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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가속’으로 발생한 모든 교통사고에 대해 자동차 제조사가 결함이 없다는 걸 입증하도록 법을 만들어도 되는 걸까.

지난 22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제2소위원회 회의록을 여러 번 읽어본 뒤 요약해본 이 날 회의의 쟁점입니다. 이날 소위에서는 급발진 관련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에 대한 첫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급발진은 운전자 의도와 무관하게 차량이 급가속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유튜브에서는 급발진 의심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운전자 실수라고만 보기엔 어려운 영상이 많습니다.  현행법은 소비자가 급발진을 입증해야 합니다. 이런 영상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급발진 사건에 대해선 제조사가 결함이 없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런 여론을 반영해 정우택 의원(국민의힘), 박용진·허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관련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강릉 티볼리 급발진 사고 유족도 소비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6일 만에 5만명의 동의를 얻어 청원이 정무위에 회부됐습니다. 그런데 담당 부처인 공정위는 의원안 및 청원안에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날 소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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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정무위에 상정된 개정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4개 개정안 모두 급발진 입증 책임을 완화하거나 전환하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지만, 내용이 조금씩 다릅니다.

박용진·허영 의원안은 자동차로 인해 발생한 손해는 모두 제조사가 결함이 없다는 걸 입증하도록 했고, 정우택 의원안은 급발진 추정 영상자료·기록물 등을 법원에 제출하는 경우 제조사가 ‘결함 없음’을 입증하도록 조항을 마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청원안은 피해자가 급발진을 주장할 경우 제조사가 결함 여부를 입증하도록 했죠. 또 현행법에서 소비자가 입증해야 하는 결함 추정 조항을 일부 손보는 방식도 제안했습니다. 아래 표와 같이 ‘보여지는’, ‘초래될 가능성’ ‘오작동 가능성’ 등 표현을 추가해 문구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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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공정위는 4개 개정안의 주요 조항에 ‘신중 검토’ 의견을 냈습니다. 윤수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피해가 있거나 피해가 있다는 주장만으로 결함과 손해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을 모두 전부 제조업자가 입증하라는 입법례는 없다”고 했습니다. 박용진·허영 의원안과 청원안의 ‘피해자 주장’ 조항을 정면 반박한 겁니다.

정우택 의원안에 대해선 “실제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지에 대해 확신이 없다”며 수용 불가 이유를 밝혔습니다. 해당 조항을 법령에 명시하더라도 사법부가 이들 기록을 유의미한 증거로 채택할지 명확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청원안이 제시한 결함 추정 조항 완화 방안에 대해서도 ‘가능성’ 등의 모호한 표현을 법률로 명시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근거를 들어 반대했습니다. ‘신중 검토’라고 표현했으나 사실상 모든 개정안에 대해 ‘수용 불가’ 입장인 셈입니다.

사실 모든 차량 사고에 대해 제조사가 결함 여부를 입증해야한다면, 급격한 가속으로 발생한 교통사고는 모두 제조사가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우택 의원안과 청원안이 ‘운전자의 과실이 아닌 차량 문제로 급가속이 발생해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경우’라는 거름망 하나를 추가한 겁니다. 급가속 교통사고 가운데 입증 책임을 제조사로 전환해도 될만한 사고를 추려보자는 접근법입니다.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으로 볼만한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관건인 셈이죠.

소위에 참석한 윤영덕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입증 책임 전환이 힘들다면 최소한 청원을 통해서 올라온 결함 추정 요건 완화는 (공정위가) 더 적극 검토해주셔야 한다”며 “(청원안의) 법안 문구에 모호성이 있다면 좀 더 구체적인 법안으로 성립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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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가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반대 논리를 펼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저도 운전자이자 소비자로서 회의록을 읽으며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공정위가 대안을 내놓지는 못하면서 불가 입장만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급발진은 한두 해 묵은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누적된 소비자 불만이 강릉 급발진 사고가 기폭제가 되어 폭발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최종윤 의원(더불어민주당)도 이날 “(국민들이 급발진 이슈에 대해) 폭발점은 아니지만 임계점은 온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윤 부위원장은 청원안이 제시한 입증 요건 완화에 대해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는데요. 강릉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는 어떤 노력을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원들도 공정위의 소극적인 태도를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소비자보호’는 공정위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인데요. 윤 부위원장은 이날 “산업 쪽 부담도 고려해야 한다” “산업계의 부담이 클 수 있다” 등 유독 제조사를 대변하는 듯한 발언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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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민병덕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왜 그쪽(제조사)의 입장에서 얘기하시나. 이쪽(소비자)의 입장에서 그쪽(제조사) 정부기관들을 설득해 주셔야 한다는 얘기”라며 “(산업부와 공정위가) 일사불란하게 (자동차) 제조사만 변호를 하고 있으면 누가 소비자들을 보호해 주냐”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그는 “그렇게 했을 때만이 자동차 업계가 급발진이 안 일어나게 하기 위한 연구를 훨씬 더 하고 거기에다가 돈을 더 쏟을 것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공정위는 소비자 편이 돼야한다는 주문입니다.

공정위는 의원들의 지적에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윤수현 부위원장은 “(급발진이) 사회적 쟁점이 된 이후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9월 정도 결론이 나온다”며 “입증책임 완화 부분 포함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정위 연구용역엔 어떤 대안이 담길까요. 뒤늦은 연구용역이니만큼 공정위가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울만한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길 바래봅니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