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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세수 줄어드는데 뜬금없는 ‘재정준칙’, 성장도 복지도 위협한다

등록 2023-06-14 09:00수정 2023-06-14 10:03

세입확충 의지없는 감세 ‘엇박자’
“돈 덜쓰자” 기조에 복지·미래투자 발목
지난 3월14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재정준칙 도입 공청회에서 김태일 고려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14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재정준칙 도입 공청회에서 김태일 고려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랏빚 증가에 상한을 씌우는 ‘재정준칙’ 도입 논의가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시급성을 촉구하는 정부와 여론의 파상공세로 정작 이 제도 도입의 의미와 한국 사회에 미칠 영향 등에 관한 논의는 실종됐기 때문이다.

국회가 재정준칙 도입을 위한 국가재정법 개정에 합의하면 준칙은 당장 내년도 예산부터 적용된다. 그러나 재정준칙이 현재의 방안대로 도입되면 사회안전망 확대, 기후변화 대응 투자 등이 물 건너가고 저성장과 불평등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13일 기획재정부 설명 등을 종합하면 정부는 재정준칙 도입을 위한 국가재정법 개정 절차가 사실상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치권 결단만 남았다는 의미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회 상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축조 심사(의안을 한 조항씩 심사하며 의결하는 것)까지 마친 상태”라고 말했다. 예산당국은 법 통과가 늦어지더라도 내년도 예산안을 최대한 재정준칙 기조에 맞춰 편성할 방침이다. 제도의 ‘선 시행 후 도입’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재정준칙은 경기 침체, 대규모 실업 등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정부의 연간 관리재정수지(정부 수입에서 지출을 빼고, 기금 누적으로 큰 폭의 흑자를 내는 국민연금 수지 등을 제외한 수지) 적자가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게 핵심이다. 기재부는 이 기준을 적용해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만약 지디피 대비 국가채무비율(D1)이 60%를 초과하면 관리재정수지 적자 상한선을 3%에서 2% 이하로 낮춘다. 정부가 매년 쓰고 남은 돈인 세계잉여금에서 지방에 나눠주는 정산액과 공적자금상환기금 출연액을 제외하고 빚 상환에 쓰는 금액의 비율을 현행 30%에서 50%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도 담겼다.

문제는 재정준칙의 이른바 ‘재정적자 3%, 국가채무 60% 룰’(360 룰)이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복지 강화, 미래 투자 등을 발목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정부의 건전재정과 재정준칙 논의가 ‘세입 확충’보다 ‘지출 통제’에 맞춰져 있는 탓이다. 재정수지는 정부 수입에서 지출을 뺀 값인 까닭에, 수입을 늘리지 않고 수지 상한을 지키려면 씀씀이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현 정부 들어 5년간 60조원을 훌쩍 넘는 감세를 단행하고 경기 악화로 세수 부족 문제까지 심해져 이러한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재정 정상화를 하겠다는 정부가 정작 국민 부담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는 건 재정준칙 논의가 반쪽짜리라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자기 입맛에 맞는 정보만 보여주며 여론몰이를 하기도 한다. 기재부는 재정준칙 도입의 모범 사례로 대표 복지국가인 스웨덴을 꼽으면서도, 스웨덴의 복지 정책 기반이 탄탄한 세입에서 나왔다는 점은 설명하지 않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스웨덴이 재정준칙을 도입한 1997년 이 나라의 국민부담률(지디피에서 세금 및 사회보험료 납부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47.7%로 지금의 우리(2021년 기준 29.9%)보다 월등히 높았다.

한국의 국민부담률은 현재 국가부채비율이 260%를 초과하는 글로벌 ‘재정 문제아’ 일본(2020년 기준 33.2%)에 견줘서도 낮은 편이다. 세입 확충 의지 없는 재정건전성 강화는 ‘약자 복지’를 내세우는 현 정부 구호와 어긋나고 외려 중장기적인 사회안전망 구축에도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탄소중립 등 미래 산업을 위한 정부의 ‘마중물’ 투자도 난항을 겪으리란 지적도 나온다. 단기적인 재정 성과에만 초점을 맞추다가 미래 먹거리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다. 박노욱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독일의 경우 재정준칙의 수지 기준을 유지하면서도 미래 투자에 한해 국채 발행을 허용하는 ‘황금률’ 제도를 갖고 있다”며 “유럽연합(EU)도 내년 재정준칙 재시행을 앞두고 부채가 많은 남유럽 국가 등의 미래 투자에 공동 기금으로 지원하는 방안 등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재정준칙을 도입한 국가들의 절반가량인 49개국(2021년 기준)에 있는 ‘독립 재정 기구’ 설치 방안이 빠진 것도 한국식 재정준칙의 특징이다. 예산 편성권을 가진 기재부가 준칙 운용 전반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구조다. 재정 정보의 투명성, 행정부의 자의적 제도 운용 등의 문제가 뒤따르는 셈이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재정준칙의 운용을 기재부에만 맡겨서는 안 되고 독립성 있는 기구를 세워 엄격하게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노욱 선임연구위원은 “네덜란드의 경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독립적 재정 기구가 기존 정책 진단과 함께 차기 정부의 재정 운용 기조를 위한 권고 사항까지 발표하고 대체로 이를 지킨다”고 했다. 정권에 따라 재정 기조가 오락가락하는 일이 없다는 의미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재 국회가 예산안을 심의하는 기능을 하는 만큼 독립적 재정 기구를 설치하는 건 옥상옥(지붕 위에 지붕을 얹는 것)이 될 수 있다”며 “감세도 민간의 투자 활성화 등을 통해 세수 확대와 성장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종오 안태호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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