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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급발진 책임법’ 담당 부처 어디? 국토교통부 아니고요

등록 2023-06-20 16:31수정 2023-06-22 08:17

[더(THE) 친절한 기자들]
한문철 변호사가 진행하는 지난 13일 <제이티비시>(JTBC) 프로그램 ‘한블리’(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에서 강릉 티볼리 급발진 사고를 소개하고 있다. 방송 갈무리
한문철 변호사가 진행하는 지난 13일 <제이티비시>(JTBC) 프로그램 ‘한블리’(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에서 강릉 티볼리 급발진 사고를 소개하고 있다. 방송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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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가 찍힌 블랙박스 영상을 제보받아 유튜브에서 명쾌한 결론을 내려주는 것으로 유명한 한문철 변호사가 지난 15일 청주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진행했습니다. 정책적 조언을 구하는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공정위 직원들의 단합을 위해 마련한 워크숍 일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강의 주제도 ‘교통사고 안 내고 안 당하기’라는 다소 가벼운 내용이었죠.

한 변호사는 여러 교통사고 사례를 소개하며 운전자 또는 보행자로서 주의할 점을 강조한 뒤 마지막으로 급발진을 언급했습니다.

“운전자 잘못이 없고 피해자 잘못도 없는데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크게 다치는 사례가 바로 급발진입니다. 차량에 문제 있거나 운전자가 잘못한 것 중 하나인데 현 상황에서는 운전자 잘못으로만 결론이 나는 문제가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변호사가 공정위 워크숍에서 급발진 이야기를 꺼낸 이 대목에 제가 주목한 건, 바로 공정위가 급발진과 관련된 제조물 책임법의 담당부처이기 때문입니다. 급발진은 운전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차량이 급가속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는 급발진 의심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운전자 실수라고만 보기에 어려운 영상도 다수 입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급발진 의심 신고 건수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총 316건 접수됐습니다.

하지만 여태껏 급발진은 단 한 건도 공식 인정된 바 없습니다. 차량 결함으로 급발진이 일어나 피해를 본 경우 ‘제조물 책임법’에 근거해 제조사에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소비자가 결함을 입증해야 합니다. 복잡한 기계·전자 제품의 결함을 소비자가 입증하기는 쉽지 않은 데다가 주요 증거도 제조사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소비자 입증 책임을 완화하거나 책임을 제조사가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습니다.

한 변호사는 공정위 특강을 진행할 당시 공정위와 제조물 책임법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18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입증 책임을 제조사로 전환하기 위한 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급발진 관련 제조물 책임법이 공정위 소관이라는 걸 알았다면 특강에서 급발진 사례를 더 많이 소개하고 개정안 통과에 노력해달라고 당부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 손자를 잃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된 60대 할머니가 지난 3월20일 첫 경찰조사를 마치고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경찰서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 손자를 잃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된 60대 할머니가 지난 3월20일 첫 경찰조사를 마치고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경찰서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급발진 이슈를 꾸준히 알려오던 그도 공정위의 역할을 제대로 몰랐듯이 국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 안전 규정을 다루는 국토교통부와 연관 짓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죠. 사실 제조물 책임법은 법무부와 공정위가 함께 담당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워크숍 취재를 위해 접촉한 공정위 과장급 직원도 “급발진 문제와 공정위가 어떤 관련이 있냐”고 반문할 정도였습니다. 이렇듯 공정위는 그간 급발진 이슈에서 슬쩍 빠져있는 모양새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수년째 지지부진하던 제조물 책임법 개정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있습니다. 강릉 티볼리 급발진 의심 사건이 여론을 움직였습니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해 12살 손자가 숨지고 60대 여성 운전자인 할머니가 크게 다쳤습니다. 많은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같은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공포심도 불러왔습니다.

사고 유족이 제조물 책임법 개정에 관한 내용을 국회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 올렸고, 6일 만에 5만명의 동의를 얻으면서 청원이 공정위 소관 법률을 다루는 국회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에 회부됐습니다.

2016년 부산 감만동에서 싼타페 차량이 트레일러 차량을 들이 받은 사건은 대표적인 급발진 의심 사고다. 이 사고로 운전자를 제외한 아내와 딸, 손자 2명 등 모두 4명이 숨졌다. 사고 당시 차량의 모습. 부산지방경찰청 제공
2016년 부산 감만동에서 싼타페 차량이 트레일러 차량을 들이 받은 사건은 대표적인 급발진 의심 사고다. 이 사고로 운전자를 제외한 아내와 딸, 손자 2명 등 모두 4명이 숨졌다. 사고 당시 차량의 모습. 부산지방경찰청 제공

국회도 여·야 가리지 않고 제조사 입증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 역시 정무위에 계류돼 있습니다. 대표 발의자는 정우택(국민의힘)·박용진(더불어민주당) 의원입니다. 현대자동차그룹 등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지만 법 개정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고 여·야 모두 입법 의지를 보이는 만큼 공정위도 제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공정위는 지난 5월 초 ‘제조물 책임법 운용 실태조사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해 급발진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지난달 26일 열린 급발진 관련 국회 정책세미나에 참석한 오종희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안전교육과장은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제조물은 소비자가 결함 입증이 어려운 면을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며 “올해 말까지 연구 용역을 마치고 법률 개정안을 검토할 때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는 22일 열릴 정무위 제2소위원회에서 강릉 급발진 사고 유가족의 청원과 여야가 발의한 개정안이 논의될 전망입니다. 한문철 변호사는 “특강에서 급발진에 할애한 시간이 짧긴 했지만 급발진 의심 사고의 포인트가 무엇인지 공정위 직원들에게 정확하게 전달 됐을 것”이라며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공정위 직원분들이 노력해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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