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정남구의 경제 톡
주택 통계의 착시
5월 4주부터 반등했다지만…
월간 가격지표 여전히 하락세
거래량도 큰 폭 감소 이어져
임대료 하락세 ‘전세 선호’ 강해
주택 통계의 착시
5월 4주부터 반등했다지만…
월간 가격지표 여전히 하락세
거래량도 큰 폭 감소 이어져
임대료 하락세 ‘전세 선호’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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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초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 경제위기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자,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은 초저금리 정책을 폈다. 각국 정부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규모로 재정 지출을 늘렸다. 경제는 위기를 피했는데, 그 여파로 주택가격이 폭등했다.
영국의 부동산 컨설팅 기업인 나이트프랭크는 2021년 3분기 세계주택가격지수(Global House Price Index) 보고서에서 ‘팬데믹 붐’이란 표현을 썼다. 세계 주요 56개국의 집값 동향을 분석한 이 보고서를 보면, 1년간 집값 상승률이 10%를 넘은 곳이 27개국에 이른다. 한국의 집값은 1년 전에 견줘 26.4% 올라,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튀르키예(35.5%) 다음으로 상승폭이 컸다.
2022년 12월16일 나이트프랭크는 2022년 3분기 보고서를 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3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으나, 아직은 금리 인상의 여파가 그렇게 크지 않은 시기였다. 56개국 가운데 1년 새 집값이 떨어진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6개국뿐이었다. 한국의 집값은 1년간 7.5% 떨어져 56개국 가운데 가장 하락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격언대로였다. 그런데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지금 벌써 ‘집값 바닥론’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얼마나 근거가 있는 말일까?
‘코로나 붐’으로 집값이 폭등한 미국의 집값 흐름은 과거의 버블 붕괴 때의 급락과는 다르다. 대표적인 통계인 에스앤피 케이스실러지수 주요 20개 도시 집값 추이를 보면, 코로나 붐에 따른 급등은 2020년 3월부터 2022년 7월 사이 43.4%에 이르렀다. 그 뒤 올해 1월까지 6개월간 6.8% 떨어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상단이 2022년 1월 0.25%에서 2023년 5월 5.25%까지 폭등했지만 집값 하락폭은 매우 작았고, 2월부터는 소폭이지만 상승세를 보였다. 2월에 전달보다 0.25% 오르고, 3월에는 1.54% 올랐다.
미국에서도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반면, 주택가격 하락폭은 매우 작다. 이는 2020∼2021년 저리의 장기 고정금리로 대환대출을 받은 주택 소유자들이 금리 인상에 따른 부담은 느끼지 않는 반면, 주택 매수 대신 임대 수요가 커지면서 임대료가 오르자 굳이 집을 팔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2022년 2월 이후 기존주택매매지수가 큰 폭 하락한 것에 견주면 집값 하락 정도는 매우 낮고, 지수 하락 추세는 아직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 케이스실러지수가 두달 올랐다고 미국 집값이 상승 전환했다고 단정하기엔 성급해 보인다.
우리나라 집값도 벌써 바닥에 이른 것 아니냐는 이야기는 일부 통계에서 집값이 반등한 것으로 나오고, 미분양 주택이 줄고, 일부 부동산 심리지수가 긍정적 전망을 내비친 것을 근거로 한다. 그러나 ‘죽은 고양이도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튀어오른다’는 미국 월가의 격언처럼, 대세 하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나타나는 일시적인 반등(데드캣 바운스)일 가능성도 있다.
집값이 상승 전환한 것으로 나타나는 통계는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가격 동향 조사’다. 서울 아파트가격이 5월 넷째 주 전주 대비 0.03% 오른 것을 시작으로 6월 둘째 주(6월12일 기준)까지 4주 연속 상승했다고 밝혔다. 수도권 아파트가격도 2주 연속 올랐다고 집계했다. 그런데 주간 가격동향 조사는 신뢰도에 흠이 많다. 주택 거래가 주식처럼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실과 한국도시연구소가 지난 2월 낸 ‘2022년 실거래가 분석을 통해 본 주거 정책의 과제’ 보고서를 보면, 주간 가격조사 통계는 한국부동산원, 케이비(KB)국민은행, 부동산114 등 누가 생산했느냐를 막론하고 나중에 확인한 실거래가 흐름과 현격한 격차를 보인 일이 많았다. 특히 2021년 하반기 이후 상승과 하락이 정반대로 나타난 시기가 길었다.
월간 가격조사들도 흐름이 실거래가와 정반대인 때가 있어서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흐름은 참고할 만하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와 케이비국민은행 조사의 경우 5월에도 가격 하락세가 이어진 것으로 집계돼 있다. 다만 하락폭은 줄어들고 있다.
매매가 줄어드는 것은 가격 하락의 조짐이요, 늘어나는 것은 상승의 조짐이다. 주로 사려는 사람이 많을 때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5월30일 발표한 ‘4월 주택통계’를 보면 4월의 전국 주택 매매거래량은 전달보다 9.1%, 지난해 같은 달보다 18.6% 감소했다. 수도권에서도 8.3%, 10.8% 감소했다. 거래 동향에서는 집값 바닥에 근접했다는 근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신규 주택의 수급도 가격을 전망하는 데 참고가 되는 지표다. 그런 점에서 전국 미분양 주택 수가 2월 7만5438채에서 3월 7만2104채로, 4월에 7만1365채로 줄어든 것이 눈길을 끈다. 그러나 수도권은 4월에 미분양이 다시 5.2%(575채) 늘어난 것을 보면, 올해 1~4월 분양 물량이 급격히 줄면서 지방 미분양이 크게 줄어든 데 따른 착시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집은 임차해서 살 수도 있고, 사서 들어가 살 수도 있다. 주거의 수요자들은 임대료와 집값을 비교해 유리한 쪽을 선택한다. 상승기는 임대료가 먼저 오르고, 그에 따라 집값이 오른다. 주택 매수 열기가 뜨거워지면 집값 상승률이 임대료 상승률을 앞지른다. 집값이 한계에 이르면 떨어지기 시작한다. 집값 하락이 가팔라지고 이어 임대료가 떨어진다. 이런 흐름에 따라 주택가격 변동 주기를 분류하면, 상승 전환기는 ‘주택가격이 먼저 하락세를 멈추고 이어 임대료가 상승으로 돌아설 때’라고 할 수 있다.
케이비국민은행의 월간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로 보면, 전세가격은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역전세난이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 실질 임대료는 전세보증금의 기회비용이라, 전세가격지수로는 임대료 추이를 정확히 볼 수가 없다. 다만 전세가격지수에 이자율(한국은행이 집계한 예금은행의 전세자금대출 금리 신규 취급액 기준)을 곱하면 실질 임대료의 흐름을 추정해볼 수 있다. 계산 결과 전국·수도권 모두 4월까지 가파른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집값 바닥론이 성급해 보이는 또 다른 이유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강조하고 있다. 집값이 급락하면 가계대출 부실화, 내수경기 침체 등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것을 우려한다. 이 때문에 금리 인상을 억제하고, 낮은 고정금리로 특례보금자리론 39조6천억원을 공급하고 있다. 역전세난에 따라 임대인의 전세보증금 반환을 지원하기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에도 예외를 둘 방침이다. 최근 집값 하락세가 완만해진 데는 이런 정책 변수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논설위원 jeje@hani.co.kr
대세 하락세 중 일시적 반등
전세가격도 하락세
한겨레 논설위원. 경제부장, 도쿄특파원을 역임했다. <통계가 전하는 거짓말> 등의 책을 썼다. 라디오와 티브이에서 오래 경제 해설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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