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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준칙을 약화시킬 것이 아니라 강화해야 한다.”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 “유럽은 재정 규율에 대한 페티시즘(집착)을 중단해야 한다.” (영국 신경제재단) 한국이 도입하려는 재정준칙의 ‘360 룰’의 원조는 유럽연합(EU)이다. 그런데 제도 도입 25년이 넘은 유럽 국가들도 코로나19 시기 유예했던 재정준칙의 내년 재시행을 앞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재정건전성 강화와 긴축 반대 간 논쟁이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린드너 재무장관은 4월25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쓴 기고문에서 “건전한 공공 재정은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 조건”이라며 “잠재적인 미래 위기에 대비한 재정 완충 장치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지난 3월 공개한 재정준칙인 ‘안정과 성장에 관한 협약’(SGP)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날을 세웠다. 360 룰의 뿌리는 유럽연합 출범 전에 체결된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내 영구 평화와 번영을 목표 삼아 추진된 경제 통합의 강도를 높이는 조약이다. 통화 동맹, 유로화 출범으로 나아가기 전에 회원국들의 방만한 재정 운용을 막기 위해서였다. 주요국들의 국가부채 비율 평균값을 가이드라인 상한선으로 삼았다. 이 기준은 1997년 지금의 재정준칙인 ‘안정·성장 협약’으로 발전해 몇차례 개정과 코로나 유예 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재시행할 예정이다. 코로나 기간 급증한 부채를 고려해 회원국 의견을 수렴한 개편안을 마련 중이다. 개편안 초안에는 기존 360 룰을 다시 적용하되 4∼7년 조정 기간을 부여해 만성 재정 적자를 겪는 국가들의 부담을 일부 완화해주는 내용을 담았다. 문제는 회원국 간 견해차가 크다는 점이다. [%%IMAGE2%%] 실제 린드너 재무장관의 공개 비판 직후 영국 싱크탱크인 신경제재단, 유럽노동조합연맹 등 7개 기관 및 단체가 같은 매체에 공동 반박문을 게재했다. 이들은 린드너 장관의 주장을 “실패한 유럽의 재정 긴축 실험에서 배운 것이 얼마나 적은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하며 “정부는 재정 규율을 숭배하기보다 오늘날의 번영을 창출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지구를 보호할 사회적·경제적·환경적 투자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의 재정 위기 가능성에 대비해 건전성을 강화하자는 견해와 미래 성장을 위해 준칙에 얽매이지 말고 당장 필요한 곳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부닥치는 것이다. 이러한 신경전 뒤에는 유럽연합 회원국 간 서로 다른 이해관계도 자리 잡고 있다. 독일 등 제조업 비중이 높고 재정 여력이 탄탄한 부자 나라들은 재정 취약국의 부채 비율 증가를 반기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과 이후의 인플레이션 등을 겪어 나랏빚 트라우마가 큰데다, 2010년 남유럽 재정위기 당시와 같이 위기에 빠진 회원국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어서다. 반면 산업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재정 여력이 부족한 남유럽 국가들에선 탄력적 재정준칙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태호 박종오 기자 ec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