 지분이 희석돼 16.8%로 줄어든다. 카카오의 지분은 내년 보통주로 바뀌는 전환사채까지 포함해 9.1%가 될 전망이다. 카카오 입장에서 장기전은 노려볼 만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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